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4일(금) 서울권 대학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던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성균관대와 동국대 등의 총여가 줄지어 폐지됐던 지난해와 비슷한 흐름이다. 본교 총여학생회의 경우 지난 2016년 이후 입후보한 후보가 없어 난항을 겪다가 총여 폐지 물결에 따라 제3차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통해 폐지됐다. 
 

  총여, 역사의 뒤안길로…

  총여학생회(이하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를 선두로 여성 대학생의 권리 신장을 위해 각 대학에서 출범했다. 총여가 처음 생길 당시 대학 내 여성의 비율은 약 20%로, 남성의 비율에 비교해 현저히 적은 편이었다. 이에 따라 대학 내 소수자인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자치기구의 필요성이 높아져 총여가 생기게 됐다.

  그러나 서울대는 1993년 선거에서 총여에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아 없어지게 됐다. 고려대의 경우 총학생회 산하에 여성위원회가 신설되며 자연스럽게 사라졌으며, 2010년대부터는 많은 대학에서 총여 폐지가 시작됐다. 총여가 폐지된 대학 가운데는 총여가 활동하는 중임에도 폐지안이 상정돼 폐지된 학교도 있고,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 상태인 학교도 있다. 이외에도 입후보자가 없어 사실상 폐지 상태였으나 이후 공식적으로 폐지한 학교도 있다. 

  2018년에 폐지된 성균관대 총여의 경우 2012년에 마지막으로 후보가 출마했으나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다. 그러나 성균관대 남정숙 전 교수가 2015년 이경현 전 문화융합대학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밝히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에 성균관대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모여 ‘성균 미투’를 조직해 함께 시위에 참여했고, 남 전 교수의 복직과 이 전 대학원장의 처벌을 요구했다. 이후 성균 미투에서 활동한 학생들과 총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생들이 모여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 어디가)’를 조직했다. 이 단체는 “우리에게는 여학생회가 필요하다”며 총여 입후보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일부 단과대 대표들이 총여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총여 폐지 투표가 진행됐다.
 

지난 2018년 9월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가 총여 폐지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자료: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같은 해 11월 총여가 폐지된 동국대의 경우 55.7%의 투표율을 보인 학생 총투표에서 75.94%가 총여 폐지에 찬성해 총여 폐지가 가결됐다. 총여 측에서는 절차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이는 기각됐다. 올해 1월 총여 폐지가 가결된 연세대는 54.88%의 투표율을 보인 학생 총투표 결과 78.92%가 총여 폐지에 찬성했다. 연세대의 경우 지난해 6월 페미니스트 은하선 작가의 교내 강연을 진행하려고 하다가 반발을 샀고, 이 반발이 총여 존폐 여부를 둘러싼 학생 총투표까지 이어졌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여성을 대변하는 단체의 존폐 여부를 왜 모든 학생이 투표해 결정하는지 모르겠다”며 “민주주의를 앞세운 남성과 강자 중심 사고”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동국대 제31대 총여 △연세대 제29대 총여 △성균관대 성성 어디가는 지난해 12월 “한 해 동안 페미니즘의 진보와 혐오 세력의 반동 가운데서 인간의 안전과 평등, 존엄성을 위해 싸웠다”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연대의 손길과 함께했으며 또 하나의 거대한 여성주의 물결을 만들어나갈 가능성을 보았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다. 이어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학가 연이어 총여 폐지…이유는?

  총여 폐지 물결이 인 이유는 우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학 내 여성의 비율이 약 20%에 불과했던 과거에는 여성이 대학 내에서 절대적인 소수에 해당했으나, 최근에는 대학 내 성별 비율이 비슷한 수준이거나 여성이 더 많은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많은 학생들이 성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어 총여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이택광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기계적 평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커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남녀가 평등한데 왜 총여가 필요하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권리는 동등할지라도 권리가 실제로 정의롭게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서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오히려 남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대 ‘불평등과 민주주의 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의 39%가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중 특히 20대 남성의 동의율은 23%에 불과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 역시 작용했다. 총여 또한 학생자치기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것과, 총학생회에 여학생도 포함되는데 굳이 별도 기구는 필요치 않다는 효율성의 측면 등이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중백 교수 역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예전과 달리 요즘 대학생들은 정치 이슈에 관심도 없고, 취업 등 자신들의 앞가림을 하느라 바쁘다”며 “대학 내 학생자치조직은 10년 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총여학생회 폐지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총여 폐지 물결이 ‘백래시(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성폭력 피해 공론화 운동인 ‘미투 운동(본지 1202호 ‘#MeToo’ 참조)’ 등 최근 사회에서는 젠더 및 인권과 관련된 담론이 활발히 논의되는 추세다.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전에 없이 화두에 오르자 이에 대한 반발이 총여 폐지안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동국대 제31대 총여 △연세대 제29대 총여 △성균관대 성성 어디가는 ‘2018 총여 백래시 연말정산-그 민주주의는 틀렸다’는 이름의 포럼을 이틀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여학생 복지 사업도 많은 반감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여학생 복지 사업을 비판하는 주요 골자는 여학생에게 한정해 제공하는 특혜라는 근거와 남학생들도 함께 납부한 학생회비가 여학생만을 위해 집행되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근거다. 지난 2013년 한양대 총학생회장 후보는 생리대 자판기 설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으나,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남학생들의 심한 반발이 일었다. 당시 여학생의 80% 이상이 생리대 자판기 설치를 바란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으나 결국 무산됐으며, ‘남자 화장실에도 면도기를 비치해 달라’는 등의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대안책 인권센터, 효과 있을까

  총여가 폐지되고 인권센터를 신설하거나 기능을 강화하는 대학이 증가하고 있다. 우선 서울대와 중앙대의 경우 학교 차원의 인권센터가 개설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서울대는 처음 ‘성희롱‧성평등상담소’를, 중앙대는 ‘성평등상담소’를 설치했다가 이후 인권센터로 확장했다. 인권센터는 기존 총여가 다루던 여성 및 성 소수자 문제 이외에도 교수 갑질 등의 문제에도 폭넓게 대응할 수 있어 총여보다 효과적인 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인권센터가 교내에 설치돼 있어도 여전히 어려움은 있다. 지난해 10월 △동국대 △명지대 △서경대 △세종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서울대 △성균관대 등은 공동성명을 통해 “각 대학에서는 미투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이어졌다”며 “학생들은 피해자 치유와 복귀,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공동체의 반성이 이뤄지지 않는 대학 질서에 저항하며 가해 교수의 파면과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한 대학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 구성원의 목소리가 민주적으로 반영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폭력의 위험에 놓일 것”이라며 “인권센터는 학교 본부와 교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 관련 자치기구를 신설하는 학교도 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각종 성평등 및 인권 관련 센터 외에 학생 자치 활동 차원에서의 기구도 총여의 대안책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는 지난 2014년 총여 폐지 이후 총학생회 산하 특별자치기구인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했다. 연세대의 경우 총여가 폐지됐던 총투표 결과 총학생회장단 산하에 성폭력담당위원회가 신설되는 것으로 결정됐으나, 아직 이에 대한 논의나 변화는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이처럼 인권기구가 총학생회 산하에 설치되는 경우 별도의 의결권을 가지기 어렵고, 예산 또한 총학생회로부터 배정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활동에 제약이 많다는 단점이 발견되고 있다. 
 

본교 상담센터 홈페이지
본교 상담센터 홈페이지

  본교의 경우 학교 차원에서는 양성평등상담팀이 있으며, 상담센터에서 성폭력 관련 상담과 절차 진행을 돕고 있다. 이외에도 인권 관련 자치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2016년 총여가 폐지된 이후 401명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2016년 제3차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학생인권위원회 설립 안건이 상정됐다. 그러나 운영비 지원이나 설립 후 활동 방향성이 불확실하다는 학생대표들의 지적과 함께 부결됐다.

  최근에는 제59대 총학생회 ‘당신과 함께 변화를 쏘다 슈팅스타’에서 인권위원회 인준을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는 인권위원회 준비위원단을 꾸려 운영 중인 상태다(본지 1224호 ‘인권위 준비단, 인준 준비 중에 있어’ 참조). 본교 인권위원회 준비위원단은 “인권 관련 기구를 따로 개설해 집단적 차원에서 학교 구성원이 겪는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