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을 지정했다. 이번 안건의 핵심은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이와 더불어 선거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패스트트랙에 포함되며 다시금 청소년 참정권 부여에 대한 찬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만약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선거일 22일 전을 기준으로, 생일이 지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선거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만 18세 선거권 의견 분분… 찬성 51% vs 반대 46% 

  여론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선거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데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3월 25일(월)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선거연령 18세 하향조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51.4%, 반대한다는 의견은 46.2%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 4월 같은 내용으로 조사한 결과와 비교했을 때 찬성은 7.6%p 하락하고 반대는 8%p 상승한 결과이다. 

  여론이 팽팽히 맞서다 보니 원만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05년 만 20세 이상에게 부여됐던 선거권을 만 19세로 하향조정 한 이후에도 20여 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패스트트랙을 거부한 자유한국당은 이번 ‘18세 선거권’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청년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언젠가는 선거연령이 낮아지겠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학부모 단체에서 여러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하지만 패스트트랙으로 국회가 마비돼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선거연령 인하를 촉구하는 근거는 만 18세의 경우 의무만 부과되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만 18세부터 사회적 의무와 각종 자격 기준이 부여된다. 만 18세가 넘으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또한 납세·근로의 의무가 개시되는 연령이 18세이다. 이외에도 남성의 경우 18세가 넘으면 군대에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18세 선거권’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거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선거연령 제한이 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선거연령은 합리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추었다고 간주되는 연령기준이다. 민법에 따르면 만 18세 이하는 미성년자 즉, 행위무능력자로 분류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소년자치연구소 정건희 소장은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 소장은 “미성숙을 기준으로 본다면 일부 어른들도 마찬가지”라며 “고령자는 치매로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연령 상한 제한도 두는 게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현병,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다”며 “물론 그런 사람들의 선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OECD 34개국 중 우리나라만 없는 만 18세 선거권

  세계적으로 234개국 중 216개국이 만 18세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34개국 중 만 18세가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선거연령이 만 20세 이상이었던 일본도 2016년에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이에 따라 법 개정 한 달 후 실시된 선거에서 18~19세 유권자 약 240만 명이 새롭게 투표할 수 있었다. 일본은 또한 2018년 민법상 성년 연령도 만 20세에서 18세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는 전당대회 대의원 선거가 17세 이상부터 가능하고, 오스트리아의 경우 16세 이상부터 선거가 가능하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은 ‘18세 선거권’ 또는 그 이하의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외국의 경우 한국과 학제가 달라 졸업이 빠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선거연령 하향이 어려운 주된 이유가 만 18세가 고등학교 3학년인 한국식 학제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2016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등 7개국은 만 17세에 고교를 졸업한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한국처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체제지만 입학 시기가 1년 빨라 한국보다 일찍 고교를 졸업한다. 이런 차이가 있다보니 미국과 일본에서는 고등학생이 투표하는 일이 적어 한국처럼 큰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18세 선거권’을 부여하려면 ‘학제개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OECD 36개 회원국의 일반적인 졸업 나이을 찾아본 결과, 한국을 포함해 고등학교 졸업 연령이 18세 이상인 나라는 최소 20곳이었다. 체코나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18세에서 19세 사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해 고등학생이 투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선거하는 OECD 국가 20곳 중 선거 연령이 만 19세 이상인 나라는 없었다.

  물론 선거권만 18세로 낮추게 되면 다른 법과 혼동되는 부분이 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민법 ‘제4조(성년)’에 따르면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법상 성년은 ‘부모의 친권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유효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연령’을 뜻한다. 이때부터는 부모의 동의 없이 혼인신고를 하거나 법정대리인 없이 단독으로 법률적 계약이 가능하다. 또한 청소년보호법에도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으로 규정돼 술·담배 등을 구입할 수 없고 유해업소 출입이 제한된다.

 

 

  만 18세 선거권 둘러싼 우려와 기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정책본부장은 선거연령 하향으로 인한 ‘교실의 정치화’를 우려했다. 김 본부장은 “단지 투표권만 주는 게 아니라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권리까지 생기기 때문에 학교 현장이 정치화될 우려가 있다”며 “선거 때마다 교내외에서 특정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 학생들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건희 소장은 “정치화를 문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화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정 소장은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10대 청소년들이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활동을 독려하는 정치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에서 박빙을 겨루는 수도권의 경우 만 18세 선거 참여가 당락을 가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19대 국회 당시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은 “수도권에서 18세 선거 연령 인하는 파장이 너무 커 수용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가 실제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현재 10·20대 세대가 30·40대 세대보다 더 보수적이거나 유보적이라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인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평가에 대한 연령별 지지율은 △20대 긍정: 44% 부정: 41% △30대 긍정: 61% 부정: 31% △40대 긍정: 54% 부정: 37% △50대 긍정: 42% 부정: 52% △60대 이상 긍정: 30% 부정: 61%였다.

  한편으로 정 소장은 선거연령 하향이 그동안 배제되던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반영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정 소장은 “만약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선거를 할 수 있게 되면, 유권자로서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 정치인들은 당사자인 10대 청소년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