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원 연구원들과 함께 지난 1월에 열렸던 ‘CES 2019’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가스에 약 일주일동안 머물렀었다. 우리는 CES전시관에 마련된 부스에 작품을 설치한 후, 라스베가스 호텔 내에 있는 카지노에서 몇 차례 갬블링(Gambling)을 즐길 기회가 있었다. 나는 한 슬롯머신에 앉아서 가장 저렴한 25센트짜리 배팅을 하고자 1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10달러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내 슬롯머신의 상단에 있는 계기판에 오색빛깔의 불빛이 번쩍이면서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 음악이 연신 반복되며 울려댔다. 옆의 지나가던 흑인 한 분이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주었다. 너무 오랫동안 음악과 불빛이 꺼지지 않아 기계가 고장 난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소란스런 상황이 종료되자 내 손에는 180달러가 남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작은 돈이지만 만원을 투자해서 20만원을 벌었으니 그 카지노에서 그날의 승리자는 나였다. 나중에 다른 슬롯머신을 살펴보니 모든 계기판은 슬롯머신의 한참 위에 설치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 승리의 팡파레는 나를 위함이 아니었다. 그 시각 나와 함께하고 있는 수많은 타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높이 단 것이다. ‘다들 보아라. 여기 또 한 명의 잭팟이 터졌다. 여러분도 그 주인공일 수 있다. 어서 돈을 부어라’ 만약 내가 보물섬에서 금은보화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나는 그 섬에 혼자 남게 되고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면 그 섬은 과연 보물섬인가? 무인도인가? 사실 나에게 중요했던 점은 만원이 20만원으로 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 즉 그들의 욕망이었다. 그들의 욕망하는 대상이 내가 되었다는 점. 이보다 즐거운 쾌감이 어디 있을까.
 

  나는 다른 연구자가 내놓은 어떤 게임의 정의보다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의 정의를 더 좋아한다. 그는 게임을 ‘욕망의 구조’라고 불렀다. 사실 게임의 모든 규칙과 세계관은 인간의 욕망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특히 국내 몇 MMORPG 게임은 바로 인간의 욕망으로 뒤덮인 구조의 막장판처럼 보인다. 내가 현실에서 100만원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돈으로 나는 나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만약 나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면, 그 돈으로 어떻게 타자들이 나를 욕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멋진 옷으로? 아니면 멋진 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사진을 SNS에 퍼트려서? 아니면 이 돈을 게임에 투자하면 어떨까? 만약 내가 100만원을 투자해서 게임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면, 그리고 그들이 그런 나를 욕망한다면 이는 가치 있는 투자일까? 과금과 확률형 아이템, 그리고 자동 사냥으로 무장한 게임들은 더 이상 규칙, 놀이, 재미, 균형, 몰입, 긴장 등의 단어들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런 게임들은 오히려 욕망의 구조라는 정의가 훨씬 적절해 보인다.

  잠깐 화제를 VR로 돌려보자. 최근 VR/AR 등 새로운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게임도 이에 맞게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미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GMVR(Guided Meditation VR), 즉 VR명상이다. VR이 명상에 도움을 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 매체를 바라보고 매체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의 방향성이다. 나는 VR명상을 보며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국내에서 VR명상을 하겠다고 했을 때 과연 몇 명으로부터 얼마만큼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과금과 확률형 아이템, 그리고 자동 사냥으로 구성된 게임에만 투자하려고 할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런 게임에서 그 많은 돈을 쓰면서도 아깝다고 느끼지 못할까? 새로운 신기루를 계속 만들도록 부추기고, 이를 좇아가도록 유혹하는 욕망의 구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서 샤르트르가 언급한 말이 떠오른다. “타자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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