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의사가 잘 쉬고, 잘 먹으라 그랬는데.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왜냐하면 양을 빨리 찾아오지 않으면 오는 잠들 수 없을 거고, 그러면 내 마음이 아플 테니까. 창밖으로 양이 총총대며 걸어갔다. 돌아보니 갈대였다. 이런. 양은 어디로 갔나.

  버스는 안에는 여러 음식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릉에 다녀온 게 언제였더라. 엄마의 소매를 잡아끌고 갔던 기억이 났다. 적어도 오 년은 지난 일이었다. 들고 온 것도 지갑 하나뿐인데. 멀미가 나 몸을 뒤척였다. 내 맘도 모르고 옆 좌석 아저씨는 연신 다리를 벌려댔다. 나는 결국 몸을 작게 구겨 넣는 쪽을 택했다. 뒷좌석의 사람들은 어디에서 뭘 먹어야 한다고 떠드는 중이었다. 가을 소풍이라도 가는 모양이었다. 커피 콩 빵이라.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하나 사 갖고 가면 오가 참 좋아할 텐데. 머리를 흔들고 시트에 몸을 기댔다. 오랜만에 걸친 크림색 카디건에선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고작 집 앞 산책일 뿐이었다. 화려한 차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고른 옷이었다. 알파카 털로 만들어진 외투는 푹신한 만큼 몸을 커 보이게 만들었다. 오와 결혼하기 전의 일이니까 적어도 삼 년 전이다. 알파카도 어찌 보면 양이지, 하는 마음으로 입어 본 것이었는데……. 슬리퍼만 신은 맨발을 비볐다. 그러자 왠지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젠장. 잠이 왔다. 핸드폰이라도 들고 올걸. 오가 나를 걱정할 텐데. 그러니 빨리 양을 찾아 돌아가야지. 눈을 감았다.

  일주일 전, 오는 퇴근길에 양 한 마리를 데려왔다. 유난히 털이 하얀 북실북실 양.

  이게 웬 거야.

  나, 통 잠을 못 자잖아.

  수면제를 받지.

  초진이 십만 원이래. 가당키나 하니.

  양을 세면 잠이 잘 온다는 말을 믿었던 걸까. 영어로 발음되는 쉽과 슬립이 비슷해 그런 줄도 모르고. 한국에서만 살아온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였다. 차라리 털을 뽑아 베개 속에 넣으면 양을 세는 거보단 잠이 잘 올 텐데. 눈과 코가 검은콩처럼 박힌 새끼양이 날 바라봤다. 딱 갓난아기만한 양이 나를 보고 마, 울었다.

  오는 양을 침실에 두고 싶어 했지만 나는 동물과 같은 방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고집을 부려 안방에 묶어 두었다. 양은 양이고, 우리는 우리니까. 오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침실 불을 껐다. 침실과 안방은 가깝게 붙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양의 풋내랄까, 흙냄새 같은 게 흘러 들어왔다.

  나란히 눕자 침대가 푹 꺼졌다. 순간 아랫배가 뻐근해져 몸을 웅크렸다. 먼 방에서 양이 울었다. 곧 오의 얕은 숨도 메에,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평소와 다르게 그는 일찍 잠에 들었다. 정말 양이 효과가 있는 걸까. 안심하며 나도 눈을 감았다. 그 날 나와 오는 잘 잤다. 나란히 기지개도 켜고 아침 인사도 나누었다.

  우리는 개운한 표정으로 아침을 먹었다. 숙면에 좋다는 연근 조림도 나누어 먹었다. 양은 아직 안방에 묶어 놓은 채였다. 이따금 그것이 숨을 내쉬는 소리를 빼면 집 안은 조용했다. 우리는 의식을 치르듯 조용히 반찬을 아삭거렸다. 나는 반 그릇을 오는 한 그릇을.

  마, 하는 울음소리에 잠시 눈을 찡그렸다.

  몸이 안 좋아?

  그가 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의사가 잘 쉬고, 잘 먹으면 된대.

  살이 더 빠진 거 같아.

  그렇지도 않아.

  내 몸이 걱정된다며 반차를 쓰겠다는 오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내보냈다. 양과 나를 키우려면 오가 돈을 벌어 와야 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양은 자주 울었다. 배가 고픈 것일까 싶어 냉장고에 아무렇게나 남은 깻잎이나 상추를 꺼냈다. 언젠가 임산부에겐 단백질이 필수라며 돼지 목살과 먹던 것이었다. 저울에 달아 딱 백 그람을 맞추어 주었다. 양은 그것을 해치우고 드러누운 채 눈을 깜빡였다. 거실에 노란빛이 들자 양은 꾸벅꾸벅 졸았다. 나도 털을 쓰다듬으며 졸음을 만끽했다.

  오는 점심으로 뭘 먹었을까. 또 편의점 음식은 아니겠지.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내 생각을 할까.

  오는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입맛이 없어 보여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미리 받아둔 물에 목욕도 하게 했다. 오는 피곤하지 않게 가만히 있으라 했지만, 나는 오가 잘 자길 원했다. 숙면에 취하려면 체온도 따뜻하게 유지하고 배도 불러야지. 우리는 흰 색 레이온 잠옷을 걸치고 침대에 누워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봤다. 서로 만지는 것도, 하루의 일과를 묻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걱정과 불안을 안고 있을 뿐. 그 날 나는 잘 잤고, 오도 그랬다고 믿었다.

  다음날 양에게 목줄을 걸고 외출했다. 하늘은 맑았고, 낙엽도 예쁘게 물 드는 중이었다. 베란다에서만 보기엔 아까운 풍경이었다. 아파트 앞 공원에는 행인이 많았다. 저마다 손에 붙든 게 있어 보였다. 어떤 여자는 유모차를, 노인은 지팡이를, 젊은 청년은 개 목줄을 잡고 길을 따라 걸었다. 모두 한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거스르며 양과 움직였다.

  유모차를 끌던 여자들이 모인 쪽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울자 다 같이 울기 시작했다. 왜 이리 공원에 아가들이 많나, 생각하며 길을 따라 걸었다. 그때 벤치에 굽어 앉아 있던 노인이 나를 쳐다봤다.

  개가 아주 크구먼.

  양이에요. 개가 아니라.

  웬 양이오.

  남편이 잠을 못 자서 한 마리 데려왔어요.

  노인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말했다. 집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햇빛을 봐야 한다느니, 쇠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다 요즘 스마트폰이니 뭐니 중독돼서 그런 거라느니, 앉아서 일만 해 버릇해서 그런 거라느니. 곧 등산화를 벗어 발바닥을 누르기 시작했다. 여길 누르면 잠이 잘 온다나. 그의 주름 많은 손에 하얗게 힘이 들어갔다. 침샘이 뻐근해지며 신물이 올라왔다.

  할아버지, 다 알아요.

  응?

  안다고요.

  그때 아기를 달래는 젊은 여자의 웃음이 들렸다. 배가 아팠다. 이제 그만 아플 때도 됐는데, 아파도 너무 아팠다. 나는 무언가 안은 사람처럼 팔을 모아 웅크렸다.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펴니 주변은 조용했다. 잡고 있던 목줄은 사라져 있었다.

  양은 어디로 갔나.

 

  냄새나게 뭘 그렇게 버스에서 처먹는지.

  옆에 앉은 아저씨가 뭐라 중얼대고 있었다. 뒷좌석의 커플이 무엇을 먹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하철에서 익숙히 맡던 냄새. 델리만주였다. 그들은 봉투를 연신 바스락거리며 떠들었다. 가을이니 방어가 한참일 거라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해변에서 콩 빵을 먹으며 산책을 하다, 유명한 바리스타가 있다는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마시고, 숙소에 돌아와 술을 먹자고.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을 먹자고.

  아직 강릉에 도착하려면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뒷좌석에서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옆에서는 아저씨가 혀를 차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모든 소리가 박자를 맞춘 거처럼 딱, 딱 흘러갔다. 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피곤했고, 자고 싶었다. 나는 고개만 돌려 아저씨를 쳐다봤다.

  먹을 수도 있지 뭘 그래요.

  예?

  사람이 뭘 먹을 수도 있지.

  쯧, , . 하는 소리가 비슷한 간격으로 들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버스 안에는 두 남녀의 웃음과 버스 바퀴의 진동 소리만 들렸다. 델리만주의 영양 성분이 어떠했더라. 빵 부분은 탄수화물이라 쳐도, 크림은 우유와 버터, 설탕을 녹여 만들 것일 거다. 단백질이라곤 하나도 없이 지방과 탄수화물만 빽빽이. 하나당 육십, 많으면 팔십 칼로리. 네 개만 집어 먹어도 금방 밥 한 공기만큼의 칼로리였다. 저런 음식을 어떻게 먹지. 아무 생각도 없이 너 입에 하나, 내 입에 하나 저런 걸 어떻게 하지.

  어라, 양이 지나가네.

  하늘을 보자 구름이었다. 강원도 쪽으로 올라갈수록 구름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도착하니 버스 터미널이었고, 타고 보니 도시 밖으로 가는 버스였다. 양 풋내가 나는 쪽으로 계속 걸어간 결과였다. 내가 무슨 탐지견도 아닌데 강릉이라니. 생각해보면 거기 유명한 양 목장이 있다고도 들은 거 같았다. 양은 제집을 찾아서 거기로 떠나 버렸을까? 내가 상추와 깻잎을 주고, 쓰다듬어주기도 했는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곳에는 겨우 들고 온 지갑이, 그리고 작은 막대 사탕이 만져졌다. 딸기 우유 맛 사탕. 언제 산건지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가물가물하다는 것은, 단지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였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오와 만나기 전의 나는 모두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전리품 같은 사탕을 만지작거렸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어린애 시절 나는 매일 같이 돈을 썼다. 그것이 꼭 필요한 물건이었으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사는 건 언제나 간식이었다. 냉장고에는 인터넷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수입 음료수가 가득 찼고, 높이 쌓인 수납 상자에는 종류별로 간식을 채워 두었다. 서로 다른 상표의 초콜릿, 사탕, 과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아주 많은 것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사람을 어느 텔레비전 갱생 프로그램에서 본 적 있었다. 마음이 허해서 그래요, 허해서……. 중년의 상담사가 그렇게 말했다. 모자이크된 얼굴을 가진 그녀는 십 년도 넘게 집을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도 나와 똑같이 비쩍 마른 어깨와 목선을 가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쇼핑 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며 방송은 끝났다. 나는 과자로 가득 찬 집에서 이따금 그 여자를 떠올렸다.

  나는 풀만 먹는 사람이에요.

  생채소가 맞지 않는 체질이라 언제나 속은 더부룩했다. 하지만 그것은 배고픔을 잊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몇 대접씩 먹어도 살이 늘지 않았다. 엄마의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된 일 년 사이 십오 키로가 빠졌다. 다 엄마 덕분이었다. 아니, 때문이다.

  어느덧 집 안은 과자로 가득 찼다. 과자 한 봉지라도 당장 놓을 곳이 없어진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과자를 한 줌씩 가지고 집을 나서는 쪽을 택했다. 때문에 주머니는 언제나 과자로 차 있었다. 아는 사람과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와 함께 주었다. 그 누구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과자를 한 줌 사 왔다.

  커피 콩 빵. 다들 그걸 사 와야 한다고 재촉이야.

  웃음이 났다. 뒷자리 커플은 아직도 먹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게 뭔데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 건지. 저들이 먹고 온 델리만주와 그다지 큰 차이가 날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커피 콩 빵인지 뭔지를 사 들고 돌아가고 싶어졌다. 오가 아주 좋아할 것이다. 먹는 건 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생각해보니 오늘은 버스표를 제외하면 돈을 전혀 쓰지 않았다. 삼천 원 정도는 써도 괜찮을 텐데.

  딸기 우유 맛 사탕을 눌러 보았다. 조금 녹았는지 말랑거리는 거 같았다.

  버리는 거, 도와줄게.

  백 리터 종량제 봉투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 왔던 오가 떠올랐다. 발 디딜 곳이 없어 그는 이불 위에 겨우 서 있었다. 겨울이었고, 그의 볼은 빨간색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주면 되는데, 어디에 기부라도 하면 되는데, 하며 말을 흐렸다. 오는 그런 내 맘을 무시하며 간식을 모두 봉투에 쏟아부었다. 하루가 꼬박 걸려서야 집 안은 말끔해졌다. 종량제 봉투가 크게 여섯 개 나왔다. 간식을 빼면 여기 뭐가 남을까, 생각했던 집에는 달랑 이부자리만 남았다. 엄마가 바느질해 만들어준 다 헤진 싱글사이즈의 이부자리. 우리는 봉투를 무겁게 들고 겨울 길을 걸었다. 오는 두 개를, 나는 한 개를. 그런 날도 있었지. 사탕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는 왜 나를 사랑할까.

 

  잠에서 깨어보니 휴게소였다. 왜 도시를 빠져나가는 버스만 타면 잠이 잘 오는지 모르겠다. 무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입술을 깨물었다. 양을 잃어버린 건 나였다. 그러니 내가 양을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집중해야 한다. 오가 편히 자도록 내가 도와줘야지.

  사람들이 분주히 버스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아저씨까지 자리를 벗어나자 힘이 풀렸다. 나도 잠시 앉아 있다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휴게소의 사람들이 양의 행방을 알지도 몰랐다. 뜨거운 열기를 뿜는 차 사이를 가로질러, 고구마 과자를 파는 점원에게 다가갔다.

  뭐로 드릴까요.

  아뇨, 그게, 양을 보셨나, 해서.

  점원은 잠이 덜 깼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바싹 튀긴 고구마를 종이컵에 수북이 담는 중이었다. 작은 컵 삼천 원, 큰 컵 오천 원. 종이컵이 기름으로 젖어 반투명해 진 것이 눈에 띄었다. 점원은 이내 나를 무시하고 고구마를 기름통에 넣고, 꺼내고를 반복했다.

  익숙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뒷좌석의 커플이었다. 오천 원어치를 사야 한다, 삼천 원어치만 사도된다, 다투는 중이었다. 이미 그들은 알 감자와 맥반석 오징어, 사이다를 들고 있었다. 이제 곧 강릉에 도착할 텐데. 결국, 작은 컵을 산 둘은 버스로 돌아갔다. 바람이 불었다.

  어느 여름 끝물, 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조른 적이 있었지. 지난밤 하드를 나누어 먹으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뭐 먹는 사람치고 살 안찐 사람 못 봤다. 열 살 무렵에 엄마에게 들은 말인데도, 그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팥과 바닐라 맛이 나는 붕어 모양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반으로 쪼개 나는 작은 쪽을 오는 큰 쪽을 먹었다.

  좋네.

  오가 말했다.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면 어땠을까. 내 살덩이에 대한 모욕 대신, 비타민이라고 속여 먹인 식욕억제제 대신, 좋다는 그 한마디면 나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됐을 거다. 오를 약 올리며 큰 쪽을 골라 먹는 사람이, 일일이 칼로리와 영양성분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 먹지도 않을 간식을 집 안 가득 쌓아놓고 대리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아침에는 아침밥을 먹고, 저녁에는 저녁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을 텐데.

  우리는 끈적거리는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었다. 좋다. 나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어느덧 뒷좌석의 연인들은 버스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양이다.

  쫓아가 보니 솜사탕이었다. 점원이 무슨 색으로 드릴까요, 물었다.

 

  삼십 분이면 강릉에 도착한다고, 기사가 어눌하게 말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게 언제였지. 엄마를 강릉의 요양원에 넣고 온 날일 것이다. 겨우 오 년 전의 일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정신을 잃기엔 젊었고, 바다를 처음 보는 것 치고는 늙은 사람이었다. 이미 이혼한 아빠마저도 그렇게 말했다.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지. 최소한의. 나는 웃긴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못 본 거. 어쩌라고.

  버스는 여전히 작은 진동 소리를 내며 달렸다. 아저씨는 코를 골며 잤고, 뒷좌석도 조용했다. 그들이 먹던 감자나 고구마 냄새가 났다. 멀미가 났다. 아니, 멀미가 아니라 익숙한 구토감일 것이었다. 토하고 싶어지면 우선 잠을 자. 오는 그렇게 일러 주었다.

  눈을 감았다. 빠르고 얕은 잠을 잤다.

  그 선잠 속에서 옅은 꿈을 꾸었다. 나는 입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엄마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보란 듯 거실 바닥에 토를 했다. 나온 거라곤 연갈색 액체뿐이다. 엄마 덕분이에요. 목이 쓰라리다. 엄마가 나에게 준 거라곤 미숫가루밖에 없던 겨울이었다. 나 어릴 적, 아빠는 텔레비전 속 아줌마들에게 푹 퍼졌다고 욕질이란 욕질을 다 했지. 나와 엄마는 그걸 그대로 보고 들으며 자랐고. 엄마는 정신을 잃기엔 젊고, 바다를 보기엔 늙은……. 나는 안다. 두 사람이 헤어진 건 결코 엄마가 푹 퍼지게 돼서가 아니라고. 또 그리 믿고 싶었다. 엄마는 바다가 정말 보고 싶었을까?

  먹은 게 미숫가루밖에 없던 겨울날, 나는 아빠처럼 그 집을 뛰쳐나왔다. 그런데도 엄마는 이따금 전화를 하고 택배를 보냈다. 그 안에는 엉성하게 만들어진 이불이나 베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점점 멀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화가 걸려 왔다.

  선이니?

 

  산만한 기분에 눈을 뜨니 사람들이 짐을 챙기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강릉이었다.

  파도가 오, , 하며 철썩인다는 시를 읽은 적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바다가 오, 하며 치나 의아해했다. 그러나 그 이후, 바다를 볼 때마다 나는 동그랗게 입을 말고 오, ,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엄마를 요양원에 넣고 돌아오는 길, 입을 말고 파도 소리를 따라 했다. 그러자 바다 냄새가 입안으로 둥글게 들어왔었지.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빠져나가고…….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버스를 탔다. 버스는 한적한 해변을 향해 달려갔다.

  도착한 바다 위에는 주황색 햇빛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거기엔 양 냄새 대신 미역 비린내 같은 게 났다.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내가 바다나 구경하며 무얼 하는 거야. 어서 빨리 양을 찾아야 하는데. 안 그러면 오는 밤을 꼴딱 새울 텐데. 바닷가엔 양털 같은 바다 거품이 부드럽게 흘러들어오는 중이었다.

  오야, 오야, 무얼 하니. 퇴근길은 평화로왔니.

  급하게 나오느라 저녁도 못 차려놨다. 냉장고에 남은 거라곤 매일 같이 먹던 연근조림 뿐이었다. 그마저도 같이 못 먹게 되었으니 오가 얼마나 섭섭해할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꼭 같이 먹자고 약속했는데. 홀로 탁자에 앉은 그를 떠올렸다. . 그래도 굶지만은 말아.

  오와 처음으로 먹었던 식사가 떠올랐다. 구멍 난 소개팅 자리를 메꾸어야 해 부탁받아 간 곳이었다. 예약되어 있던 초밥집을 취소하고, 무조건 샐러드를 먹어야겠다고 고집했다. 샐러드 전문점에서 나는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양상추를 씹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야 나는 그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됐어요. 저는 간장에 밥만 줘도 잘 먹어요.

  그는 여러 가지 토핑이 올라간 샐러드를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어 오히려 기가 찼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서야 그에게 말했다. 만남이 끝날 때마다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에게 밥을 먹지 말자고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하루 세 시간을 비워 둘게.

  나는 그와 계속 밥을 먹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세 시간이라는 긴 시간이랄까. 식사를 마친 우리는 거리를 걷고, 앉고, 대화를 하고, 눈을 마주쳤다. 음식물이 소화되는 모든 과정에 오가 함께해 주었다. 살이 조금 붙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으로 나의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아이도 가지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오와 나는 신혼 생활을 누릴 만큼 누리다 아이도 가졌다. 신혼 때 보다 부푼 배는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오는 내 배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양을 샜다. 한 마리, 한 마리. 임신 육 주차라는 말을 듣고 돌이켜보니, 그 날은 양자리였다.

  임신하면 이십 키로는 찐다던데.

  내 말을 듣고도 오는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그 날들을 생각하니 배가 당겼다. 배가 당기는 게 아니라, 명치 쪽이 울렁거리는 거 같기도 했다. 의사가 무리하지 말라 그랬는데.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날 달래 주었는데. 오는 그런 나를 등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그 누구도 달래주지 않고.

  통증이 심해져 입술을 깨물었다. 슬리퍼 안으로 모래가 들어가 발바닥도 아팠다. 오 분만 주저앉아 쉬고 싶었다. 그러나 걸어야 한다. 걸어서 양을 찾자. 이제는 오가 행복한 잠에 들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차례였다. 대체 양은,

  어디로 갔나.

  해안선 끝 절벽 위에서 양이 꼬리를 흔드는 게 보였다. 놀라 그쪽으로 곧장 걸었다. 절벽 위로 향하는 돌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곳에는 낡은 요양원이 익숙하게 서 있었다. 마당에는 낙엽 지기 시작한 단풍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이 길을 자주 다녔던 사람처럼 주변을 떠돌아다녔다. 양이 꼬리를 흔들던 쪽으로 가보니 식당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양 꽁무니가 아니었구나. 길에는 할머니들이 천천히 걸어 다녔고, 누군가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들의 꼬불거리는 백발이 온통 양 같아 웃음이 났다.

  어디서 오셨어요?

  단정한 옷차림을 한 여성이 나를 불러 세웠다. 서른 중반 정도 돼 보이고, 요양원에 묵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그녀는 눈썹을 찡긋대며 내 대답을 오랫동안 기다려 주었다.

  그게, 양 못 보셨나요?

  성함이 양인가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렸다. 이런 식으로 오래 뜸 들이면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볼 텐데. 바닷바람이 크게 불어와 얼굴에 닿았다. 날이 차가워지는 중이었다. 엄마도 말년에는 이 바람을 맞으며 죽어갔겠지. 나는 그녀의 장례식도 가지 않았다. 쇠약해진 채 요양원에서 죽었다고만 들었다. 내가 엄마를 맡겨버린 곳이 여기였던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오 년 만의 바다는 익숙했지만, 동시에 너무도 낯설었다.

  선이니?

  그런 전화가 걸려 왔었다. 잠들기 전, 밤이었다. 대답하지 않는 대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다시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끊어진 수화기에 손을 얹고 오래 생각했다. 나도 아이를 낳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러고 다른 사람들이 늘 그렇게 하듯 바다를 보고, 커피를 마시며 떠들게 되겠지. 그때는 전화를 받자. 누구나 하듯 대화를 하자. 엄마. 약해진 손으로 가만히 제 몸을 쓰다듬는 나의.

  눈 밑 쪽에 보조개가 있고, 조금 다리를 저시던 분인데요.

  여자는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시간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아, 그분.

  네. 그분.

  빵을 즐겨 드셨는데.

  아아.

  저희 집 앞에 빵집이 있는데, 만날 거기 거만 고집하셨거든요.

  나는 머쓱해져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우리 엄마한테 밀가루가 웬 말이에요. 해가 점점 멀리 사라지는 중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날도 차가워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양을 찾을 가야 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엄마가 정신이 나가 빵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래서 이 사람이 그녀에게 간식을 먹여 주었다면?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웃으며 사탕을 받더니 요양원 뒷문으로 들어갔다. 어서 돌아가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해질 무렵 그녀가 다시 나왔다. 손에는 갈색 종이 상자가 들려 있었다. 겉표지에 커피 원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커피 콩 빵인데요.

  하.

  저는 매일 먹어서.

  아이고.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손을 흔들 때 마다 콩 빵이 이쪽으로 쏠리고 저쪽으로 쏠리며 덜컹댔다. 오가 이걸 보면 뭐라고 하려나. 또 먹지도 않을 거를 들고 왔냐며 나를 나무랄까. 그가 맛있다고 먹어 준다면 그걸로.

  날이 추워 몸을 웅크린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늘 내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해안가를 거슬러 돌아갔다. 날이 추워 몸을 웅크린 채 걸었다. 그러다 문득 익숙한 냄새가 나 허리를 폈다. 순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그리고 그 중간, 하얀 털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양이었다. 그것은 갈대도, 구름도, 연기도, 솜사탕도, 할머니의 하얗게 샌 머리카락도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양 털이었다.

  모래 바닥이 푹 꺼지는 바람에 신발이 벗겨졌다. 개의치 않고 곧게 걸었다. 바다 쪽으로 걸어갈수록 공기는 눅눅해졌다. 양 풋내도 짙어졌다. 날아가려고 하던 것을 겨우 잡았다. 그러고 나는 그것을 크게 안아 들었다.

  그건 양이 아니라, 베개 하나만큼의 털이었다. 유난히 하얗고 북실북실한 양털.

  파도가 오, , 소리를 내며 철썩였다.

  양털에 얼굴을 묻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나는 겨드랑이에 양털을 끼운 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익숙한 음식 냄새가 났다. 피곤한 얼굴을 한 오가 달려와 나를 안아 주었다.

  밥 안 먹었어?

  기다렸지.

  뭐 하러.

  우리는 감자와 호박이 퍼진 된장찌개를 앞에 두고 늦은 식사를 했다. 연근 조림도 다시 아삭거렸다. 나는 반 그릇, 오는 한 그릇을.

  그나저나 웬 털 뭉치야.

  네가 잘 자야 하니까.

  우리는 밥을 맛있게 먹고, 따뜻한 물로 씻고, 자기 전 물 한 잔도 마셨다. 커피 콩 빵 상자를 열어본 오는 맛있겠다며 나중에 나누어 먹자고 했다. 그러고 침실에 들어와 이놈의 양털을 어찌할까 고민했다. 오는 잠자리의 허리 쪽이 꺼진 거 같으니 그쪽에 넣자고 말했다. 나는 토퍼를 들고, 그 아래 깔려 있던 다 헤진 엄마의 이불 커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것의 지퍼를 열고 오의 허리 부분에 양 털을 가득 채워 주었다. 오는 이런다고 좋아질까, 하며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토퍼를 얹고 토닥이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우리는 불을 끄고 누웠다. 오는 허리를 몇 번 뒤척이더니 이내 편안한 숨을 쉬었다.

  종일 버스에서 졸고 다녀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는 눈을 감아도 어둠, 떠도 어둠이었다. 곧 오의 고요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양털만으로도 잠은 오는 걸까? 손에서 양 풋내가 났다. 내일부터는 의사 말 대로 잘 자고, 잘 먹어야지. 오가 잠결에 몸을 돌려 내 배에 팔을 얹었다. 오의 손바닥은 건조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누군가 마, 하고 대답한 것만 같았다. 놀라 몸을 일으키니 오가 메에, 하며 콧바람을 내쉬는 소리였다. 날 놀리나. 오의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그대로 얹어 두었다. 오가 한 번 더 기분 좋은 메에, 소리를 냈다. 내일은 우리가 잘 잘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불을 오의 어깨까지 끌어 올려 주었다.

  눈을 감았다. 몽글몽글 하얀 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곧 잠에 들 거라는 신호였다. 내일도 개운히 일어나 아침을 차려 먹자. 만약 양이 돌아왔다면 풀을 먹이고, 돌아오지 않았다면 또 찾으러 가면 되지. 그게 어디든, 무엇이든 간에.

 

소설 부분 심사평

  총 일곱 편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소설이 이야기인 것을 알고 있으며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드는 응모작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어떤 의미(meaning)’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글쓴이에게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쉽지만 드물었다.

  오광식의 [뱀이 파도를 넘어오다]하람이 보름달이 뜨는 밤에 벽화를 그리러 다니는 이야기다. 청춘의 불안과 욕망을 감시의 눈을 피해 도시 곳곳의 건물 벽을 스프레이로 칠하는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이 단편에서는 풍뎅이나 어떤 특정한 것들에 집착하는 하람이라는 인물의 특징이 그로데스크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왜? 라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으로 남는다는 점과 여성에게 한정된 추함/아름다움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불필요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 진술 속에서 문득 드러나는 시점인물의 자의식 과잉의 문장들이 내내 독서를 방해했다. 소설을 왜 쓰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 스스로 질문해 보기 바란다. 다만 이야기를 만들고 지속되는 호기심으로 서사를 끌고 나가는 힘은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응모작을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이상신의 [, ]은 불면증과 유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 어느 날 양 한 마리가 생기면서 벌어지는 소설이다. ‘은 무엇일까. 양이 사라진 후 나는 양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렇게 해서 결국 어머니를 모신 적 있는 요양원까지 가게 되는 이야기. 시점인물은 무엇을 찾았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에서 울려 퍼지는 내면의 소리에 읽는 사람도 문득 주변을 한번 둘러보게 된다. 무엇이 다가와도 일상은 지속될 수 있다는 희미한 안도를 느낄 수도 있겠다. 이야기이되 유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히 환상을 일상의 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여왔다는 점에서 [, ]은 단연 눈에 띄었다. 다른 종류의 소설보다 시각적이며 내면을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상소설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 점도 돋보였다. 다만 앞으로 소설을 쓸 때 조금 더 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과 개인의 이야기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그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는 노력을 조금 더 해보면 어떨까 하는 당부를 남긴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정진하기 바란다.

불어불문학과 이재룡 교수
 예술창작학부 조경란 교수

 

 

수상소감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었는데 떠오르는 건 감사한 분들 뿐입니다. 아낌없는 조언을 해준 우리 소설 창작 동료들 언제나 고맙습니다. , 돈 없을 때 술담배를 마음껏 나눠 주신 분들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물마시며 대화하자 하신 김선아 선생님. 복도에서 울 때 위로해주신 김인섭 선생님. 속 안 좋을 때 지압봉을 꺼내 주신 조성기 선생님. 그 기억들 언제나 간직할 게요. 잊지 않고 쓴 소리와 충고를 아끼지 않은 영원한 선배 태상, 평생 만납시다. 그리고, 나 아플 때 내가 좋아하는 전복 가득한 죽을 가져다 준 너. 너 없이 이 소설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평생 그리울 거야.

  밤새 진심어린 위로를 마다않는 현주. 힘들 때 매일 같이 전화를 준 도영. 백숙 먹으러 와, 한 마디로 나를 울린 유리.

  무엇보다 진심으로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주신 조경란 선생님. 잘 쓰지 말고 좋은 소설을 쓰라하신 말 매일 같이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엄마. 아빠. 가끔 술 드시면 미술을 시켜주지 못해 미안했다는 말 하시죠. 더 이상 그러지 마세요. 저는 글을 써서 행복해요. 보내주신 감기약과 고구마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영원히 감사해요.

  모두들 감사합니다. 다들 감기를 이겨내고 좋은 연말연초 보내세요.

  선과 오가 올해도 이 겨울을 행복하게 나아가길.

                     이상신(문예창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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