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니, 늘 긍정적이고 밝게 마음을 먹고 남을 비판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면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흔히 이런 태도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 말은 항상 미심쩍은 말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악으로 피해를 보고 제도적 문제로 인해 삶이 곤고해진 사람을 두고 “그게 모두 당신이 제대로 마음을 먹지 않아서 얻게 된 결과야”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미심쩍은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혁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깊이를 알고 그 깊이에 따라 마음을 먹고 살겠다는 사람은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마음의 깊이에는 세상을 다르게 살아가게 하는 원리가 숨어있다.

  마음은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자연도 변화하고 사람이 만든 세상도 변화한다. 기쁨과 고통의 마음도 변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도 변한다. 마음은 이런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 세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내 마음도 변화하는 것이니, 변화시킬 수 있는 그 마음을 바꾸어 변화에 대한 불변의 원리에 그 시선을 고정 시켜 보라고 한다. 그 상태에서 자신의 몸과 삶을 변화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이다.

  깊은 마음은 우리의 친절을 요청한다. 친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기를 바란다. 친절은 삶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당신의 친절이다. 친절은 새로운 관계가 당신에게서 생겨나게 하는 변화의 마중물이다.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마음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고통을 받고 있고 행복을 원한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애정과 용서와 친절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 심지어 당신조차도 이미 그런 기대를 접고 포기해 버렸을 수도 있다. 포기한 마음을 회복시키는 출발점은 친절이라는 당신의 약간의 불편이다.

  어느 대학의 꼰대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기 부모께 “엄마 (혹은 아빠) 사랑해요”라는 카톡을 보내도록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들로부터 받은 응답은 “너 미쳤니?”, “용돈 필요해?”, “어디 아프니?”였다고 한다. 부모도 자녀들로부터의 친절은 포기해버려서가 아닐까.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내가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달라이 라마’라는 꼰대 중의 꼰대가 알려주는 친절한 마 음의 깊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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