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순 作 '거의 모든 거짓말', '밤이 아홉이라도', '철수 사용 설명서' 비평

  책을 펼치면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강요했던 것과는 다른 삶의 모습이 나타났다. -페터 바이스-

  우리 모두는 살면서 한 번쯤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본 적 있다. ‘한 알만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은 알약이 있다면 어떨까에서부터 사실 나는 부잣집에서 잃어버린 아이가 아닐까에 이르기 까지, 한 번쯤 누구나 생각 해 봤을 법 하고 실제로 있을 법 한 것들을 말이다. 상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상상들은 잠들기 전 잠깐 스쳐가는 생각에 그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주제가 되거나 책, 영화 등으로 만들어져 문화생활에 기여하기도 하고, 인류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학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며, 신앙이라는 믿음아래 하나의 세계나 국가를 형성하기도 한다. 감히 상상력을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상상이란 필요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나 피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또는 과거에 했던 어떤 선택에 대한 후회감 등이 밀려오는 상황을 겪었을 때, 더 나은 현재를 위해 나아가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 상황을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되짚어보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는 항상 만약 그랬다면.’이라는 가정이 수반된다. 이러한 가정이 바로 상상의 근원이며 가정을 통한 상황의 재구성과정 속에서 발휘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은 문제 상황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의 결핍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 해결책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상상이 단지 없는 해결책을 대신해 주는 역할만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혹은 상상이 항상 후회 때문에 발휘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다. 앞선 내용은 단지 상상의 근원에 대한 하나의 답일 뿐 상상의 용도나 역할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상상을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만으로 남겨 놓지 않는다. 그들은 상상을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에 덧입힘으로써 새로운 상징이나 상황을 창조하고, 이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관점들을 꺼내어 작품 속 상황이나 상징들에 반영하며 글을 읽게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독자는 작품 속 인물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작품 속 인물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작가의 문제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키게 되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사회 문제를 발견해 현실로 가져가게끔 만드는 것이다. , 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에 자신만의 상상을 덧입혀 작품 속에 구현해 냄으로써 작품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게 느끼도록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둘 사이의 상관관계나 연관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석순의 작품들 중 <거의 모든 거짓말>, <밤이 아홉이라도>, <철수 사용 설명서>, 를 대상으로 하여 작가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상징이나 세계가 어떤 문제의식을 반영했는지, 그리고 독자에게 문제의식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중점으로 하여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그의 작품을 읽어 본다면 그가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매우 엉뚱하면서 참신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격증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야의 자격증이 있고, 그 양을 객관화해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측정하는 장비가 있으며, 설명서가 필요 없을 것 같은 것에 설명서가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상상들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 참신한 배경 설정을 통해 독자에게 뒷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글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 속 사회와 배경은 현실을 닮은 암울한 사회적 상황들을 숨기지 않은 채 드러내고 있다. 가난하고 빚을 진 가정의 모습,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모습, 스펙이나 장점 등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해 구박당하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자칫하면 작품에 반영된 현실의 우울함이나 부조리함이 작품의 참신함을 무너뜨릴 수 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독자에게 필요 이상의 우울함이나 연민 등을 느끼게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잘 구현된 있을 법 한 비현실적 상황이며 그의 작품이 지닌 또 다른 장점이다. ‘있을 법 한 비현실적 상황은 독자가 이입을 통해 필요 이상의 감정을 느낄 때면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배경이나 상징이 등장해 거리를 벌려 주고, 그 거리가 너무 벌어질 때면 다시 배경이나 상징에 현실을 반영하게끔 함으로써 거리를 줄여 준다. 이런 적당한 거리조절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상상을 덧입혀 펼쳐 놓은 문제 상황들을 단지 책 속 내용으로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사회문제들 중 비슷한 것을 찾아내 투영해 볼 것인지 직접 결정하게 만듦으로써, 단순히 문제 상황을 현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특히 <거의 모든 거짓말><밤이 아홉이라도>는 현실의 상황과 작품 안의 상황이 적당히 맞물려있어 독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진 좋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점이 현재와 과거를 자주 오고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독자가 내용을 혼동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철수 사용 설명서>의 경우 사용 설명서라는 주제와 형식을 통해 쓰인 작품으로 상상력의 참신함만으로 따지면 가장 뛰어나지만, 형식의 틀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독자가 글의 서사적 부분을 느낄 수 없어 초반에 가졌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나 집중력을 감소시키고, 같은 형식이 계속 반복됨에 따라 지루함을 느끼게 하며 인물이나 상황에 쉽게 이입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으로는 각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고 해석해 보도록 하겠다. 각 작품을 배경과 상징, 내용으로 분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거의 모든 거짓말>

  배경: 거짓말 자격증을 따는 것이 당연해지고 그 자격증이 취직을 하는데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가정의 모습.

  상징: 거짓말 자격증.

  내용: 시점 인물()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로 1급 시험을 앞두고 있다. 3급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구라가 주특기이며 빚쟁이가 되어 도주 중인 아버지와 2급 소지자로 공갈이 주특기이며 하객대행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 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거짓말을 치기 시작한다. 이미 거짓말 자격증이 필수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는 급수가 높아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때문에 나는 더 늦기 전에 1급이 되어야 한다는 불안함에 떨고 있다. 3급은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고, 2급은 진실을 거짓말인 것처럼 말한다. 1급이 되면 홀로그램 스티커가 붙은 자격증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자격증 소지자에 대한 내용이다. 1급 승진 시험 점수를 모으기 위해 일을 하던 나에게 두 가지 의뢰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남자를 떠보려는 여자와 소년을 떠보려는 남자의 의뢰이다. 그렇게 나는 남자와 소년을 동시에 만나며 진실과 거짓사이의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의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거짓과 진실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고, 더 이상 거짓말을 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고 되도 않는 구라를 치고 있는 아버지를 알게 된다. 가족 모두 서로가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결국 승진하지도 그들 중 누가 자격증 소지자인지도 알아내지 못 한 채 2급으로 남는다. 1급 소지자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거짓말을 시작하게 한다.

이 사회는 거짓말 자격증이 필수가 된 사회이다.

3급은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고, 2급은 진실을 거짓말인 것처럼 말한다.

1급 소지자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

 

  <밤이 아홉이라도>

  배경: 감정 측정기와 표준감정 지수가 등장하여 표준감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분류해 치료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부적응자의 모습.

  상징: 감정 측정기. 표준 감정.

  내용: 시점 인물()은 어릴 적 학예회에서 수치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감정측정기가 등장하면서 부터 사람들은 표준감정에서 벗어났던 사람들을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감정진단서를 제출하는 것은 필수가 되었으며 이는 취직 뿐 아니라 결혼, 주거지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불안한 감정 때문에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된다. 표준 감정 수치에서 벗어난 사람은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되어 국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또한 그들을 고용하려는 사람이 없기에 공공근로를 하며 살아가야 하고 주거지 역시 열악하다. 그러던 중 나는 을 만나 동거하다가 성향차이로 헤어지게 된다. 싼 값에 보호 관찰 대상자들을 고용하는 용역업체에서 일을 하게 된 나는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감정 수치를 표준에 맞춰주는 치료기를 달고 일을 나간다. 그러던 중 나는 남자와 함께 빌라를 철거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곳은 내가 현과 동거를 하던 곳이었다. 불안함에 떨고 있는 나에게 남자가 약을 먹이고 나는 현과 함께 하던 때를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나는 센터에서 용역업체 사장이 내 감정 수치를 조작하고 있었다는 것과, 내가 표준감정에 맞지 않았던 것이 불안함 수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당신의 감정은 표준인가요.’라는 감정 검진 마지막 질문에 대답 대신 웃어 보인다.

  분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감정측정기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감정진단서의 제출과 검증을 거쳐야만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표준 감정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면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된다.

나는 불안함 수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되었다.

 

  <철수 사용 설명서>

  배경: 개개인별로 사용 설명서가 있어 그에 맞춰 그 사람을 고용할지 그 사람과 연애할 지 등을 결정하며, 이전 사용자가 쓴 후기로 그 미리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 시대 젊은이의 모습.

  상징: 사람 사용 설명서. 철수.

  내용: 이 책은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 총 네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챕터별로 철수에 대한 설명서가 먼저 나오고 설명서에 해당하는 내용에 맞춰 철수가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에 사용 후기가 나오는 형식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철수는 취직 준비생으로 그려진다. 무엇 하나 뛰어나지 못해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가도 테스트 기간이 끝나면 반품되어 진다. 사랑을 할 때에도 쉽게 열이 오르는 바람에 관계를 망치기 십상이다. 가족들 역시 철수를 대하는 태도가 남들과 다르지 않으며수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안 읽은 사람들 탓으로 돌린다.

  분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철수에 대한 설명서, 실제 생활하는 모습, 사용 후기가 나온다.

철수는 취직 준비생이다. 그러나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간다 해도 스펙 미달 등을 이유로 테스트 기간이 끝나면 반품된다.

쉽게 열이 오르는 결함 탓에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가족들 역시 철수를 제품처럼 대한다. 철수 또한 자신의 단점을 사용설명서를 제 대로 읽지 않고 사용한 사람들 탓으로 돌린다.

 

  위에서 분리한 것에 따라 작품 내용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거의 모든 거짓말>에서 시점 인물()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로 손님으로 위장해 매장을 감사하거나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거짓말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부모님의 아래에서 가 거짓말로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는 부모님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통해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도 꾸중을 듣고 다른 누군가는 거짓을 말해도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을, 그리고 진실에 적당히 거짓말을 섞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거짓과 진실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순간부터 그녀는 거짓말쟁이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사회생활이나 예의라는 이름 아래 이와 같은 적당한 거짓말을 하며 살아온 경험이 있음으로 쉽게 납득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작가는 거짓말 자격증을 만들어냈다. 자격증이 존재하고 이를 가지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지 않게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한 거짓말이 그 자체로 경제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녀에게는 자격증 소지자임이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과 더 늦기 전에 1급 자격증을 가져야 한다는 굴레가 씌워진다.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3)에서 진실을 거짓말처럼 말 하는 것(2)까지는 쉽다. 그녀가 거짓과 진실을 구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급 시험을 위해 의뢰를 받으면서 그녀가 구분 짓고 있던 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해야 하며 두 사람에게 동시에 사랑 받아야 하는 상황이 그녀의 거짓말을 무디게 만든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1급이 되기 위한 관문이었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1급의 자격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1급 자격증 획득에 실패한다. 그 대신 그녀는 가족에 대해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며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는 부모님이 거짓말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것과 어머니의 거짓말이 사랑과 그리움, 본인의 상처를 숨기려는 마음에서 공갈로 표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거짓말이 늘 엉성한 구라나 허풍이었던 것은 가족과 본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요양원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구라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짓말로 묶여 있던 가족이 거짓을 벗고 진실을 드러내고서야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작가는 거짓말과 진실 사이를 세 등급으로 나눔으로써 오히려 진실과 거짓에 대한 구별을 모호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것과 거짓말이 전부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답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알게 된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통한 기준 마련이 마치 사회화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우리가 거짓을 말할지 진실을 말할지 선택하는 일의 밑에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쁜 이유에서 거짓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막차를 탔을 때 하나 남은 자리를 저는 금방 내리니까 괜찮아요.”라는 말로 양보하거나 돈이 없어 기념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에 오늘이 기념일이었어? 나도 까먹고 준비 못했다.”라고 넘기는 일, 잘 지내냐는 말에 당연히 잘 지내지.”라며 안심시키는 것 까지. 좋은 뜻에서 또는 필요에 의해 하게 되는 거짓말은 많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진실이 항상 옳은 답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에게 거짓말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거짓이 만연한 곳이다. 적당한 거짓은 지탄 받는 대신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로 포장되어진다. 그렇다면 진실과 거짓의 타협점은 어디이며, 왜 우리는 거짓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진실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끔 배운 것일까. 작가는 우리가 진실과 거짓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한 번쯤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본 적 있다. ‘한 알만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은 알약이 있다면 어떨까에서부터 사실 나는 부잣집에서 잃어버린 아이가 아닐까에 이르기 까지, 한 번쯤 누구나 생각 해 봤을 법 하고 실제로 있을 법 한 것들을 말이다. 상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상상들은 잠들기 전 잠깐 스쳐가는 생각에 그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주제가 되거나 책, 영화 등으로 만들어져 문화생활에 기여하기도 하고, 인류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학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며, 신앙이라는 믿음아래 하나의 세계나 국가를 형성하기도 한다. 감히 상상력을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의 근원은 무엇일까? 상상이란 필요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나 피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또는 과거에 했던 어떤 선택에 대한 후회감 등이 밀려오는 상황을 겪었을 때, 더 나은 현재를 위해 나아가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 상황을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되짚어보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는 항상 만약 그랬다면.’이라는 가정이 수반된다. 이러한 가정이 바로 상상의 근원이며 가정을 통한 상황의 재구성과정 속에서 발휘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은 문제 상황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의 결핍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 해결책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상상이 단지 없는 해결책을 대신해 주는 역할만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혹은 상상이 항상 후회 때문에 발휘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다. 앞선 내용은 단지 상상의 근원에 대한 하나의 답일 뿐 상상의 용도나 역할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상상을 문제 상황에 대한 해결책만으로 남겨 놓지 않는다. 그들은 상상을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에 덧입힘으로써 새로운 상징이나 상황을 창조하고, 이를 사용해 독자들에게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관점들을 꺼내어 작품 속 상황이나 상징들에 반영하며 글을 읽게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독자는 작품 속 인물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작품 속 인물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작가의 문제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키게 되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사회 문제를 발견해 현실로 가져가게끔 만드는 것이다. , 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에 자신만의 상상을 덧입혀 작품 속에 구현해 냄으로써 작품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게 느끼도록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둘 사이의 상관관계나 연관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석순의 작품들 중 <거의 모든 거짓말>, <밤이 아홉이라도>, <철수 사용 설명서>, 를 대상으로 하여 작가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상징이나 세계가 어떤 문제의식을 반영했는지, 그리고 독자에게 문제의식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중점으로 하여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그의 작품을 읽어 본다면 그가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매우 엉뚱하면서 참신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격증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야의 자격증이 있고, 그 양을 객관화해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측정하는 장비가 있으며, 설명서가 필요 없을 것 같은 것에 설명서가 존재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상상들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 참신한 배경 설정을 통해 독자에게 뒷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글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 속 사회와 배경은 현실을 닮은 암울한 사회적 상황들을 숨기지 않은 채 드러내고 있다. 가난하고 빚을 진 가정의 모습,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모습, 스펙이나 장점 등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해 구박당하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자칫하면 작품에 반영된 현실의 우울함이나 부조리함이 작품의 참신함을 무너뜨릴 수 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독자에게 필요 이상의 우울함이나 연민 등을 느끼게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잘 구현된 있을 법 한 비현실적 상황이며 그의 작품이 지닌 또 다른 장점이다. ‘있을 법 한 비현실적 상황은 독자가 이입을 통해 필요 이상의 감정을 느낄 때면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배경이나 상징이 등장해 거리를 벌려 주고, 그 거리가 너무 벌어질 때면 다시 배경이나 상징에 현실을 반영하게끔 함으로써 거리를 줄여 준다. 이런 적당한 거리조절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상상을 덧입혀 펼쳐 놓은 문제 상황들을 단지 책 속 내용으로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사회문제들 중 비슷한 것을 찾아내 투영해 볼 것인지 직접 결정하게 만듦으로써, 단순히 문제 상황을 현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특히 <거의 모든 거짓말><밤이 아홉이라도>는 현실의 상황과 작품 안의 상황이 적당히 맞물려있어 독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진 좋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점이 현재와 과거를 자주 오고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독자가 내용을 혼동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철수 사용 설명서>의 경우 사용 설명서라는 주제와 형식을 통해 쓰인 작품으로 상상력의 참신함만으로 따지면 가장 뛰어나지만, 형식의 틀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독자가 글의 서사적 부분을 느낄 수 없어 초반에 가졌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나 집중력을 감소시키고, 같은 형식이 계속 반복됨에 따라 지루함을 느끼게 하며 인물이나 상황에 쉽게 이입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으로는 각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고 해석해 보도록 하겠다. 각 작품을 배경과 상징, 내용으로 분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거의 모든 거짓말>

  배경: 거짓말 자격증을 따는 것이 당연해지고 그 자격증이 취직을 하는데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가정의 모습.

  상징: 거짓말 자격증.

  내용: 시점 인물()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로 1급 시험을 앞두고 있다. 3급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구라가 주특기이며 빚쟁이가 되어 도주 중인 아버지와 2급 소지자로 공갈이 주특기이며 하객대행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 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거짓말을 치기 시작한다. 이미 거짓말 자격증이 필수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는 급수가 높아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때문에 나는 더 늦기 전에 1급이 되어야 한다는 불안함에 떨고 있다. 3급은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고, 2급은 진실을 거짓말인 것처럼 말한다. 1급이 되면 홀로그램 스티커가 붙은 자격증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자격증 소지자에 대한 내용이다. 1급 승진 시험 점수를 모으기 위해 일을 하던 나에게 두 가지 의뢰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남자를 떠보려는 여자와 소년을 떠보려는 남자의 의뢰이다. 그렇게 나는 남자와 소년을 동시에 만나며 진실과 거짓사이의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의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거짓과 진실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고, 더 이상 거짓말을 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고 되도 않는 구라를 치고 있는 아버지를 알게 된다. 가족 모두 서로가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결국 승진하지도 그들 중 누가 자격증 소지자인지도 알아내지 못 한 채 2급으로 남는다. 1급 소지자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분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거짓말을 시작하게 한다.

이 사회는 거짓말 자격증이 필수가 된 사회이다.

3급은 거짓말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고, 2급은 진실을 거짓말인 것처럼 말한다.

1급 소지자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

 

  <밤이 아홉이라도>

  배경: 감정 측정기와 표준감정 지수가 등장하여 표준감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분류해 치료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부적응자의 모습.

  상징: 감정 측정기. 표준 감정.

  내용: 시점 인물()은 어릴 적 학예회에서 수치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감정측정기가 등장하면서 부터 사람들은 표준감정에서 벗어났던 사람들을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감정진단서를 제출하는 것은 필수가 되었으며 이는 취직 뿐 아니라 결혼, 주거지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불안한 감정 때문에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된다. 표준 감정 수치에서 벗어난 사람은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되어 국가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또한 그들을 고용하려는 사람이 없기에 공공근로를 하며 살아가야 하고 주거지 역시 열악하다. 그러던 중 나는 을 만나 동거하다가 성향차이로 헤어지게 된다. 싼 값에 보호 관찰 대상자들을 고용하는 용역업체에서 일을 하게 된 나는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감정 수치를 표준에 맞춰주는 치료기를 달고 일을 나간다. 그러던 중 나는 남자와 함께 빌라를 철거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곳은 내가 현과 동거를 하던 곳이었다. 불안함에 떨고 있는 나에게 남자가 약을 먹이고 나는 현과 함께 하던 때를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나는 센터에서 용역업체 사장이 내 감정 수치를 조작하고 있었다는 것과, 내가 표준감정에 맞지 않았던 것이 불안함 수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당신의 감정은 표준인가요.’라는 감정 검진 마지막 질문에 대답 대신 웃어 보인다.

  분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감정측정기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감정진단서의 제출과 검증을 거쳐야만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표준 감정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면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된다.

나는 불안함 수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되었다.

 

  철수 사용 설명서>

  배경: 개개인별로 사용 설명서가 있어 그에 맞춰 그 사람을 고용할지 그 사람과 연애할 지 등을 결정하며, 이전 사용자가 쓴 후기로 그 미리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 시대 젊은이의 모습.

  상징: 사람 사용 설명서. 철수.

  내용: 이 책은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 총 네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챕터별로 철수에 대한 설명서가 먼저 나오고 설명서에 해당하는 내용에 맞춰 철수가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에 사용 후기가 나오는 형식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철수는 취직 준비생으로 그려진다. 무엇 하나 뛰어나지 못해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가도 테스트 기간이 끝나면 반품되어 진다. 사랑을 할 때에도 쉽게 열이 오르는 바람에 관계를 망치기 십상이다. 가족들 역시 철수를 대하는 태도가 남들과 다르지 않으며수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안 읽은 사람들 탓으로 돌린다.

분리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철수에 대한 설명서, 실제 생활하는 모습, 사용 후기가 나온다.

철수는 취직 준비생이다. 그러나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간다 해도 스펙 미달 등을 이유로 테스트 기간이 끝나면 반품된다.

쉽게 열이 오르는 결함 탓에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가족들 역시 철수를 제품처럼 대한다. 철수 또한 자신의 단점을 사용설명서를 제 대로 읽지 않고 사용한 사람들 탓으로 돌린다.

 

  위에서 분리한 것에 따라 작품 내용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거의 모든 거짓말>에서 시점 인물()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로 손님으로 위장해 매장을 감사하거나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거짓말로 돈을 벌어 살아가는 부모님의 아래에서 가 거짓말로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는 부모님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통해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도 꾸중을 듣고 다른 누군가는 거짓을 말해도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을, 그리고 진실에 적당히 거짓말을 섞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거짓과 진실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순간부터 그녀는 거짓말쟁이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사회생활이나 예의라는 이름 아래 이와 같은 적당한 거짓말을 하며 살아온 경험이 있음으로 쉽게 납득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작가는 거짓말 자격증을 만들어냈다. 자격증이 존재하고 이를 가지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지 않게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 시작한 거짓말이 그 자체로 경제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녀에게는 자격증 소지자임이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과 더 늦기 전에 1급 자격증을 가져야 한다는 굴레가 씌워진다.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3)에서 진실을 거짓말처럼 말 하는 것(2)까지는 쉽다. 그녀가 거짓과 진실을 구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급 시험을 위해 의뢰를 받으면서 그녀가 구분 짓고 있던 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해야 하며 두 사람에게 동시에 사랑 받아야 하는 상황이 그녀의 거짓말을 무디게 만든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1급이 되기 위한 관문이었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1급의 자격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1급 자격증 획득에 실패한다. 그 대신 그녀는 가족에 대해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며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는 부모님이 거짓말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것과 어머니의 거짓말이 사랑과 그리움, 본인의 상처를 숨기려는 마음에서 공갈로 표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거짓말이 늘 엉성한 구라나 허풍이었던 것은 가족과 본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요양원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구라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짓말로 묶여 있던 가족이 거짓을 벗고 진실을 드러내고서야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작가는 거짓말과 진실 사이를 세 등급으로 나눔으로써 오히려 진실과 거짓에 대한 구별을 모호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것과 거짓말이 전부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답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알게 된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통한 기준 마련이 마치 사회화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우리가 거짓을 말할지 진실을 말할지 선택하는 일의 밑에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쁜 이유에서 거짓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막차를 탔을 때 하나 남은 자리를 저는 금방 내리니까 괜찮아요.”라는 말로 양보하거나 돈이 없어 기념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에 오늘이 기념일이었어? 나도 까먹고 준비 못했다.”라고 넘기는 일, 잘 지내냐는 말에 당연히 잘 지내지.”라며 안심시키는 것 까지. 좋은 뜻에서 또는 필요에 의해 하게 되는 거짓말은 많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진실이 항상 옳은 답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에게 거짓말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거짓이 만연한 곳이다. 적당한 거짓은 지탄 받는 대신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로 포장되어진다. 그렇다면 진실과 거짓의 타협점은 어디이며, 왜 우리는 거짓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진실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끔 배운 것일까. 작가는 우리가 진실과 거짓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평론 부문 심사평

공상철 교수 (중어중문학과)
 

  응모 창구가 한산하던 예년과 달리 올해 평론 부문에는 총 4편의 원고가 투고되었습니다. ‘비평이라는 제도와 형식이 제 자리와 제 목소리를 잃어버린 우리 시대에 이들 원고가 보여주는 치열한 고민과 잔뜩 벼린 언어들이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

  전성태의 늑대를 통해 소설 읽기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장대청의 늑대는 울음으로 부르고, 전석순의 세 단편을 통해 문학과 사회의 접경지역을 서성이고 있는 안은진의 사회문제를 반영한 상상력, 배수아의 뱀과 물을 통해 인간 실존의 이면에 물음을 던지고 있는 윤수연의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불고 있다, ‘바보의 서사를 통해 현대사회의 정상성을 문제 삼으며 이를 문학의 존재성으로 연결하고 있는 홍주성의 바보와 현대 서사, 하나같이 문제를 던지는 솜씨나 텍스트를 분석하는 눈,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언어의 내공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 가운데 안은진의 사회문제를 반영한 상상력에 조금 더 눈길이 갔던 이유는 비평이라는 제도 혹은 형식이 처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비평이란 포지셔닝의 물리학 같은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의 안과 밖, 텍스트와 컨텍스트, 문학과 사회 사이로 좁게 난 길, 그리고 이 길 위에서의 어떤 기우뚱한 동태성 같은 것 말입니다. 안은진의 위 글이 기술적인 미숙성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물리학을 조금 더 무모하면서도 치열하게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책을 펼치면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강요했던 것과는 다른 삶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 이 대목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네 분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 박수를 보냅니다.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처음 써본 평론인지라 전문성이나 체계성 부분 외에도 부족한 점이 많아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뜻밖의 수상 소식을 듣게 되어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먼저, 난생 처음으로 문학평론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시고 직접 써 볼 기회를 가지게 해 준 비평실습수업의 이명원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제 글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글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숭대시보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숭실문화상에 참여했던 것이 제 대학시절 중에서 가장 뜻 깊은 일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안은진(사학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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