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매체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진과 영사기 등 매체의 등장은 항상 놀이에서 출발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매체는 단순히 놀이의 도구로서 존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영역을 예술로까지 확장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예술가에게 있었다. 예술가는 항상 새로운 표현 기법과 형식을 갈구한다. 그들에게 사진의 등장은 곧 회화를 대신하는 예술 도구였으며, TV는 백남준에 의해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나의 매체가 예술  형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매체에 담길 콘텐츠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할뿐더러, 그 매체 자체가 갖는 의미 또한 예술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나는 21세기의 매체인 게임이 영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놀이에서 멈추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오히려 Non Game, 즉 게임이 아닌 매체로서 발전해야만 한다. 그것은 현재 여러 다른 분야와의 협력과 융합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 기능성 게임을 비롯하여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까지 발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서부터 성경을 전달하고자 그렸던 수많은 중세성당의 그림과 조각상은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 예술로 넘어오면서 예술 작품의 창작이 작가의 고독한 ‘사유하기’의 결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작가의 ‘사유의 결과’를 다시 사유함으로써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의미 혹은 작가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의 예술 작품은 인간으로 하여금 ‘소통하기’에서 ‘사유하기’를 유도하는 형식으로 변화하였다. 설사 인간이 예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전파시킨다 하더라도, 지금의 예술 작품은 관객과 작가의 소통을 위한 직접적인 창구라기보다는 ‘사유하기’를 통해 소통을 유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디지털 아트 이전의 현대 예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유라는 관문을 먼저 통과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이야기를 통한 사유’가 아닌 ‘사유를 통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사유하기와 소통하기는 예술 작품의 본질을 설명하지만 이는 동시에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특징이기도 하다. 사유하는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창작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고독의 시간을 사랑하는 존재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의 정수 ‘이론(Theory)’이 고독의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오리아(Theoria)’에서 나온 단어라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창작이란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 시간 속에서 발현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또 다른 측면, 즉 ‘호모 나렌스(Homo Narrans)’는 어떠한가? 인간은 포유류 중 유일하게 ‘미숙아’로 태어나서 부모의 이타적인 배려 안에서만 생존 가능한 불완전한 존재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에게 타인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이는 인간이란 ‘사유하기’ 이전에 태생적으로 ‘관계하기’가 선결 조건으로 주어진, 그래서 타인과의 소통이 스스로의 사유보다 우선시되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술 작품을 통한 인간의 욕망 또한 ‘사유하기’에서 ‘이야기를 통한 사유’로 확장될 수밖에 없으며, 예술 작품의 형식이 다시 ‘사유하기’에서 ‘소통하기’로 발전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예술 작가의 새로운 매체의 적극적인 수용은 예술 작품의 형식을 일방향성에서 양방향성으로, 양방향성에서 다방향성으로 변화시키고 인간은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소통과 이를 통한 새로운 사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 간의 소통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매체 중 하나는 ‘게임’일 것이다. 게임은 이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신체가 게임을 구성하는 하드웨어와의 직접적 상호작용을 통해 가상환경 안의 다양한 콘텐츠 및 환경을 지각, 반응, 제어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과 결과물을 지칭한다. 인간은 가상세계 안의 목표를 향해 자신의 아바타를 조정하거나, 다른 아바타 및 콘텐츠와의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다양한 소통 라인을 형성한다. 이는 게임디자이너에 의해 창조된 규칙과 행동 패턴 속에서 가상의 캐릭터나 콘텐츠와의 관계로 형성되기도 하고, 때로는 여러 플레이어들의 공동의 목표를 위한 관계로 형성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부차적 설명 없이도 우리는 게임을 사용자와의 가장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질문해보자. 여러분은 게임이 ‘이야기를 통한 사유’를 가능케 하는 예술 형식인가에 대한 물음에 수긍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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