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세상만사<3>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참 애정결핍이 심했던 것 같다.

맞벌이 가정이라 아빠는 날 선교원에 맡기고 출근을 하셨는데, 선생님께 날 맡기고 등돌리는 순간 장히도 울어대던 아이였단다. “아빠, 아빠 가지마!” 하며 숨넘어가게 꺽꺽 울어대는 바람에 나중에는 내가 울 시간을 계산해서 출근시간을 정하셨다니 알만 하지 않은가. 또 5시만 되면 언제 데리러 오시려나 하고 밖에 나가서 기다리던 아이였는데,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아빠가 나 두고 갔다며 징징거렸단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긴 하지만 커서도 그 ‘외로움’에 대한 공포는 변하질 않아 손잡고 다니는 건 좋아하고, 낯선 곳에 가는 건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그 철저히 혼자인 모습에 나는 존경심보다는 동정심을 느낀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힘들까. 초등학교 때는 ‘위인전 예수’를 읽다가 운 적이 있는데, 엄마에게 아직까지 두고두고 놀림받는 일이다. 어쩌겠는가. 혼자 ‘희생’하는 영웅은 내 눈물샘에 있어서는 직격탄인걸. 개중에서도 특히 내게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그렁하게 되는 영웅이 있다. ‘레드문’의 주인공 태영(시그너스 이름은 태양이란 뜻의 필라르)이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았으나, 각성하게 되면서 시그너스로 돌아가 온갖 고초를 무릅쓰게 된다. 태영이 지구까지 와서 인간으로 살게 한 적의 손에서 하나뿐인 동생 아즐라는 세뇌돼 형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데, 그와의 갈등을 풀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라르는 모든 걸 떠나보내야 했다. 제 손으로 자신의 원래 육체를 파괴하고, 엄마와 애인을 비롯해 지배자의 칭호와 가장 사랑하는 부하 사다드까지 동생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잃어가며 적을 물리친 후에도 제 자신을 희생해 마른 땅을 부활시켜야 하는 그.


그 과정 내내 울었다. 왜 혼자 해, 왜 니가 희생해. 그 과정은 장엄하면서도 보는 이가 차마 다음 장을 펼 수 없게 할 정도로 가슴아프다. 보는 내내 그래서 말하고 싶었다. “희생하지마!” 만화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 다들 사정이 있고 자신의 이해에 따른 가장 ‘합리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적’은 있다. 동생을 세뇌시키고 태양을 내쫓아 시그너스를 제 발밑에 둔 이가 아니다. 태영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그 모든 인물들이 내겐 적이었다.


보면서 알았다. 평소 대수롭잖게 생각했던 ‘누군가의 희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단 너무 슬픈 얘기가 되지 않을까 겁내는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 하나만 하겠다. 결국 필라르는 혼자가 되진 않는다. 가슴아픈 한숨 백 번에 마지막 안도의 한숨 한 번. 마치 씁쓸한 일 뿐이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소소한 일 하나에 웃게 되는 세상과 닮은 이 레드문은, 아프고 슬픈 만큼 깨달으며 좀 더 깊은 시선으로 세상의 희생당하는 이들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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