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게 된다.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고,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욕먹을 때가 있고, 잘못해서 욕먹을 때도 있다. 세상살이가 평탄하지가 않다. 뒤로 넘어졌는 데도 코가 깨질 때가 있다. 기다리면 다 잘 될 때가 올 것 같았는데, 가도 가도 태산인 경우를 살다 보면 경험한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힘들게 보내야 한다. 힘들게 지나가야 하는 과정을 쉽게 가려다 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힘든 상황을 외면해 버리면 조금 지나 똑같이 힘든 상황이 다시 다가온다. 그러니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쉽게 쉽게 지나는 길을 택하다 보면 다음에는 그 상황을 이겨낼 힘을 얻지 못해 힘이 더 들게 된다. 그러니 힘든 때에는 “지금이 힘들 때구나”라는 생각으로, 그 힘든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애써 참고 견딜 일이다. 그때가 다해야 새로운 때가 온다. 


  우리는 뭔가를 열심히 해야만 행복에 이른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항상 최선을 노력해야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고 행복에도 이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뭐든 열심히 하려고만 해서는 안 되며, 일을 가려서 열심히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와 “해서는 안 된다”도 중요하다. 동양 꼰대의 지존인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라”고 했다. “옳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양심에 걸리는 행위를 요구받을 때, 달콤한 유혹이 속삭일 때, 내 지성이 아니라고 하지만 욕망이 내 발이나 손이나 입술을 이끌 때, 즉 “아니(NO)”라고 말해야 할 때, 그때는 “아니(NO)”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 순간에 ‘훅’하고 가버릴 수 있다. 고위 공직자가 크고 작은 스캔들로 한 방에 훅 가버린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아니(NO)”라고 할 때 “아니(NO)”를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제대로 “노”를 못하면 공들게 쌓아 놓았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다. 잃을게 적은 사람도 행복의 토대를 잃게 된다. 


  우리는 익숙한 잘못된 습관에 “노”할 줄 알아야 하고, 친근한 목소리의 “괜찮아~”에도 “노”할 줄 알아야 한다. 인류 최초의 범죄인 아담와 이브의 사건도 달콤하고 친근한 목소리에 “노”를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낙원을 잃어버렸다. 낙원의 행복 말이다.    


  오늘의 청춘의 삶은 고달프다. 삶이 고달픈 만큼 유혹은 강하다. 유혹은 강할수록 달콤하다. 사탄의 목소리는 사탕처럼 달콤하다. 강한 유혹을 이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강하게 “노”할 줄 알아야 한다. 행복을 향한 나의 노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내 잘못은 “노”를 제대로 못한 데서 오는 것이다. 


  성공적인 삶은 성공하는 습관에서 오는 것처럼, 강한 유혹에 “노”할 수 있는 삶은 작은 유혹에도 “노”할 수 있는 습관을 통해 가능하다. “아니(NO)”라는 표현의 다른 버전은,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겠어” “나는 그건 하지 않겠어” “싫어”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등이 있다. 그러면 내가 할 “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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