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러분도 나름대로 걷도록 해라. 방향과 방법은 여러분이 맘대로 선택해라.”

  위 구절은 수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등장하는 명대사 중 하나이다.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확고한 주관을 바탕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라는 의미를 지닌 이 대사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말처럼 쉽지가 않은 법. 갖가지 제약들로 벗어나 내 스스로가 가장 ‘나다움’을 추구하기란 아직도 쉽지만은 않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었다. 12년의 공교육 과정을 보내면서 얻은 것은 통제되는 규율들을 어기지 않기 위해 그저 반문 없이 따를 줄 알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러다 보니 확고한 주관이 부족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이 진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입학 후 대학 생활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곳은 자신만이 가진 ‘독특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다울 줄 아는 그들을 동경했고,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어느새 마음 한편엔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궁금증이 깊게 뿌리내렸다.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나다울 수 있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처음엔 동경했던 그들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으로 삶을 살아가려 하는 그 ‘독특함’이 나다움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또한 수많은 풍파들 속에서 견딜 수 있는 나의 튼튼한 잣대만 있으면 나다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주제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시콜콜한 잡담이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정치적 사안이든 나만의 확실한 입장을 세워보려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나만의 색깔을 찾아보고 싶었다. 물론 효과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확고한 주관만이 ‘나다움’이라는 내 믿음은 큰 오산이었다. 아무리 그 주관을 확고히 한다 해도, 그에 대한 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쉽사리 무너지곤 했다. 튼튼한 잣대를 만들기 전, 가장 필요한 기본을 놓치고 있었다. 

  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줄 아는 태도. 그것이 가장 ‘나다움’의 기본이자 완성이었다. 내 자신의 모습과 내 스스로 느끼는 무언가에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약점만 발견하여 극복하려 하는 데에만 열중해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온갖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확고한 주관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일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태도임을 깨달았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러한 내 모습을 사랑하는.

  해마다 발표되는 대한민국 10대 소비트렌드에 따르면, 2018년을 전후해 ‘자존감’이 그 중 하나의 키워드로 중요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사람인가’라는 자책으로 귀결되는 자존감 상실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흔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다가도 동시에 씁쓸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는 태도.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독특함’이라는 나만의 튼튼한 잣대와 함께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 방향과 방법으로 내 나름대로 걸을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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