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고통을 벗다, 비건 패션
동물의 고통을 벗다, 비건 패션
  • 김이슬 기자, 조연우 기자
  • 승인 2018.11.19 00:00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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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겨울이 다가오며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활용한 보온성이 뛰어난 의류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동물 학대의 위험성이 있는 의류 생산을 중단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의류나 충전재가 다수 고안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관련 법을 제정하는 국가도 생겨났다. 반면 국내의 경우 아직 이와 관련된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패션업계 잇따른 ‘퍼 프리’ 선언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는 올해부터 의류 제작 시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며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이 선언에 포함된 동물은 △밍크 △코요테 △너구리 △여우 △토끼 △카라쿨 등이며, 이들은 패션 업계에서 모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들이다. 구찌의 이러한 움직임에 국내 동물권 단체 ‘케어’는 “구찌의 퍼 프리 정책을 적극 환영하며, 환경과 동물을 위해 더 나은 일을 하고자 하는 구찌의 사회적 책임감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패션 브랜드 코치(COACH) 역시 오는 2019년부터 자사 제품에 더 이상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코치는 그동안 모피 제품에 사용해 왔던 동물 가죽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아르마니, 베르사체 등과 같은 명품 브랜드부터 H&M과 같은 저가 브랜드까지 가리지 않고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모피 사용을 지양하는 분위기는 패션 브랜드뿐만이 아니라 패션 업계 전역에 걸쳐 확산되는 추세다. 세계 4대 패션쇼로 꼽히는 런던 패션 위크는 지난 9월에 열린 패션쇼부터 모피 로 만든 옷을 런웨이에서 금지하기로 결정했 다. 이는 런던 패션 위크 측에서 윤리적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피 묻은 동물의 가죽을 입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윤리적인 기준에 맞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업계도 윤리적 소비자들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따뜻한 옷,  동물들에게는 생명

  동물로 만들어진 옷은 보온성이 높아 특히 겨울에 인기가 많다. 이러한 의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동물의 깃털이 들어가는 패딩 점퍼다. 최근 가장 수요가 많은 패딩은 거위의 털이 들어가는 구스다운(goose-down)과 오리털이 들어가는 덕다운(duck-down)이다. 그러나 이 털을 뽑는 과정이 비인도적이라는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패딩에 들어가는 다운(down)은 새들의 가슴 부위 피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부드러운 솜털이다. 구스다운 패딩의 경우, 거위 한 마리 당 솜털이 약 60g 정도인 점을 감안했을 때 패딩 하나를 만들기 위해 15마리에서 20마리의 거위가 희생된다. 의류 생산을 위해 기른 거위는 생후 10주부터 시작해 6주 간격으로 털을 뽑힌다. 이 과정에서 상처가 나면 실과 바늘로 살을 꿰매고, 거위는 최대 15번까지 털을 뽑히다가 도살당한다.

  겨울철 모자 테두리나 목도리 등에 사용되는 라쿤 털도 마찬가지로 윤기 있는 모피를 얻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털을 뜯어낸다.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라쿤 털이 부착된 의류는 풍성해 보인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찾는다. 또한 니트나 장갑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앙고라 토끼 털 또한 비인도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2013년 국제동물보호단체 PETA에서 공개한 영상에는 앙고라 토끼의 털을 뜯어내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영상은 발이 묶인 채 털이 뜯기는 토끼의 모습이나 지나치게 좁은 철장에 갇힌 토끼의 모습 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털을 뽑는 방법뿐만 아니라 동물이 사는 환경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모피의 10%는 야생에서 덫이나 올무 등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야생동물을 포획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나머지 약 90%는 공장식 축산으로 운영되는 모피농장에서 생산된다. 모피 공장처럼 동물들의 습성을 억제하는 열악한 환경은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이에 따라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들도 다수 나타난다. 동물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의류를 만들기 위한 털을 제공하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16년 동물권 단체 ‘케어’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모피 반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6년 동물권 단체 ‘케어’ 회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모피 반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비건 패션’ 각광… 인조 패션은 괜찮을까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이 커지면서 동물성 비건 패션을 콘셉트로 한 브랜드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비건 패션이란 △모피나 가죽 △실크 △울 따위의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소재를 사용하는 패션으로 △인조 모피 △인조 가죽 △면 △마와 같은 소재로 만든 옷을 뜻한다. 대표적인 국산 비건 의류 브랜드로는 낫아워스(not ours)와 비건 타이거(vegan tiger) 등이 있다. 낫아워스의 신하나 대표는 “가죽 대신 폴리우레탄 등 합성 피혁 소재로도 충분히 질 좋은 가방, 지갑, 구두 등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비건 패션의 흥행에 힘입어 국내 의류업체도 천연 모피 대신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인조 모피로 알려진 에코 퍼(eco fur)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인조 모피는 아크릴과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들어 촉감과 보온성이 우수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조 패션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진짜 동물 가죽이나 털을 대신해 합성 소재로 만들어진 인조 모피 제품 등이 버려지면서 오히려 환경을 더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조 패션이 동물 학대에 대한 도덕적인 죄책감은 줄여줄 수 있으나, 자연 파괴 문제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인조 모피의 소비가 진짜 모피 소비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모피를 멋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조라는 사실이 아니라 모피라는 사실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짜 모피에 대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2013년 미국에서는 진짜 모피를 가짜 모피로 속여 판매해온 의류 업체 △니먼마커스 △닥터 제이스 닷컴 △에미넌트를 적발한 사례도 있다. 해당 업체들은 동물 보호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모피를 사용한 제품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자 진짜 모피를 가짜로 둔갑해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과 환경 모두를 고려한 ‘업사이클링’ 대체재

  이렇듯 인조 패션이 완벽한 대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따라 동물과 환경을 모두 고려한 ‘업사이클링(up-cycling)’이 각광받고 있다. 업사이클링이란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업사이클링 대체재는 원자재 생산 시 발생하는 자원 낭비와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폐자재 재처리 과정에서 수반되는 환경오염까지 막을 수 있다.

  대표적인 동물성 가죽의 대체재로는 파인 애플 잎사귀로 만든 식물성 가죽 피냐텍스(Piñatex)가 주목받고 있다. 피냐텍스는 영국 기업 어내너스 애넘(Ananas Anam)이 여러 해에 걸친 연구 끝에 개발한 순식물성 소재다. 또한 피냐텍스는 제작 과정에서 인체 및 환경에 유해한 농약, 화학제품 등도 쓰지 않는다.

  버려진 패딩을 재활용해 새 패딩을 만드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베리구스’는 더 이상 입지 않는 패딩을 기부받거나 버려진 패딩의 거위 털을 모아서 새 패딩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그뿐만 아니라 헌옷과 이불에서 수거한 원자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운 점퍼를 대체할 인공 충전재를 사용한 제품을 내놓은 브랜드도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자체 개발한 인공 충전재 ‘티볼’을 넣은 패딩을 올해 출시했다. 이런 인공 충전재는 기존 천연 다운 패딩과 비교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로 인식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호응을 이끌 수 있을 전망이다.

왼쪽 :런던 스튜디오 Smith Matthias가 파인애플 섬유 ‘피냐텍스’로 만든 잡화이다 오른쪽: ‘베리구스’는 전국 각지 리사이클링 업체를 통해 덕·구스 다운 제품들을 수거한다
왼쪽: 런던 스튜디오 Smith Matthias가 파인애플 섬유 ‘피냐텍스’로 만든 잡화이다
오른쪽: ‘베리구스’는 전국 각지 리사이클링 업체를 통해 덕·구스 다운 제품들을 수거한다

변화하고 있는 세계, 한국은?

  동물로 이루어진 의류 구매를 지양하고 대체재를 찾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부 차원의 변화도 생겨났다. 우선 지난 1월 노르웨이는 모피업을 전면 금지했다. 유럽 국가 가운데 모피업을 전면 금지한 국가로는 노르웨이가 14번째다. 노르웨이 정부는 오는 2024년까지 모피 농장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2025년까지 전부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르웨이는 과거 세계 2위 모피 생산국에 오르기도 했던 국가다.

  지난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이하 LA) 의회에서는 투표 결과 만장일치로 모피 의류 및 악세사리 판매 금지 추진이 결정됐다. 이에 따라 법무관이 모피 판매 금지에 대한 조례를 작성하고, 이후 의회에서 최종 투표를 거치게 된다. 이 조례를 제안한 폴 코레츠 의원은 기자 회견을 통해 “LA는 전 세계 패션의 수도 중 하나이며, 여기서 가능하다면 어디에서든 가능한 것”이라며 “미국과 전 세계에 우리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동물권리단체 IDA의 마릴린 크로플릭 회장도 “LA는 패션을 선도하는 대도시로, 의류 때문에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냈다”고 말했다. LA 외에도 최근 △웨스트 할리우드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등 캘리포니아주의 다른 도시에서 모피 판매 금지 조례가 통과됐다.

  덕다운과 구스다운으로 대표되는 다운 종류에 최적화된 제도도 있다. 현재 유럽 연합(EU)는 살아 있는 오리와 거위의 털을 뽑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효력은 미미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뽑는 행위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자연 털갈이를 기다려 털을 모아야 하는데, 수요에 한참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이윤을 취해야 하는 업주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법제화된 것은 아니지만, 다운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RDS(Responsible Down Standard, 책임다운 기준) 인증제도 있다. RDS 인증제는 구스다운의 충전재로 사용되는 거위 털이 동물 학대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 채취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마련된 인증제도다.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기념상품으로 판매된 구스다운을 RDS 인증을 통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세계적인 흐름에 비교해 퇴출운동에는 반응이 미지근하다. 오히려 국내 모피시장은 상승세인 것으로 드러났다. 관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모피 수입량은 지난 2001년 약 1억 5천 달러에서 2011년 약 4억 2천 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이후 지난 2016년 국내 모피 수입량은 약 2억 5천 달러까지 감소했지만, 지난해 약 2천 8백 달러로 다시 증가했다. 또한 지난달 2일(화)에는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국제모피협회가 주관하는 ‘아시아 리믹스 2018’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모피의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면을 강조하는 영상과 멘트가 반복됐다.

  그러나 최근 국내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동물권에 대한 인식 또한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힘입어 모피 퇴출 운동이나 법제화 등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2일(화) 서울에서 국제모피협회(IFF)의 ‘아시아 리믹스 2018’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달 2일(화) 서울에서 국제모피협회(IFF)의 ‘아시아 리믹스 2018’ 시상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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