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 ‘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다. 동시에 그는 살인마다. 기억을 잃어가는 살인마 병수는 자신의 기억을 메모로 적어두거나, 녹음해둔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의미로 그런 메모를 적었는지, 왜 그러한 녹음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그의 잊혀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의 딸 ‘은희’는 선명하게 기억된다. 일찍이 아내를 보낸 병수는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은희를 그 누구보다 아끼며 살아간다. 이런 그의 삶에 큰 위기가 찾아온다. 은희가 자신과 결혼할 사람이라며 데려온 남자가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엮인 또 다른 살인마라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병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은희의 남자친구가 살인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도 병수는 끝끝내 그 기억들을 붙잡아 은희를 설득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은희는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병수는 본인이 직접 은희의 남자친구 ‘주태’를 처리하는 계획을 세운다.

  결말과 관계없이 ‘살인자의 기억법’은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고 또 미래를 계획한다. 기억은 결국 삶과 직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자연스레 어느 정도의 기억을 잊는다. 모두 다 기억하기엔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병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소중하고 거대한 기억들을 잊는 고통은 그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히는 것들을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13년 8개월 만의 판결이다. 그 더디게 흐른 시간 속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숨을 거뒀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13년 8개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은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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