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레닌』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될 때부터 동서독의 통일에 이르는 시기(1989~1990)의 동독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의 ‘엄마(크리스티아네)’는 반정부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아들 (알렉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데, 혼수상태에 빠진 8개월 동안 서기장 호네커가 사임하고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졌다. 간신히 깨어난 엄마가 심장에 충격을 받을까 두려워 알렉스는 동독이 건재한 것처럼 꾸미기로 작정하고 전방위적으로 거짓말을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발하고 눈물겨운 알렉스의 거짓말들 때문에 얼핏 음울한 내용으로 흘러갈 것 같은 영화가 시종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이미 생산이 중단된 동독산 피클을 구하지 못하자 버려진 유리병을 구해 소독해서 피클을 담아주며, 창밖의 광고판을 변명하기 위해 콜라가 사실은 동독의 발명품이라고 꾸며댄다. 대담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들이 그나마 엄마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위성안테나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 덕분이다. 친구는 어설픈 장비를 활용한 가짜 뉴스를 촬영해서 알렉스에게 공급하는데 뉴스 조작의 스케일은 점점 커진다.

  알렉스가 좀 더 냉정하게 상황판단을 했다면 엄마가 혼수상태에 있을 때부터 후견제도를 활용했을 것이다. 사람은 주변의 정보를 수집·분석한 후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외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주변과 소통하는데,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된 경우 또는 소통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기에 후견제도가 존재한다. 알렉스는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능력이 결여된 엄마를 피후견인으로 하여 법원에 후견심판을 청구하고 엄마의 후견인이 되어 재산상의 업무를 대리할 수 있다(민법 제9조). 그랬다면 화폐교환시기를 놓친 알렉스가 엄마가 평생 모은 동독 지폐를 옥상에서 다 뿌려버리는, 이 영화의 명장면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스가 후견인이 된다 해도 엄마의 신체, 자유, 사생활 관련 사안에 있어서까지 전횡할 수는 없다. 엄마가 어디에 살 것인지, 치료를 받을 것인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등의 문제는 엄마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민법 제947조의2).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엄마의 세상을 작은 방에 가두고 온통 거짓말로 채우는 것은 -알렉스의 애인(라라)이 수차례 비난했듯이- 잔인한 행동이다. 알렉스와 라라의 갈등은 후견 제도가 겪는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후견제도가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자 할수록 피후견인은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피후견인의 보호에 치중하는 것은 아직 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정신적 능력과 자존심, 인격에 상처를 주게 된다. 사실 알렉스의 엄마도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이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엄마의 숨겨진 과거를 보면 스스로의 결정으로 선택하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후회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대면하여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삶을 인간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리라.

  어쨌든 영화의 내용을 이어가는 것은 알렉스의 거짓말들이다. 연이은 거짓말들 사이사이로 변화에 적응해가는 사람들의 혼란,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절망이 보인다. 철거되면서 엄마를 응시하는 거대한 레닌의 두상은 공산주의의 몰락을 정면에서 마주하게 한다. 우울증 상태의 엄마를 끌어안은 어린 알렉스를 보았기에, 알렉스의 거짓말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중반으로 접어들면 이 거짓말이 과연 엄마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무너진 장벽 너머로부터 흘러드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돈의 가치에 자연스레 적응하는 소년들과 달리 노인들은 서럽고 무기력하다.

  이 영화는 버거킹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를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속옷 치수조차 당국으로부터 당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체제의 부자연스러움도 보여준다. 본래 진실이란 모호한 것이라서 각색하기도 쉬웠다는 독백에서 보듯, 무너진 벽 앞에서 사상과 체제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부질없을 것이다. 다만 익숙했던 세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아야 하는 한 세대의 슬픔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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