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길이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담양의 죽녹원
대나무 숲길이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담양의 죽녹원

  사람은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려고도 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예컨대, 꿈에 그리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관광객이 만든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올라갔지만 정작 엠파이어스 테이트 빌딩은 볼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근처에 있는 록펠러 센터의 GE빌딩에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더 몽환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56개국 300여 개 도시를 여행한 나지만 정작 내가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가본 도시를 손에 꼽을 정도다. 가까이 있으니 관심도 없고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여유 아닌 여유가 내가 신발 끈을 동여매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소홀했다는 감정을 느낄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는 것과 비교해서 훨씬 적은 양의 준비만으로도 떠날 수 있는 우리 국토의 도시들을 지도 위에서 찾아본다. 그나마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무더위 한창이었던 작년 여름 신용 카드 한 장과 스마트폰만 들고 국내 제일의 가로수길이 있다는 ‘담양(潭陽)’으로 떠났다. 물론 내가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과의 두 번째 동행(同行)이었다. 목포가 고향인 이 의사 선생님은 언젠가부터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코드’가 맞는 사람과 여행을 한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지적인 담론이고 편견 없는 대화가 된 지 오래다.

  담양은 북호남을 지나 남호남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곡성, 서쪽으로는 장성, 남쪽으로는 광주광역시가 있다. 북쪽으로는 고추장으로 유명해져서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순창이 있다. 호남 지방의 정취는 영남 지방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영남이 유쾌한 호걸의 분위기를 띈다면 호남은 수줍은 아가씨의 고운 자태를 가진 것 같다. 호남의 산천은 선비의 지조가 만들어 내는 강인함의 향기를 내뿜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목으로 부르고 손으로 써내려가는 예술 혼의 냄새를 풍긴다. 물론 나만의 개인 적인 감상(感想)이다. 담양에 대나무가 많아서 내가 조금 취한 것일까.

  담양의 ‘죽녹원(竹綠園)’은 죽도(竹都)로서의 담양을 빛나게 하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다. 대나무는 이 도시를 가 사문학의 보고(寶庫)로 만들었다. 선비들은 대나무 숲에서 선비정신을 연마했고 공명정대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마음을 문학으로 표현했다. 이 도시의 명소 ‘식영정(息影亭)’과 ‘소쇄원 (瀟灑園)’은 선비정신을 구현한 단아한 건축물이다. 대나무 숲을 걷는 동안 서울의 마천루가 뿜어낸 전자파에 오염된 나의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듯 했다. 한국가사문학관이 있는 담양군의 남면이 올해부터 ‘가사문학면’으로 명칭이 변경된다고 하니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가 남다르다.

  대나무의 ‘치유’를 받은 몸을 이끌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가뿐히 걸었다. 담양과 순창을 잇는 15번 국도에 조성된 이 정겨운 길은 산책을 나온 사람들에게 큰 에너지를 선사한다. 귀경길에 나는 마음속으로 한 문장을 썼다. ‘담양은 선비정신이 어우러진 대나무가 우거진 호남의 산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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