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바젤 시청사 내부는 수많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바젤 시청사 내부는 수많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나라의 크기에 비해 스위스에는 유명한 도시들이 워낙 많아서 도시들끼리 용쟁호투(龍爭虎鬪)를 벌이는 것 같다. 네 가지 언어가 사용되는 다언어 국가인 스위스는 지역별, 언어별, 문화별로 도시의 색깔이 모두 달라서 마치 도시열전(都市熱戰)을 보는 것처럼 이채롭다. 취리히, 제네바, 로잔, 루체른, 인터라켄, 루가노, 베른 등 기라성 같은 도시들이 작지만 큰 나라 스위스를 수놓고 있다. 같아 보이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많이 다른 각각의 도시들이 스위스 연방의 깃발 아래 똘똘 뭉쳐있다. 그러나 어감(語感)상 독일의 도시처럼 들리고 때론 프랑스의 도시처럼도 느껴지는 이 도시는 잊힐 때가 많다. 독일과 프랑스에 걸쳐져 있는 ‘쥐라(Jura)산맥’의 중간쯤에 위치한 도시 ‘바젤(Basel)’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독일이 나오고, 왼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프랑스가 나오는 국경도시인 셈이다. 그런데 바젤이 스위스 제2의 도시라니 많이 놀라는 나였다. 취리히는 수도는 아니지만 확고하게 제1의 도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바젤이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니 생소하기까지 했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쥐라 산맥의 ‘Jura’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공룡이 살았던 ‘쥐라’기(Jurassic Period)의 ‘Jura’라고 한다. 사람은 역시 배우면서 놀라고, 놀라면서 배운다. 

  바젤은 시계(時計) 분야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지(聖地)에 가깝다. 시계와 관련된 한 해의 디자인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 시계 박람회’로 알려진 ‘Baselworld’를 꼭 봐야한다고 할 정도다. 매년 3월에 개최되는 바젤월드가 올해로 101회를 맞이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역사가 200년이 넘는 럭셔리 시계들이 이 도시 바젤에서 전 세계 고객들에게 신제품을 소개한다. 스마트폰의 사용 등으로 시계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지만 스위스 명품 시계만큼은 아직 건재(健在)한 것을 보면 이 또한 바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초의 의식 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인 ‘에라스무스(Erasmus)’는 인생의 말년인 1520년대를 바젤에서 보냈다고 한다. 바젤에서 인쇄와 출판업이 부흥했던 것은 위대한 인문학자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시계 산업을 필두로 한 공업도시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바젤에는 실제로 에라스무스의 길과 그의 묘비가 있다. 에라스무스는 1459년에 개교한 바젤대학교에서 강의하였는데, 이 대학은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젤대학교의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에게 ‘고전문헌학’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라인 강의 본류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젤의 한 복판에서 붉은 색깔로 사람들의 눈을 끌어들이는 바젤 시청사에 들어섰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프레스코(Fresco)화의 내용은 다 알 수 없었지만,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붉은 건축물에는 에라스무스의 묘비가 있다. 그의 묘비 첫 구절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온갖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삶을 생각하면서 이 도시 바젤이 쥐라 산맥을 밝히는 등불처럼 느껴졌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