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중략)…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 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 그때에 그는 정말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없음의 세계에서 그는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그 완전한 사라짐이 사실은 세계를 지탱한 힘일는지도 모른다…(중략)…나는 그의 시들을 모아, 그의 시들의 방향으로 불을 지핀다. 향이 타는 냄새가 난다. 죽은 자를 진혼하는 향내 속에서 새로운 그의 육체가 나타난다.“(김현,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중 발췌)

  영화 코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글을 떠올렸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는 이승에서 망자에 대한 기억이 다했을 때 이미 죽은 자가 다시 진정한 소멸을 맞게 되는 바, 마치 이 글을 보고 영화를 만든 양 절묘하게 산 자의 기억과 죽은 자의 사라짐을 연결하고 있다. 누더기를 걸친 유골 모양의 망자가 이승에서 그에 대한 기억이 다하는 순간, 뼈가 바스라지는 형태로 사라지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위 글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그때서야 진정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주인공 미구엘의 할아버지(헥터)가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은 지상에서 즐겨 불리는 노래들의 진짜 작곡가임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래라는 무형의 가치에 대해 헥터가 가지는 권리는 무엇인가? 시, 소설, 음악, 영화와 같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 의식은 15세기 출판 인쇄술의 발명으로 문서의 대량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태동되었다.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며 저작자는 이를 창작한 자를 의미한다(저작권법 제2조). 저작자가 가지는 권리는 크게 저작 재산권과 저작 인격권으로 나뉜다. 가령 어떤 소설가가 소설을 창작한 경우 그 소설의 제목, 내용 등이 바뀌지 않도록 하는 동일성 유지권, 출판된 소설책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할 수 있는 성명 표시권, 그리고 그 소설을 출판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공표권을 가지는데, 이러한 권리들이 저작 인격권에 해당한다. 또한 저작권자는 일반적으로 저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대가를 받을 수 있어 이러한 저작권의 경제적 측면을 저작 재산권이라고 한다.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저작자는 저작물의 사용에 따른 경제적인 대가를 받게 되며, 동시에 그 저작물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저작자가 작품 속에 나타내고자 하는 창작 의도를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저작권이란 창작자의 인격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서 그가 죽은 후에도 보전되는 것이다. 육체적 소멸 후에도 그의 인격의 일부를 남긴다는 점에서 저작권은 재산적 가치를 초월한다. 요절한 시인 기형도는 그의 시를 통해 남았고, 헥터는 그의 노래를 통해 ‘죽은 자들의 세계’에 영원히 머물게 되었다.

  헥터가 코코의 기억을 붙들어두려 한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딸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음의 원인이나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에는 초연하면서도 자식과의 ‘실존적’ 만남에는 연연한다. 또한 그가 사는 죽은 자들의 세상은 밤도 없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그 속에서 춤과 노래, 떠들썩한 만남이 계속된다. 영화 코코의 미덕은 이처럼 죽음을 둘러싼 솔직한 바람을 날것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승의 즐거움-세속의 상상력이 차마 놓아주지 못하는-이 찬란하게 빛나는 세상. 또한 과거의 연이 이어지는 세상. 사별로 인한 슬픔에 면했을 때 누군들 한 번쯤 그려보지 않았을까. 내가 늘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있음을, 내 아버지도 헥터처럼 알고 계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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