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인,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까지
숭실인,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까지
  • 현재건 기자
  • 승인 2018.12.03 00:00
  • 호수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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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간호 특별 대담

   지난달 17일(토), 평양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본교 출신 이겸호, 박기복, 이양식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았다. 지난달 1일(목)에는 4‧19 학생운동의 희생자인 김창섭 동문이 민주화운동 열사로 등재됐다. 이렇듯 숭실인은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까지, 민족의 안위를 위해 헌신했다. 이번 종간호에서는 한국기독교박물관 황민호(사학과 교수) 관장과 민주동문회 최성남(국어국문·81) 회장과 함께 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이 파악한 본교 출신 독립유공 포상자는 총 83명으로 파악됐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본교 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황 관장: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목록인 ‘공훈록’이 있는데, 본래 본교 출신 독립유공자 수는 적었다. 출신 학교를 굳이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숭실 회원 명부를 대조했다. 본교가 폐교됐을 때 이름과 주소를 기재한 회원 명부를 만들었다. 그게 서울숭실대학이 재건됐을 때 졸업 증명서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 회원 명부와 공훈록을 대조해 찾은 독립유공자가 총 83명이다.
  본교 출신 독립운동가 중에 ‘김창준’이라는 분이 계신다. 그런데 이분은 북한 정권에 참여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렇듯 노선상의 차이가 있거나 공적이 잘 알려지지 않아 포상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가 많다. 그런 분들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을 한다면 본교 출신 독립운동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4‧19혁명 당시 희생된 김창섭 열사가 민주화운동 열사로 등재됐다. 이로써 본교 출신 열사는 총 6명으로 파악됐다. 민주동문회가 열사 등재 활동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그렇다면, 등재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 회장: 이번에 처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박래전 열사가 등재된 이후 여러 열사가 시야에 포착돼 등재된 것으로 보인다. 김창섭 열사는 매우 오래전에 민주화운동을 벌였고, 당연히 등재돼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김창섭 열사를 검색해보니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그분의 묘지도 가보고, 그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가하신 분들 중 생존하신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하지만 김창섭 열사의 친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등재에 어려움이 겪었다. 그러던 와중에 박래전 열사의 형인 박래군님이 이쪽에 능하셔서 도움을 받아 등재될 수 있었다.

  본교는 3‧1운동, 4‧19혁명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주축이었고, 신사참배 거부로 자진 폐교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나 아직 그 위상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황 관장: 학교 차원에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관한 학술회의나 전시회 등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먼저 외부가 아닌 내부의 공감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책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행사를 진행한다면 학교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 회장: 학생들도 독립운동가와 열사들을 기리기 위한 활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고려대에서는 매년 약 1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학교부터 4‧19민주묘지까지 다녀오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황 관장님 말처럼 학생들과 학교가 이러한 행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면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외부로도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까지 이끌었던 숭실인들의 정신은 어디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황 관장: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학교 땅은 학교를 건학한 선교사가 구입했는데, 건물은 조선 사람들의 헌금으로 모인 돈으로 지었다. 학교 건물은 조선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에 되팔 수 없다는 게 과거 조선총독부에 대한 명분이었다. 본교의 건학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뒀다.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에서 나라를 구할 인재를 육성해야겠다는 정신으로 출발한 대학이다. 그런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독립운동부터 민주화운동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분 모두 본교 동문이다. 본교를 졸업하고 각기 다른 위치에서 학교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후배들이 본교 출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 열사를 본받아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면 좋을지 조언한다면.
  최 회장: 본교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다.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나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우선인 자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의 의(義)를 지키라고 조언하고 싶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 전체가 쇠퇴했다고 본다. 의(義)를 지키는 것보단 사리사욕이 우선이다. 회개할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힘없는 이들, 소외된 이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법칙이라고 배웠다. 또한 역사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 방향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 그게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취업하기도 힘들고…. 다른 고민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개인의 삶에 매몰되면 안 된다. 세상이 왜 어려워졌는지 고민해보고, 다 함께 변화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황 관장: 비슷한 얘기다. HK사업단장으로서 아젠다를 구성할 때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식민지 당시 근대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물질문명을 배워 이뤄졌다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그런데 물질적 담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기독교 정신, 최 회장님이 말한 바른 정신에서 비롯된 근대화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인 틀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아젠다를 빠르게 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젠다의 중심에는 기독교 민족 대학, 신사참배를 거부해 자존심을 지킨 숭실대가 있었다. 그 정신적 담론이 앞으로의 한국 사회를 책임질 수 있다고 후배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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