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의 구시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는 세르반테스의 동상

  돈키호테(Don Quixote)는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소설이면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작품 속에서 그가 보여준 다분히 엽기적인 행각은 그의 이름을 사회 현상을 진단하는 용어로 만들었고, 특히 심리학에서는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빠짐으로써 분별없이 행동하는 성격의 유형을 지칭한다. 우리들은 “그는 돈키호테형(型)이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충분한 생각 없이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을 묘사하곤 한다. 발음도 익살스러운 이름 ‘돈키호테’는 에스파냐 문학의 진수(眞髓)를 넘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그럼에도 친근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성공학을 강의하시는 분들이 빠트리지 않고 소개하는 돈키호테의 어록.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을 따자.”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이야기했지만 고난과 가난으로 점철된 세르반테스의 삶을 스스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살아있을 때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의 자조적인 말이 성공학의 중요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 참 재미있다.  

  돈키호테의 공간적 배경인 라만차(La Mancha) 지방의 중심도시 톨레도(Toledo)에 세르반테스의 동상을 보러 아침 일찍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엘 그레코(El Greco)의 작품이 있는 톨레도 대성당을 보러 오는데 나는 도시의 입구에 서있는 내 키만한 그의 동상을 보러왔다니.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본 이후, 종교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감소된 것도 한몫했다. 원래 압권 중의 압권을 목도하면 관심이 전보다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니까. 

  톨레도는 1561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인들은 이 곳을 톨레툼(Tolétum)이라고 불렀다. 이는 ‘참고 견디다’라는 뜻인데, 로마의 군대에 끝까지 저항했던 톨레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영어인 ‘Tolerate’의 뜻이 ‘저항하다’라는 뜻이니 결코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높은 언덕 위에 건설된 굳건한 요새 톨레도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종족들이 활약했지만, 711년 이슬람 세력이 몰려와 무려 374년 동안이나 이 도시를 지배했다. 끊임없는 전쟁과 투쟁을 통해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것이 1492년이라고 하니 종교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하루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저항의 도시 톨레도에서 여러 문화의 흔적과 향기를 천천히 걸으며 감상했다. 비록 기념품이겠지만 무기를 파는 상점이 많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각종 무기들이 톨레도에서 생산되었다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오랜 전쟁은 이 고도(古都)를 무기의 생산지로 만든 것이다.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알고 나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듯하다.

  톨레도는 나에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도시였다. 하몽 이베리코 샌드위치와 와인까지 즐기고 마드리드행 막차를 타러 가면서 알칸타라Alcántara) 다리를 건넜다. 아침에 건넜던 이 다리가 들어올 때는 ‘이슬람스럽게’ 보이더니 나갈 때는 ‘카톨릭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이상을 꿈꿨던 사나이의 무모한 도전과 함께 내가 ‘시간여행’을 했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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