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수도 없이 많이 모인 상태를 두고 ‘인산인해(人山人海)’라고 한다. 사람이 산으로 이루고 바다를 이뤘다는 말로, 사람을 한 명 한 명 분간할 수 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을 때 쓰는 표현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이르는 다른 말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는 ‘인파(人波)’가 있다. ‘사람의 물결’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 역시 ‘인산인해’와 마찬가지의 의미로, 사람이 넘쳐가는 거리 등을 나타내고자 할 때 쓰이곤 한다. 인파로 넘치는 거리,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저마다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는 출퇴근길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문득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이 세상에서 ‘나’라고 하는 사람의 존재란 어느 정도의 크기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허나 급속도로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일련의 사색은 뜬금없고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쉽고, 자기의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무엇이든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더,더,더’를 최고의 미덕이라 배워왔기에, 잠시 멈춰 서서 의미를 따져보는 일은 정체와 도태인 듯 느껴져 죄의식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더,더,더’만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경험을 통해 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만을 추구해왔을 뿐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 세상 속에서 자기 존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자들이 재력과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무엇을 더 갖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많이 가진 자신은 갑이며, 적게 가진 타인은 을이라는 단순하고 건조한 공식이 있을 뿐이다. 두려운 것은 이 공식이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 머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대물림되며, 때로는 전염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한, 갑을 공식을 따르는 자의 자녀가 자기 부모보다 가지지 못한 자에게 행하는 폭언과 폭력은 우리를 경악시키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은 우리 중에서도 우리보다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이다. ‘집’이 한 가정의 쉼터보다는 투자 가치가 높은 부동산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서, 어디에 사는지를 두고 자녀에게 저곳에 사는 아이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부모들이 생겼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자기가 사는 집보다 값이 나가지 않는 곳에 사는 아이와는 친구로 지내지 말라는 말을 들어온 아이는 자연 집값이 낮은 곳에 사는 아이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며, 상대를 ‘친구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격이나 취미, 가치관이 잘 맞아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집값이 비슷한 그룹’끼리만 친구가 되게 만드는 것은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 아니라 가정파탄 교육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있을 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을 때, 국가적으로 어떤 재앙이 있었는지에 대해 서도 굳이 글로 옮기지 않겠다. 다만, 우리 모두 ‘더,더,더’의 거짓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누차 강조하고 싶다. 산과 바다처럼 많은 사람의 물결이 나보다 더 많이 가졌느냐 적게 가졌느냐를 기준으로 나뉘는 삭막한 피라미드일 리는 없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더 많은 물질이 아니라, 더 많은 물음일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무엇이 사람다운 것인지 묻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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