학생자치활동을 통한 교육기관의 운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돼 있다. 이러한 학생자치활동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학생자치활동의 역사는 지난 1949년 세워진 ‘학도호국단’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학도호국단은 국가 관리 하에 대학생 조직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것으로, 독재 정권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학도호국단은 반공사상 교육을 시작으로, 조직적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과 국가관을 정립하고자 만들어졌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당시 문화교육부는 중등학교의 학생간부를 선발해, 중앙학도훈련소에 입소시켜 단기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들은 중학교 이상의 학생 외에도 교직원과 함께 구성돼, 반공강연회와 행군, 산악 훈련 등의 활동을 했다. 이는 학생들의 안보의식 교육과 전쟁 대비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학생들은 지난 1960년 4·19혁명의 성공을 통해 학도호국단을 폐지했다. 군부시절 학도호국단의 학칙은 학생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들이 많았고, 이에 따라 학생들은 이를 폐지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때 해당 학칙의 내용으로는 △ 집회·광고·인쇄물 배포 등의 행위를 하려면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간행물을 편집할 때 총장이 위촉한 교수의 지도를 받아야 하고 발간, 배포 또한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학생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활동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등이 포함돼있었다.

   학도호국단의 폐지 이후, 서울시내 대학 학생처 회의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학생자치회의 명칭을 ‘학생회’로 정했다. 해당 회의 과정에서 서울 내 각 대학은 자체적으로 학생회를 조직했다. 또한 학생회가 조직됨과 동시에 학생회장 선출 방법이 간선제에서 학생들이 직접 투표로 정하는 직선제로 바뀌었다.

  학도호국단은 지난 1975년 유신정부에 의해 다시 생겨났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1980년대 이후 학도호국단은 오히려 반정부 시위에 가담하며 더욱 시위를 활성화했다. 결국 지난 1985년 전두환 정부는 학도호국단을 폐지했다. 이후 학생 운동에 의해 학생회가 다시 자리 잡았다.

  이토록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학생자치활 동은 과거 학생들의 질긴 투쟁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학생회 선거 저조를 예로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 및 참여 저하가 계속되는 지금, 학생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