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고산 도시 몬세라트. 버스로 올라왔다면 케이블카나 산악 열차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고산 도시 몬세라트. 버스로 올라왔다면 케이블카나 산악 열차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천재(天才)’ 건축가로 부르는 안토니 가우디는 ‘후천적인 천재’다. 후천적인 천재라는 말 자체가 비논리적이지만 나는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사실 천재란 선천적으로 하늘로부터 재능을 부여받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던가. 예컨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처럼 여섯 살 때 유럽의 여러 도시로 연주 여행을 다니고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에 이미 거장(巨匠)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진정한 천재인 것이다. 후천적인 천재란 말을 사용하였으니 모차르트를 ‘선천적인 천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천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가우디는 천재가 되는 과정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힘들었다.

  가우디는 태생적으로 병약했고, 평생을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어려서는 목발을 짚고 간신히 걸어 다녔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통증이 심할 때는 당나귀를 타고 출근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주로 자연을 벗 삼아 많은 사색을 했다고 한다. 정규 건축학교를 다닌 것도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그러나 가우디가 유년기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매일 접했던 자연은 그에게 ‘천재성’을 부여해주었다. 자연은 가우디의 몸 속에서 발아(發芽)하지 못했던 천재의 DNA를 끄집어 낸 위대한 선생님이었다. 가우디의 거의 모든 작품에 녹아들어가 있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리워했다는 카탈루냐 지방의 영산(靈山)이자 작은 도시 몬세라트(Montserrat)에 도착했다. 그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대성당과 카사 밀라(Casa Mila)의 모습이 해발 1,230미터가 넘는 산 위에 서려있을 줄이야.

  몬세라트 산은 해저의 융기로 만들어진 6만 여 개의 기암괴석의 군(群)이다. 헤라클레스가 아래로 내려다봤던 그랜드 캐니언을 수직으로 들어 올려놓은 듯한 착각이 몰려왔다. 사람의 얼굴, 코끼리의 상아, 맹수의 이빨, 새의 부리, 물고기의 지느러미, 그리고 꽃과 별이 거대한 산봉우리로 재현되어 병풍처럼 이 작은 고산(高山) 도시를 지키고 있다. 가우디는 수십 년 동안 지켜봤던 이런 몬세라트의 형세를 마음에 담아 그의 작품 속에서 재탄생시켰다. 가우디는 말했다. “자연은 신이 창조하신 건축이므로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끊임없이 자연을 경외하고 배우려고 했던 가우디는 천재가 되었다. 나는 이 세상에는 선천적인 천재보다는 후천적인 천재가 훨씬 많다고 확신한다. ‘산’이라는 뜻의 ‘Mont’과 ‘톱’이라는 뜻의 ‘Serrat’이 합쳐진 ‘톱니 모양의 산’에서 천재가 아닌 천재의 숭고함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19세기 나폴레옹 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가 복원 된 바실리카 성당 안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당의 제단 뒤쪽에 있는 검은 성모상(La Moreneta)을 직접 만져 보려는 관광객들의 줄이 미사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점점 길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줄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비록 저만치에 있어서 작게 보였지만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버스로 올라온 터라 내려갈 때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번에 올 때는 줄이 길어도 검은 성모상을 만져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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