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신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신이 있다.
  • 김도현(경제·19)
  • 승인 2019.05.06 02:07
  • 호수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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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신은 죽었다’ 이 책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나 또한 지나가다 한 번쯤 이 말을 접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이 무엇이길래 죽었다 하는 것일까? 니체는 신을 어떻게 죽였을까? 그러한 의문들이 나로 하여금 이 책으로 이끌었다.

  책에서 니체가 가진 대한 생각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곳은 광인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광인은 태양 아래에서 등불을 들고 신이 죽었음을 군중들에게 알리지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 비웃는다. 푸코적 광기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광인은 태양이 멀어지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며 등불을 내던진다. 사람들은 태양의 존재를 절대적 진리라 여기지만 광인은 절대적 진리가 이미 무너졌음을 알고 있기에 등불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끝내 광인은 사람들의 비웃음 뒤에 사라진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군중들의 행동은 절대적 도덕에의 복종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절대적 도덕의 근거란 인간의 양심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존재치 않는다. 그럼에도 도덕을 신에게 종속시켜 인간을 타성적으로 따르게 만들었던 셈이다. 현대는 도덕을 법에게 종속시킴으로써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한 도덕으로 만들었다. 현대에도 도덕의 당위성을 신에게 찾지는 않는 셈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니체의 절대적 도덕에 대한 부정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니체가 상대적 도덕을 말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니체는 상대주의에 대해 가치의 무의미성이라 평한다. 상대주의에 절대성이 포함되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긍정하는, 즉 모든 것의 무가치성을 인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니체는 절대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적인 절대성이 아니다. 바로 광인이 들고 있던 등불과 같이 인간 스스로가 세운 절대적 도덕성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개개인이 다르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개인의 도덕적 절대성으로 초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에게 사회적 도덕률이 개인적 도덕률보다 우선하지는 않으며 개인의 도덕을 이룸으로써 초인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제시해주었다. 또한 도덕에의 복종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나에게 생각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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