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도시 인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도시 인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오스트리아의 언어는 독일어이지만 스스로를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일의 성(姓)을 가진 사람도 참 많지만 독일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인’임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은 조국을 묻는 질문 자체에 불쾌함을 표시한다. 예컨대, 한국 사람과 똑같이 생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답을 듣는 상황과 비슷하다. 현재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모국(母國)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큰 것이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모국에 대한 자부심은 참으로 대한 것이어서 영화에서도 잘 묘사된다. 나의 ‘명화(名畵)리스트’ 1위에 오른 <사운드 오브 뮤직>에도 특유의 애국심이 잘 나타나 있다.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폰 트렙가(家) 모습은 은은한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뮌헨에서 맥주에 취한 몸을 이끌고 다음 행선지인 밀라노로 가기 전에 인스부르크에서 머물기로 했다. 맥주의 취기가 올라와서인지 기차 안에서 바라다보는 ‘티롤(Tyrol) 산맥’의 모습은 비경(秘境)이었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하얀 눈으로 덮인 모습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신비함을 느꼈다. 거나하게 맥주를 마셨음에도 기차의 식당 칸에서 한 잔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내달린 기차는 오스트리아 티롤 주(州)의 주도인 ‘인스부르크(Innsbruck)’에 도착했다.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맥의 위용이 대단했다. 저 뒤편에 스키 점프대가 설치된 듯한 산 아래의 도시. 이 도시의 해발 자체가 574미터나 된다.

  인스부르크는 도시를 휘감고 흘러가는 ‘Inn’강과 ‘Bruck’이 합쳐진 독일어이다. Bruck이 ‘다리’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하자면 ‘인 강 위에 있는 다리’정도가 된다. 중앙역에서 10분 정도 걸었을까 도심이 눈앞에 펼쳐졌다.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딴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Maria-Theresien Straße)’였다. 중간에 경유하는 도시여서 충분한 준비를 하고 오지 못한 것을 못내 후회하 는 나. 독일과 프랑스의 침입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성 안나 기념탑(Annasäule)’만이 이 곳이 세계에서 아름다운 거리 ‘톱 5’에 이름을 올린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두 손을 꼭 잡고 내 앞을 걸어가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이 도시의 품격을 이미 말해주는 듯 했다. 도시의 곳곳에 유럽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상징적인 건물이 많았지만 눈이 너무 즐거워서 그랬는지 손에 들고 있는 가이드북을 일일이 펼쳐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인스부르크는 1964년 제9회 동계 올림픽의 도시로 기억된다. 중학교 시절 ‘올림픽 개최도시 외우기 게임’을 친한 친구와 한 적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때는 그랬다. 생소한 이름의 도시였지만 뭔가 깊은 역사가 있을 것 같았던 도시 이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은둔의 나라 북한은 이 도시에서 개최된 올림픽에 동계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한필화 선수가 메달의 주인공이었는데 그 당시로는 엄청 난 뉴스였다고 한다. 

  여행이란 때로는 미리 알고 가지 않았던, 중간에 잠시 머물렀던 도시에서 큰 재미와 기쁨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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