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세대가 4년제 학부를 졸업한 후 삼성전자에 취업을 보장하는 계약학과인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오는 2021학년도부터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와 삼성전자는 우선 학부 과정으로 운영한 뒤 학·석사 통합 과정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 학년 정원은 50명이며 첫 신입생은 내년에 선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학이 고등교육의 원칙을 훼손하며 기업 주문형 인력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계약학과란?
  계약학과 제도는 대학이 △국가 △지방자치단체 △산업체 등과의 계약을 통해 정원 외로 개설·운영할 수 있는 학위 과정이다. 이는 대학의 산학협력 촉진을 위한 법률인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제8조에 근거해 지난 2004년부터 도입됐다.

  계약학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특정 기업체 직원의 재교육이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형’이 있고, 두 번째는 기업이 채용을 조건으로 기업 맞춤형 교육과정의 운영을 요구하는 ‘고용보장형’이 있다. 연세대가 최근 신설하겠다고 밝힌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고용보장형’에 해당되며, 두 유형 모두 학부 또는 대학원에 신설할 수 있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18년 전국 대학 계약학과 설치 운영 현황’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대학이 설치·운영하고 있는 계약학과는 전국 대학에 290개가 있다. 이 중 고용보장형 계약학과 수는 21개다.

  최근 연세대가 삼성전자 취업을 보장하는 계약학과 설립을 공식화하자 서울대 등 다른 상위권 대학도 고용보장형 계약학과 신설에 힘쓰고 있다. 서울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학과 신설 방안과 커리큘럼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반도체학과 신설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에서도 SK하이닉스로의 취업이 보장되는 ‘반도체학과’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맞춤형 인재 양성 장점이지만 대학 ‘인력양성소 전락’ 우려도 있어…
  계약학과의 장점은 우선 기업 입장에서 추가 교육이 필요없는 우수한 인재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최근 운영되는 계약학과 분야 중 주요하게 떠오르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경우 고질적으로 전문 인력 부족 문제가 발생했던 반도체 업계에서 관련 학과 설치를 반기는 추세다. 교육수요자 입장에서는 극심한 청년 취업난에도 졸업 후 안정적인 진로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다. 

  정부 역시 구직자의 선호와 필요 일자리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고민해왔기 때문에 계약학과가 산업 환경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력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일자리총괄과 엄중흠 사무관은 “특히 공학계열의 경우 대학이 산업체와 담을 허물고 현장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입장에서도 계약학과를 설치할 경우 취업률이 상승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취업률이 올라갈 경우 각종 대학평가 지표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협력해 고용보장형 계약학과를 운영 중인 성균관대의 경우 2017년 졸업생 취업률이 75.1%로 4년제 대학 중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방식이 대학 내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계약학과의 대부분이 이공계열에서 우선시되며 계열 간 취업격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밝힌 대졸 취업률 현황을 보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는 14.2%p 낮아졌고 자연계열은 11.9%p 높아졌다. 박사학위 취득자 취업률은 공학계열이 87.3%에 달했지만 인문계열은 50.9%로 절반에 그쳤다. 또한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태훈 정책위원은 “특정 대학에만 과도한 혜택을 주고 있고, 다른 대학 졸업생의 취업길을 막아 차별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는 현상을 낳는다는 우려도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선임연구원은 “계약학과는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주문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대학의 기업 종속화 현상을 우려했다. 한신대 사회학과 노중기 교수도 “창의적이고 상상력 있는 공학자가 필요한 시대에 삼성전자에 취업하는 목적의 직장인 양성 교육을 하겠다는 발상이 미래가치와 부합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며 “그만큼 삼성전자 입사 가능성이 줄어든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합리적인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신고제라는 명분 하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교육부는 대학들이 계약학과 신설에서 부정입학 등 각종 불법행위를 방지하고자 관련 학과 설치나 폐지를 정부에 신고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그러나 신고제로 운영됨에 따라 계약학과 제도에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본교는 ‘재교육형’에 주력하고 있어
  본교의 경우도 학부 과정과 대학원 과정에서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다. 본교의 경우 고용보장형 계약학과보다는 재교육형 계약학과에 주력하고 있다.

  본교는 현재 학부 과정에서 △벤처경영학과 △복지경영학과 △통상산업학과 △혁신경영학과 총 4개의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본교는 학칙에서 재교육형 계약학과의 경우 학생정원을 당해 학년의 전체 입학생 정원의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며 계약학과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본교 일반대학원에서 운영 중인 계약학과로는 △프로젝트 경영학과 △경제학과 △IT융합학과논문으로 모두 ‘재교육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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