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규율이 강조되는 공간에 따뜻한 마음과 음악성으로 무장된 주인공이 나타난다. 갖가지 사연을 가진 인물들은 차츰 숨어 있던 소질을 발휘한다. 주인공은 그들을 하나로 모으며 음악적 성취의 절정을 보 여주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사운드 오브 뮤직, 시스터 액트, 하모니… 영화 코러스(Chorists)도 이와 같은 계 열의 소위 ‘힐링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주인공(마띠외)은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의 한 보육원에 음악교사로 부임한다. 돈만 밝히며 교사와 학생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장. 책임감이나 열정과 거리가 먼 교사들. 그 사이에서 말썽꾸러기 아이들에게 합창을 가르치기 시작하는 선생님. 흔한 패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평범한 외모에 사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마띠외 선생은 소심하고 평범하여 키팅선생류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교장의 비열한 지시에 당당히 항거하는 장면…같은 것은 없고, 덩치 큰 비행소년 앞에서 흠칫 겁먹는 장면이 있다). 아름다운 학부모에게 비전 없는 연심을 품어 민망한 결말의 로맨스를 제공하고, 그가 소질을 발견하고 키워낸 소년 은 선생을 까맣게 잊은 채로 성공한 음악가의 인생을 살아가는 바, 사제 관계의 비정한 현실도 잘 보여준다.

이 영화에 반해 몇 번이나 반복해 보던 나는 어느샌가 합창단의 솔로이스트(모랑쥬)에게서 점차 비행소년(몽 당)에게로 슬그머니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아이들을 교화시킨 것이 음악일까? 애초에 아이들이 어긋난 원인은 어디서 왔을까? 보육원 아이들이 저지르는 말썽은 단순한 장난 정도가 아니라 절도, 상해 등 엄연한 범죄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폭행과 협박이 횡행한다. 이에 대해 면회 금지, 단체 기합, 모욕적인 위협, 정신 이상까지 초래하는 독방 감금-영화 초반부에 얼핏 문제 학생의 투신이 언급된다-까지, 아이들에 대한 징벌도 수위가 상당히 높다. 아이들에게 학을 떼는 선생들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규제의 폭력성을 보면 이 악순환이 과연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형벌의 목적은 크게 응보, 일반예방, 특별예방으로 볼 수 있다. 범죄자가 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응보, 다른 일반인들에 공포감을 주어 범죄를 행하지 않도록 하는 일반예방, 범죄자가 다시 재범하지 않도록 하는 특별예방. 가혹한 처벌은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범죄자를 사회와 격리시켜 사회와 국민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들을 교육하여 재범을 방지하고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보육원의 징벌체계는 응보와 일반예방에 치우쳐 있다. 교장과 체육선생의 입에 붙은 “저지르면 당한다 (action?réaction!)”는 형벌의 응보 목적을 전면에 내세운 구호이다. 교장은 베까리아(Beccaria)의 기념비적 고전 『범죄와 형벌』에서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을 빠짐 없이 다 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문은 인간 본성을 부정하는 유해한 것이다. 형벌의 가혹성보다 확실성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형벌이 시민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신속하며 가능한 한 가장 가벼워야 하며 범죄 에 비례해야 한다”. 그러나 교장이 내리는 징벌은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며 대부분 엉뚱한 사람을 향한다(출석 부에서 아무나 찍어 독방에 감금하기도 한다). 영화 후 반에서 억울하게 가해진 교장의 체벌과 무고는 결국 몽당을 진짜 범죄자로 만들고 만다.

  반면 이 보육원에서 ‘진범’에게 적당한 벌을 주는 사람이 마띠외이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반성하며 그를 신뢰하게 되고 합창에 몰두하는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이미 문제 행동을 일으켜 정신병원에서 떠넘겨지 듯 들어왔던 소년 몽당은 여기에 함께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띠외 선생이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 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몽당을 다른 학생들과 달리 취급한다. 그가 어린 학생에게 위해를 가 할 것을 두려워한다. 교장의 돈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다시 이송되는 몽당이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것은 마띠외 선생의 침울한 얼굴이다. 그때 몽당이 내뱉는 비웃음은 무슨 뜻이었을까. 당신도 결국 똑같다?

  영화 속 몽당의 행위 자체는 옹호할 여지 없이 악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학대 의 흔적을 보면, 어린 페피노가 마띠외 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보육원에서 몽당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 라는 확신이 들어 씁쓸하다. 춥고 배고픈 양들 속에서 생뚱맞은 회색 곰처럼 겉돌다 가는 몽당. 그 때문에 이 영화는 내게 힐링영화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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