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대법원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다. 반면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무죄 선고를 받은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병역 대안책으로 대체 복무 규정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목) 대법원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 모 씨에 대해 전원합의체 중 9명 무죄, 4명 유죄 판결로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지난 2004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분해야 된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14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쟁점이 된 내용은 과연 양심적 병역거부가 입영 거부의 처벌 예외 사례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였다. 병역법 제88조 1항에는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병역법의 목적과 기능, 병역의무의 이행이 헌법을 비롯한 전체 법질서에서 가지는 위치, 사회적 현실과 시대적 상황의 변화 등은 물론 피고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도 고려할 수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입영하지 않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이어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집총과 군사 훈련이 수반되는 입영을 강제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분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 민주주의 사상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종교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 이후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있는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일(화) 기준 총 4건의 예비군 훈련 거부자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었다. 하지만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 대해선 언급된 바가 없다. 예비군 훈련 거부는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무죄 판결된 병역 거부 건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요점은 현역 입영 때 집총 훈련 등을 이미 받았는데 그 이후 종교적 신념을 가지게 된 사례라는 점이다. 소위 ‘변경된 양심’을 병역거부 처벌의 예외사유인 ‘신념이 깊고 확고한 양심’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 대해 박상옥 대법관은 “집총 훈련을 한 현역 시절의 본인 행동을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며 양심 측면에서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종교 및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나온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오 씨가 속한 종교단체인 ‘여호와의 증인’ 가입 방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대체 복무를 위해 이 종교단체에 가입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문의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한 네티즌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in 게시판에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하고 몇 번 다니면서 입대하라고 나올 때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다’라면서 병역거부하면 합법 맞죠?”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지난 5일(월)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 복무 제안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체 복무제의 복무 기간은 현역 육군 복무 기간 기준 2배인 3년이며, 복무 영역은 교정 시설 합숙 복무로 단일화되고, 대체 복무 심사기구는 국방부 산하에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상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또 다른 처벌을 계속하겠다는 징벌적 대체 복무제”라고 규탄했다. 이처럼 이번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대한 다양한 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판결 이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원만한 대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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