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는 개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숭실 출신(숭실대․중학) 가운데 국가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지사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의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공적 조서를 작성하여 국가보훈처에 서훈 신청을 하였다.
 

김양선
김양선

  한국기독교박물관(이하 박물관) 주도로 진행된 독립유공자 발굴 사업을 통해 지난 2년간 일곱 분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7년 광복절 독립유공자로 김태술(애족장), 김양선(건국포장), 김형두(대통령표창) 선생이 포상을 받았고, 2018년 광복절에 서울 숭실대학 제3대 학장을 역임한 고병간 박사가 애족장을, 11월 순국선열의 날에는 이겸호(애족장), 박기복(대통령표창), 이양식(대통령표창)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박물관은 앞으로도 숭실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함으로써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운 선배들의 애국혼과 희생 정신을 기리는 계기로 삼을 예정이다. 

  2019년 4월 현재 숭실에서 배출된 독립유공자는 총 86인에 달한다. 이르며, 이분들의 훈격별 포상 내역은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장 (1명)
조만식(曺晩植)

대통령장 (2명)
김익상(金益相)    편강렬(片康烈)

독립장 (21명)
김   강(金   剛)    김예진(金禮鎭)
김원벽(金元璧)    김정련(金正連)
김태연(金泰淵)    모우리(牟義理)
백기환(白基煥)    선우혁(鮮于赫)
손정도(孫貞道)    안세환(安世桓)
오운흥(吳雲興)    윤동주(尹東柱)
매퀸(尹山溫)      이승길(李承吉)
임이걸(林利杰)    장일환(張日煥)
정찬조(鄭燦朝)    조병옥(趙炳玉)
차이석(車利錫)    최수봉(崔壽鳳)
홍성익(洪成益)    

애국장 (15명)
강봉우(姜鳳羽)    곽임대(郭臨大)
김희백(金熙伯)    박정건(朴貞鍵)
박휘병(朴輝秉)    배민수(裵敏洙)
안병균(安秉均)    이관구(李觀求)
이상조(李尙祚)    장신국(張信國)
정태희(鄭泰熙)    조봉호(趙鳳鎬)
조영신(趙永信)    최광옥(崔光玉)
한도원(韓道源)

애족장 (36명)
고병간(高炳幹)    길진형(吉鎭亨)
김경하(金京河)    김대엽(金大燁)
김두찬(金斗燦)    김두혁(金斗爀)
김두화(金斗和)    김무생(金武生)
김선두(金善斗)    김순배(金順培)
김승은(金勝恩)    김영서(金永瑞)
김용근(金容根)    김태술(金泰述)
김화식(金化湜)    노선경(盧善敬)
  노원찬(盧元贊)    박석훈(朴錫薰)   
박재헌(朴在憲)    방승현(方承鉉)
오능조(吳能祚)    유기준(劉基俊)
이겸호(李謙浩)    이수현(李守鉉)
임찬규(林燦奎)    조익준(趙翊俊)
주기원(周基元)    주요섭(朱耀燮)
최경학(崔敬學)    최병무(崔秉武)
최   진(崔   鎭)    한승곤(韓承坤)
      한창선(韓昌善)    황보영주(皇甫永周)
   황세청(黃世淸)    황찬영(黃贊永)   

건국포장 (1명)
김양선(金良善)

대통령표창 (10명)
곽권응(郭權膺)    김만진(金萬鎭)
김병두(金炳斗)    김창화(金昌華)
김형두(金炯斗)    박기복(朴基福)
오한길(吳漢吉)    이양식(李養植)
이영휘(李英徽)    한준겸(韓俊謙)
 

  숭실 출신으로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86인의 독립 활동은 대한제국 말기, 일제강점기에 걸쳐 다양하게 펼쳐졌다. 1905년 을사조약 반대 투쟁, 통감부 시기 애국계몽단체인 비밀결사 신민회 활동, 병탄 이후 105인 사건, 1910년대 조선국민회와 광복회 활동, 1920년대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그리고 3.1운동, 광주학생운동, 신사참배 거부 운동 등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영서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5조약에 항거하여 숭실 학생 12명은 서울으로 올라와 200여 명의 동지들을 모아 대한문 앞에서 조약 무효 투쟁을 전개하였다. 여기에 참가한 김영서(숭중 3회․숭대 3회, 애족장)와 이승길(숭중 출신, 독립장)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과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두화
김두화
길진형
길진형
최광옥
최광옥

  을사조약 이후 애국지사들은 국내외에서 실력양성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했고, 특히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는 국외독립군기지 건설운동에 주력하였다. 신민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숭실 출신으로 길진형(숭중 4회․숭대 3회, 애족장), 김두화(숭중 2회․숭대 1회, 애족장), 최광옥(숭중 1회) 등이 있다. 일제는 1911년 신민회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황해도, 평안도 지역의 기독교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 곧 ‘105인사건’을 날조하여 600여 명의 기독교인을 체포하고 그중 105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봉우(숭중 교사, 애국장), 곽임대(숭중 6회, 애국장), 길진형, 김두화, 선우혁(숭중 5회, 독립장), 안세환(숭중 8회·숭대 중퇴, 독립장), 윤산온(숭대 교장, 독립장), 이승길, 차이석(숭중 1회, 독립장), 편강렬(숭중 수료, 대통령장), 홍성익(숭중 4회, 숭대 중퇴, 독립장)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1910년대 숭실 선배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조선국민회 활동에서 빛을 더했다. 3.1운동 이전까지 1910년대 독립운동 조직 가운데 최대 비밀결사체인 조선국민회는 숭실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였다. 1918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조직원 25명 가운데 숭실 출신이 15명이었고, 그중 김병두(숭중 중퇴, 대통령표창), 노선경(숭중 출신, 애족장), 배민수(숭전 문과3회, 애국장), 이수현(숭대 중퇴, 애족장), 임이걸(숭중 8회, 독립장), 장일환(숭중 수료, 독립장)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김일성의 아버지로 숭실중학에서 수학한 김형직도 조선국민회에서 활동했다. 한편 국내에서 독립군 모집과 군자금 조달 및 총독 암살을 기도했던 광복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한 이관구(숭대 3년 수료, 애국장)도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이 배출된 독립운동 분야는 역시 3.1독립만세운동이다. 숭실 출신으로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원은 현재까지 114명으로 파악되었다. 이중에서는 3.1민족대표 33인으로 활약한 김창준(숭중 7회·숭대 5회)과 박희도(숭중 출신)가 포함되어 있으며, 3.1운동을 기획, 주도한 민족대표 48인에 안세환과 김원벽(숭대 1년 수료, 독립장)이 포함되어 있다. 3.1운동에 참여한 114명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숭실이 터하였던 평양 이외에도 평북 선천, 평남 대동․용강․순천․안주․중화, 황해도 송화, 함남 함흥, 서울, 대구, 전남 광주, 전북 옥구와 제주도, 간도 용정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14명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이는 곽권응(숭중 9회․숭대 7회, 대통령표창) 등 총 51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강봉우, 김경하(숭대 9회) 등은 3.1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박재헌(숭중 출신, 애족장), 박정건(숭대 중퇴, 애국장), 오능조(숭중 교사, 애족장), 유기준(숭중 출신, 애족장), 홍성익(독립장) 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손정도
손정도

  숭실 선배들은 3.1운동 이후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크게 활약하였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손정도(숭중 5회, 독립장)는 임시의정원 의장, 차이석은 임시정부 국무위원, 홍성익은 임시정부 교통부 안동사무국장을 역임하였다. 박재헌은 임시정부 특파원, 박정건은 임시의정원 의원, 유기준은 임시정부 국무원 서기, 선우혁은 임시정부 교통부 차장, 이승길은 임시정부 지방선전대 활동, 장신국(숭중 5회․숭대 4회, 애국장)은 임시의정원 서기로 활약하였다.  
 

조만식
조만식

  1929년 12월부터 광주에서 전개된 학생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숭실을 중심으로 전개된 평양 지역의 학생운동은 1930년 1월 절정에 달하였다. 1월에 전개된 평양 학생만세운동으로 검거된 학생이 173명에 이르렀는데, 그중 숭실대․중학 학생이 107명에 달했다. 학생운동을 주도한 김형두(숭전 중퇴, 대통령표창)와 김양선(숭전 문과 9회 졸업, 건국포장), 조만식(숭중 4회, 숭대 교수, 대한민국장), 조병옥(숭중 9회, 독립장)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김정련
김정련

  1920~30년대 국내에서 의열투쟁, 곧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자도 부지기수이다. 국내 의열투쟁을 벌인 숭실인으로 일본 제련소 용광로 폭파를 시도한 김두찬(숭실 8회, 애족장), 김원봉의 의열단에 입단하여 조선총독 사이코 마코토(齋藤實)를 향해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숭중 중퇴, 대통령장),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백기환(숭중 2년 수료, 독립장),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안병균(숭대 7회, 애국장),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정찬조(숭중 9회, 독립장),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최수봉(숭중 3년 수료, 독립장)과 중국에서 대한독립군 공명단을 활동한 김정련(숭중 11회․숭대 10회, 독립장), 상해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김예진(숭중13회, 독립장) 등이 있다.
 

김태연
김태연

  한편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 86인 중 숭실대학 졸업생은 22명, 중퇴자는 9명이다. 곽권응 등 14명은 숭실중학과 숭실대학에서 동시에 수학하였다. 숭실중학 졸업생은 40명, 중퇴자는 19명이며, 숭실중학 교사를 역임한 독립유공자는 강봉우, 김정련, 김태연, 오능조, 주기원 등 5명인데, 이 중 김정련과 김태연은 숭실대학을 졸업하고 숭실중학 교사를 역임하였다. 
 

5대 교장 모우리
5대 교장 모우리
4대 교장 매퀸
4대 교장 매퀸

  숭실대학 교장을 역임한 외국인 독립유공자도 있다. 제5대 교장 모우리(E. M. Mowry, 牟義理, 독립장)는 1919년 3.1운동 당시 평양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한 숭실 학생들을 자택에 은신시켰다 하여 ‘범인장닉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고, 제3대 교장 매퀸(G. S. McCune, 尹山溫, 독립장)은 1920년 대한독립승인청원서를 미국의원단에게 전달하다 강제 추방된 바 있다. 특히 매퀸은 숭실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1936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강제로 퇴임당하였다. 이 외에도 서울숭실대학 재건 직후 학장을 역임하며 숭실 발전에 헌신한 고병간(애족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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