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일(토) JTBC 금토 드라마 <SKY캐슬>이 종영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는 물론, 남부럽지 않은 물질적 부(富)까지 거머쥔 자들이 사는 세상의 수면 밑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경쟁과 욕망의 드라마를 많은 시청자가 관심 있게 시청했다. <SKY 캐슬>은 종편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은 물론 비(非)지상파 드라마 역대 최고 전국 시청률까지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는 <SKY 캐슬>이 ‘가상의 이야기’이기는 하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현실적 이슈가 여럿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의 전체 내용이나 주제를 감히 쉽게 요약해버리면 안될 일이지만, <SKY 캐슬>을 가지고 ‘부모의 비틀린 욕망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자녀’와 ‘거짓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인 나 자신’을 논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SKY 캐슬>에 등장하는 타운하우스 거주자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화려하고 찬란하다. 서울 근교 어딘가의 숲에 세워진 타운하우스는 그야말로 ‘하늘(SKY)의 성(castle)’처럼 아름답게 잘 꾸며졌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와 그 가족 외에는 발 디디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점에서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허락지 않는 요새, 성채(城砦)와 닮았다. 성채에 거주하는 등장인물들은 학부모 모임에서부터 자녀의 학업문제에 이르기까지 오직 같은 타운하우스 거주민에 한해서만 교류한다. 겉보기에 완벽하게 보이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삐그덕 거리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정 대신에 일방적 다그침과 강요로 채워져 있다. 방황하는 아이의 마음은 도벽이나 남모를 일탈로 엇나간다. 손에 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비린내 나는 범죄나 비윤리적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기만 할 뿐 실상은 남사스럽기 그지없는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에 의하면 존엄한 삶이란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구현 가능하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요구 조건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함이 생기면 우리는 자기 존엄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SKY 캐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을(자기 자신을, 가족을, 타인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이 소유한 물질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는 정이나 행복 같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역설하지만 가정에서는 드라마 명대사 그대로 자녀를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사육을 하는’ 비정함, 자식의 친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지금이 친구들을 성적으로 제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는 비틀림 등등. 드라마에서 적나라하게 그려낸 장면 그 어디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드라마는 결국 파탄으로 치닫게 되고 사건사고는 잠잠해진 듯하지만, 그저 원점으로 돌아왔을 뿐 <SKY 캐슬>의 견고한 성채(城砦)에는 미세한 균열 조차 생기지 않았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저것이 과연 옳은가. 저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 저런 비극이 발생(혹은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등. 그러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되, 그것이 반드시 엄숙함과 진지함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리라. 세상은 피라미드라고 속삭이는 말에 지구는 둥근데 세상이 왜 피라미드냐고 뿌리칠 수 있는 과격함도 존중받아 마땅한 선택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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