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근대 건축가의 절묘한 조화 지로나
중세와 근대 건축가의 절묘한 조화 지로나
  • 정희섭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 승인 2019.03.25 01:05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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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에펠이 제작한 빨간 색의 철교가 중세 도시와 어울리는 이유는 그가 거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스타브 에펠이 제작한 빨간 색의 철교가 중세 도시와 어울리는 이유는 그가 거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장(巨匠)들은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습작(習作)을 남긴다. 습작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발전하여 다른 사람과는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한 예술가가 거장이 되면서 그가 남긴 습작들은 더 이상 습작이 아닌 ‘명작(名作)’의 대우를 받게 된다. 습작이 거장을 만들고 습작은 거장을 통해 명작이 되는 것이다. 거장들의 습작은 ‘단순한 연습 작품’이 아닌, 거장의 ‘초기 작품’으로 인식되어 ‘작가론’의 한 페이지를 구성하게 된다. 나아가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 도시들도 덩달아서 그 인지도가 높아져 간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지로나(Girona)라는 도시가 나온다. 스페인어로는 헤로나(Gerona)라고 불리지만 카탈루냐어로는 ‘지로나’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카탈루냐 지방의 언어인 카탈란(Catalan)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지만, 지로나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카탈루냐 지방의 분리 독립을 외치면서 그들의 이름으로 이 도시를 부른다. 인구가 십만 명 수준의 이 작은 도시를 헤로나라고 부르든 지로나라고 부르든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나는 지로나를 더 지지한다. 어감(語感) 상으로도 지로나가 더 좋게 들린다.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의 명물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은 이 도시에 작은 철교(鐵橋)를 남겼다. 다리의 이름은 ‘Pont de les Peixateries Velles’ 인데 프랑스어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제대로 발음조차 할 수가 없다. 나와 같은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 다리를 그냥 ‘에펠 다리(El Puente Eiffel)’라고 부른다. 에펠이 프랑스 사람이어서 이해는 가지만 스페인의 도시에 프랑스어 이름을 가진 빨간 색의 철제 다리가 있는 것도 왠지 생뚱맞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에펠이 1877년에 제작한 이 작은 철교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사실이다. 에펠은 뉴욕과 파리에 있는 그의 ‘인생역작’으로 명성을 얻기 전에는 토목기사로서 주로 철교를 가설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초기 작품이 명작이 되어 이 도시 지로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습작과 명작의 차이는 사람이 만들 뿐이다. 이 다리를 배경으로 한국의 인기 TV 드라마가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 드라마를 못 봤다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지로나는 미로처럼 얽힌 골목과 로마 시대의 성벽이 잘 보존된 중세(中世) 도시다. 도심을 흐르는 오냐르(Onyar)강 주변에 12세기 이슬람 제국 지배 시절의 흔적을 보여주는 아랍 목욕탕 터(El Banys Arabs)가 있는 정도다. 아직도 보존 상태가 좋아서 학자들이 자주 찾아 온다고 한다. 지로나의 랜드마크 산 펠리우(Sant Feliu) 대성당의 뒤쪽 언덕에서 바라다보는 도시 전경은 벨기에의 중세 도시 브뤼헤를 생각나게 했다. 

  지로나의 작은 골목을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걸어가면서 큰 의문이 생겼다. 왜 에펠은 모든 것이 고풍스러운 이 중세 도시에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빨간 색의 철제 다리를 제작한 것일까. 실험 정신을 강조한 단순한 습작이 그의 명성을 함께 명작이 되어 이 도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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