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칩(驚蟄)이었다. 경칩이 지나면 만물이 겨울잠을 깬다고 했다. 그 무렵 수습 딱지를 떼 정식 기자가 됐다. 첫 면 아래 이름 석 자가 그리도 좋았다. 사령을 조각낸 신문은 자취방 벽에 세를 냈다. 사령을 보며 날 선 학생 기자가 되고자 다짐했다. 날카로이 학교를 꼬집을 줄 아는, 그름에 저항하는 기자의 초상이 나의 이상이었다.

  두 달이 흘러 소만(小滿)이었다. 이 시기에는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 매주 첫 면에 내 기사가 올랐다. 굵고 새까만, 고딕체로 쓰인 제목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그즈음, 본지 1189호는 두 번 발행됐다. 당시 법인 이사장의 편법적 세습에 관해 보도하려 했으나 학교와의 마찰을 빚었다. 이사장 비판 기사와 총장 인터뷰 기사를 함께 실은 것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편집국장은 업체에 기사를 넘겼다.

  1189호가 발행되는 날, 학교에 갔지만 신문 가판대가 텅 비었다. 학교가 1189호를 모두 회수한 것이었다. 나는 학교의 행태를 ‘대나무숲’에 고발했다. 일간지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그것이 정의(正義)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선배는 “네가 뭘 아느냐”며 나를 꾸짖었다.

  올해 편집국장이 되고 종간호를 마감하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그간 나를 꾸짖었던 선배를 원망했지만, 이제는 조금 헤아린다. 학생 기자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대학신문의 학생 기자는 학생의 이해(利害)만을 대변하기 어렵다. 대개 대학신문은 발행인이 총장이며 교비로 학보가 발행되는 구조다. 학교에 해가 되는 기사를 쓰기 위해선 투쟁이 요구된다.

  나의 학생기자 시절은 소만(小滿)에 멈춰있다. 열매를 맺는 시기인 추분(秋分)에 닿지 못했다. 편집국장으로 지낸 삼백예순날이 떳떳하지 못했다. 학교와 타협도 했고, 기사를 재배치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나의 신문은 실속 없었다. 오히려 논평으로 학생을 나무라기도 했다. 사설의 끝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대학 사회에서 학생은 작다. 올해만 봐도 그렇다. 이사장에 대한 학생들의 목소리에 법인은 귀를 막았고, 학사조교A 개편 논의에서는 학생이 배제됐다. 주제넘지만 후배들에게 소망하고 싶다. 학생을 위한 신문을 내길 바란다. 필요하다면 학교와 투쟁하길 바란다. 우리가 학생의 파수꾼이 되어야, 학생이 대학 사회에서 온전히 바로 설 수 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