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 △장애인 희화화 △성 소수자 차별 △외모 비하 등을 소재로 한 개그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추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정보통신심의에 관한 규정 제8조’에 따라 심의에 착수한 차별·비하 건수는 2012년 329건에서 2016년 3,022건으로 5년 사이 9.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심의는 이용자가 콘텐츠 내용에 대해 심의를 신청하거나 문의했을 때 이루어지며, 방심위가 규정 위배 여부를 판단해 처리한다. 이는 부적절한 개그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눌한 말과 행동, 웃음거리?

  
그동안 TV프로그램에는 어눌한 말과 행동을 하는 출연자를 ‘바보 같다’고 표현해, 사실상 발달장애인 묘사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소재가 공공연하게 사용돼 왔다. 과거에는 장애인 희화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유머로 치부했으나, 최근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의식이 신장되며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언행으로 논란이 불거졌다.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신현준에게 출연자들은 ‘맨발의 기봉이’를 언급했다. ‘맨발의 기봉이’는 신현준이 출연한 영화로, 영화 속 ‘기봉이’는 실제로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소개된 지적장애인 마라톤 선수이다. 출연진들이 “기봉이 인사를 한 번 해달라”고 요청하자 신현준은 영화 속 ‘기봉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MBC 대표이사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차별적 표현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폐지해 달라고 주장하는 청원이 게재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신현준과 고정 출연자들이 벌인 발달장애인 희화화와 비상식적인 비웃음, 비하를 고발하며 관련 기관에 MBC 방송 책임자에 대한 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전지적 참견 시점> 폐지와 방송 책임자의 사과를 받고자 이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인은 또래에 비해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발달이 지연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지가 낮아 빠른 상황 파악이 어렵거나 말과 행동이 느리기도 하다. 희극인들은 이런 부분을 부각해 개그 소재로 사용해온 것이다. 초등학생 발달장애인의 부모이자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저자인 류승연 작가는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또한 “인지 문제가 있는 발달장애인을 바보 취급 하며 웃기는 존재로 묘사하는 걸 중단해달라”며 “당신들이 동네 바보형이라며 놀리는 건 분장을 한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아들이다”라고 방송국 관계자와 희극인 등을 향해 요청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2017년도 장애인 차별 금지법 이행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00명 중 97%는 “정신 장애를 이유로 부당하게 대하거나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답했다. 반면 “정신장애인을 내 아이의 돌보미로 채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59.5%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정신장애인이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인식도 69.1%에 달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은 그 원인을 △정신 장애에 대한 막연한 지식 △모호한 정보 △대중매체에서 극화된 이미지에서 찾았다. 이에 대해 “대중매체에서 정신 장애를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 소수자·외모 비하 개그

  지난해 방심위는 소위원회를 열고 KBS2 <개그콘서트>의 ‘내시천하’에 대한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방심위 측은 해당 코너에서 “내시들을 조롱하거나 여성과 동일시하면서 정상인 남성에 비해 결함이 있는 것처럼 희화화했다”며 ‘의견 제시’ 처분을 내렸다.

  '내시천하’에서는 내시의 신체적 장애를 조롱하고 일반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묘사했다. 코너 속 내시 역할을 맡은 희극인은 여성 속옷을 입고 운동하는 동료에게 “그러다 남자되겠다”고 조롱하고, 세자를 유혹해 중전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내시를 거세된 남성이 아닌,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여성)’나 ‘게이’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정상성의 기준을 남성의 성기로 두고, 이를 박탈당한 존재는 무성애적 혹은 동성애적 성향을 갖는 것처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승한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예능에서 내시를 흔히 말하는 여성성을 갖춘 캐릭터로 소비하는 건 역사가 제법 길다”며 “남성의 재생산 능력, 즉 성 기능만으로 남성의 정체성을 평가하는 이상한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대의 외모를 비하하고 웃음을 유도하는 ‘외모 비하 개그’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다. 지난해 3월 tvN <코미디빅리그>의 ‘오지라퍼’에서는 “‘예쁜 것 같다’ 하는 분들은 앞으로 앉아 주시고, ‘난 좀 아닌 것 같다’ 하는 분들은 뒤로 자리를 바꾸는 시간을 갖겠다”며 방청객의 외모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개그를 보였다. 이에 방심위 소위원회는 ‘방송심의규정 제30조(양성평등) 3항’에 따라 권고를 의결했다. 소위원회는 “비록 개그 소재라 하더라도 소수자 인권과 양성평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여성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삼아 외모 지상 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반복될 경우에는 법정제재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비만 환자를 웃음 소재로 활용해 ‘뚱뚱한 사람은 놀림거리’라는 인식을 조장하기도 한다. 지난해 KBS2 <개그콘서트>의 ‘밥 잘 사주는 예뻤던 누나’에서는 마른 체형의 여성과 통통한 체형의 여성을 비교하면서 웃음을 유도했다. 걸그룹 멤버가 게스트로 등장하자 ‘여신’으로 칭하고, 뒤이어 등장한 희극인에게는 ‘어머니’라고 칭한다. 또한 통통한 체형의 희극인들은 자신의 체형을 ‘자기 비하 개그’의 소재로 삼으며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하기도 한다.

 

SBS '런닝맨'에서 ‘벌칙’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있다.
SBS '런닝맨'에서 ‘벌칙’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있다.

  ‘도’를 넘은 웃음 소재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벌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도한 가학 행위로 웃음을 유발하려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 게임에서 진 출연자는 경비행기 위에 부착된 의자에 앉아 비행을 해야 하는 ‘윙 워킹’ 벌칙을 수행했다. 카메라는 공포감에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 출연자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일부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고통을 드러내고 이를 웃음거리로 삼아도 되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벌칙 장면은 순간 시청률 7%를 넘기며 해당 회차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가학적인 개그가 여전히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라고 해석된다. <런닝맨>의 정철민 PD는 “벌칙과 관련해서 멤버들의 동의를 구했다”며 “윙 워킹은 30년 동안 무사고인 레저스포츠”라고 전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YG전자>가 △몸캠(온라인으로 상대방에게 신체 일부를 노출하는 행위) △성희롱 △성폭력 등을 웃음 소재로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도 제기됐다. 시청자들의 가장 큰 공분을 산 것은 ‘직장 내 성폭력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YG엔터테인먼트라는 직장을 배경으로 한 <YG전자>에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성 상납을 강요하는 듯한 내용이 포함됐다. 외국 투자자는 화상회의에서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신인 모델에게 ‘몸캠’을 요구했다. 이를 모델이 거부하자 그의 상사인 ‘승리’는 투자자를 “높으신 분”이라 지칭하며 이러한 ‘몸캠’ 강요를 방조한다. 이 과정에서 거부하는 모델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매니저들은 모델에게 다가가 상의를 벗겼다. 불법 촬영과 ‘몸캠’이 엄연한 성범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YG전자>에서는 웃음을 위한 소재로 사용한 것이다.

 

'독일 언니들'과 '영혼의 노숙자'를 진행하는 1인 크리에이터 이지희 씨다.  자료: 한겨레
'독일 언니들'과 '영혼의 노숙자'를 진행하는 1인 크리에이터 이지희 씨다.
자료: 한겨레

  변화하는 개그

 
이렇듯 웃지 못하는 개그가 이어지는 원인에 대해 한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사회적인 담론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일부 코미디언들은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해서 혐오 개그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은 사회적 약자를 놀림거리로 삼았을 때 사회적 비판의 강도가 매우 거세며 정치 풍자 개그가 대부분”이라며 “우리도 손쉬운 혐오 개그만 찾기 보다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KBS2 <개그콘서트>를 연출하는 양혁 PD는 “시청자들이 방송에 기대하는 도덕적인 기준이 있다는 걸 안다”며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을 배제하고도 웃음을 줄 수 있는 영리한 방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러한 개그 풍조에 기대지 않고 신선한 소재를 찾아 나서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팟캐스트 <독일 언니들>과 <영혼의 노숙자>를 진행하는 이지희 크리에이터는 “여성들이 들어도 불편해하지 않을 개그를 하고 싶다”며 여성‧성 소수자 등의 게스트 섭외를 통해 무대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불러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방영된 XtvN <최신유행프로그램>은 2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트렌드’를 소재로 다뤘다. △‘갑분싸’ △‘인싸·아싸’ △‘TMI’ 등 신조어와 유행어를 주제로 한 상황극을 선보이고,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의 ‘국뽕(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 문화’를 재치 있게 비판하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오원택 PD는 “기존의 코미디는 다수 대중을 ‘우리’라는 테두리로 감싸고, 사회적 약자를 왕따시키고 조롱하는 쉬운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해왔다”며 “우리가 조롱한 대상은 대부분 사회의 왕따가 아니라 강자들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18년에 출범한 제4기 방심위는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심의를 강화했다. 이는 그동안 제재 건수는 많았으나 대부분 경징계인 행정지도에 그치는 등 제재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성평등 및 소수자 관련 조항 심의 제재 건수는△2015년: 9건 △2016년: 13건 △2017년: 0건이었으나 2018년에는 상반기에만 관련 제재가 31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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