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사건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무척이나 각박해졌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자신이 저지른 일이 왜 나쁜지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당당한 사람이 더 많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으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에 회자되는 각종 “갑”질 사건들도 따지고 보면 부끄러움, 즉 염치를 몰라 벌어지는 일이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벌이는 짓인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무슨 대단한 권력을 지니지도 않은 이들도 행패를 부리는 실정이니 우리 모두가 그만큼 사람 됨됨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덕목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할 줄 안다는 말이며 그러기에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도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으면 안 되며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부끄럽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염치를 알게 되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알게 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서게 된다. 청나라 증극번은 난세의 3가지 예를 들며 공통적으로 염치를 모르는 세태를 꼽았으니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분명 난세요 망조가 든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서 염치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염치를 모르는 이들을 탓하지도 말고 심지어 벌도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사람다운 언행을 보여야 하는데 그 근본은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하지만 염치를 지키다 남보다 뒤처지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풍토에서 과연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하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염치에는 동서양과 고금이 따로 없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의가 비롯된다고 했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는 성경 말씀이 참으로 무색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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