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에 갇힌 총학생회…위협받는 대학가 민주주의
중립에 갇힌 총학생회…위협받는 대학가 민주주의
  • 박현철 기자
  • 승인 2019.03.25 01:05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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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국선언 당시 정치적 목소리를 높였던 대학가 총학생회가 최근 발생하는 인권 이슈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서울시 내 4년제 대학 35개교 가운데 8개교는 새로운 총학생회 없이 새 학기를 맞이했다. 중립에 갇힌 총학생회가 침묵하는 가운데 총학생회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며 대학 내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총학생회의 역사

  과거 총학생회는 정치적 이념과 맞물려 있었다. 당시 대학가의 총학생회들은 연합을 이뤄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학생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80년대 말 총학생회는 △공정선거감시단 △8·15남북학생회담 △8·15범 민족대회를 추진했으며. 1987년부터는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학생운동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하기도 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 협의회는 4.19 혁명과 6.10 항쟁의 불씨를 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선봉에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30% 안팎에 불과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으로도 지식인 계층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운동권 총학생회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주류를 이루던 총학생회는 학생 복지를 강조하는 비운동권 총학생회였다. 지난 2002년 한국대학신문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대학 총학생회 성향은 비운동권이 전체 중 52.42%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1992년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며 독재 정권 타도를 목적으로 하던 학생 운동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IMF) 이후 청년들의 취업난 문제가 대두되면서 자연히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진보적, 보수적으로 나뉘는 학생 운동 성향과 무관하게 ‘비정치적’인 총학생회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정치 투쟁을 지양하는 총학생회가 주류를 차지했으며, 오히려 운동권 학생회의 정치적인 활동에 반감을 보이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또한 학생들의 정치 성향이 다양해지며 총학생회가 더 이상 학생들의 정치적 입장을 일괄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현재 총학생회는 과거처럼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중립 요구받는 총학생회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기 시작한 총학생회는 사실상 학생들로부터 중립을 지킬 것을 강요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서강대 총학생회는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받은 무죄 판결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후 서강대 학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총학생회가 학교 일과 무관한 정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렇듯 총학생회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대학가의 반발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총학생회를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에 전달하는 중간 기구 정도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1일(화) 교내 3주체(△총학생회 △교수협의회 △직원 노동조합)가 학생회관 앞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2016년 11월 1일(화) 교내 3주체(△총학생회 △교수협의회 △직원 노동조합)가 학생회관 앞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편향된 중립 속 민주주의 쇠퇴 우려

  그런데 불과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 전 대 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가 이어졌을 때의 대학가는 현재와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먼저 본교에서는 총학생회가 시급히 시국선언문을 발표해야 한다는 학내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뒤늦게 학내 의견 수렴을 마친 총학생회의 시국선언에 대해 “본교가 강조하는 민족 정신에 맞지 않은 조심스러운 선언이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경북대 총학생회장은 박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교내 구성원들의 지지 속에서 단식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인제대 총학생회는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학생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금 대학가는 인권 관련 이슈에서만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을 항한 시국선언문에 비해 서강대 총학생회가 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무죄 판결 비판 입장문은 성폭행 피해 사건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덜 정치적이다. 또한 서강대 총학생회의 입장문은 그들의 주된 공약인 ‘성차별 철폐’에 기반한 입장문이었다. 그럼에도 거센 반발이 일었고, 이러한 인권 관련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부당함을 묵인할 위험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우리 페미니즘 칼럼니스트는 “기본권의 문제에 정치성, 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차별을 방관하겠다는 입장에 서라는 적극적인 정치적 요구”라고 대학가의 중립 행태를 비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총학생회가 운동권 성향에 매몰돼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양대 학생은 “총학생회가 학생 복지보다 학교 밖 운동권 활동에 집중한다고 느꼈다”며 “기업후원을 거부하고 자치적으로 예산 운영하겠다고 내세웠는데, 명분은 좋지만 학교 축제와 복지 규모가 줄어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양대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학생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학우들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고려대 사회학과 이명진 교수는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요즘 학생들은 학점 관리, 스펙 쌓기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해졌다”며 “총학생회가 학생 복지 활동 등을 통해 직접적이고 경제적인 혜택을 주길 바라고 있는 학생들은 운동권의 외부 활동에 실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원하는 총학생회의 역할은 거시적이고 이념적인 사회 개혁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와 권리를 찾는 데에 있다”라며 “시대가 흐르면서 구성원의 인식은 변했는 데 학생회 조직 모델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탈정치화로 근본적인 존재 가치가 흔들려온 대학 총학생회…앞으로 방향은

  최근 들어 심화된 취업 현실에 밀려 사실상 기능을 상실해 버린 총학생회는 존재 자체도 위협받고 있다. 이는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저하가 크게 작용했다. 상당수 대학에서 치러지는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 저조로 선거 자체가 무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3년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며,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양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성공회대 △성신여대 등의 대학도 비대위 체재로 운영됐다. 충남대의 경우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음에도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됐다. 지난해 본교의 총학생회 투표율도 50.72%로 간신히 개표 가능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총학생회의 빈자리가 커지면서 동시에 학교 본부의 학생 자치 개입이 발생하고 있다. 총학생회 부재 2년 차인 한양대의 일부 단과대는 학교 본부로부터 개강 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새내기새로배움터(이하 새터)가 교비로 집행된다는 이유로 행사 주체와 시기를 바꾸라고 통보받았다. 협의 끝에 올해는 행사를 치렀지만, 학생들은 내년에도 새터가 무사히 열릴 수 있을지 우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오히려 학교 본부의 독선적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강한 총학생회’을 원하는 경향도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대학생 5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총학생회와 학생 사회의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점(5점 만점)으로 △총학생회의 투명한 회계 처리와 운영(4.61)에 못지 않게 △총학생회의 학생 대의 기능 강화(4.47) △학교 당국의 대화 파트너로서의 총학생회 입지 확보(4.41) 등 총학생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점에도 크게 공감했다. 총학생회를 폐지하거나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 (1.96)’에 동의한 응답자는 가장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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