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목) 헌법재판소가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을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인 법률이 위헌임을 인정하지만, 해당 법률이 폐지돼 발생할 공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만 법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의 주문에 따라 국회는 오는 2020년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7년 만에 달라진 결과 

  이번 결정은 1953년 낙태죄 관련 형법이 제정된 후 66년 만에 내려진 결정으로, 이는 지난 2012년 동의낙태죄가 합헌 결정이 난 이후 7년 만에 달라진 결과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지난 2017년 2월 형법상 낙태죄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의사 A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한 것이다. 문제로 제기된 법률은 형법 269조 자기낙태죄와 270조 동의낙태죄로 각각 처벌 수위는 1년 이하 징역과 벌금 200만 원, 그리고 2년 이하의 징역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에 따라 국회는 오는 2020년이 끝나기 전까지 법을 개정해야 하고, 개정 이후부터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는 폐지된다. 

  2012년 당시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 의견이 찬성 4명, 반대 4명(1명 공석)으로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됐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가 공공연하게 일어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합헌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는 △단순위헌 3명 △헌법불합치 4명 △합헌 2명으로 7명이 위헌 쪽에 손을 들며 헌법불합치로 결정됐다.

  단순위헌 판결의 경우, 법률 전체 또는 해당 조항이 무효이므로 당장 법을 폐지하자는 안이다. 반면 헌법불합치 판결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인 것은 맞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의 발생이 우려되므로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법을 존속하는 판결이다. 

  우선 단순위헌을 주장한 3명의 재판관은 “임신 첫 3개월 동안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낙태를 금지하고 이에 대해 형벌적 제재를 부과하는 방법은 태아의 생명 보호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차라리 사회복지차원에서의 국가적 지원이나 각종 제도 등을 개선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고 실효적인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헌법불합치를 주장한 4명의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하거나 종결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과 사회관을 바탕으로 한 고민을 반영하는 결정”이라며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이면서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의 사유에는 여러 사회적·경제적 갈등 상황이 모두 고려되지 않아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시에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는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합헌을 주장한 2명의 재판관은 “태아 생명 보호는 매우 중대하고 절실한 공익”이라며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의 허용은 낙태의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생명 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2012년과 유사한 답변을 내놓았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판결이 났으므로, 후속조치로서 관련법의 광범위한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법적으로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은 특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예외사항은 모자보건법 제14조와 시행령 제15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 간 임신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24주 이내에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모자보건법상 합법에 해당되는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은 2017년을 기준으로 3천 8백여 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전체 인공 임신 중절 수술 건수는 연 5만여 건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불법이었으나 개인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해 시행돼 온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지 규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를 제시했다. 세계보건기구는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시기를 임신 22주로 정하고 있다.

  실제 관련법 개정안도 22주 허용에 맞춰 진행 중이다. 헌재 결정 이후 국회에서는 지난 9일(목) 기준으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지난달 15일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2건이 발의됐다.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임신 14주까지는 임신부의 요청만으로, 22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을 중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예외적 상황에만 임신 중단을 허용하는 현행법보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크게 강화한 내용을 담았다. 한편 ‘낙태’라는 단어는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의미를 갖기에, 이미 가치판단이 전제된 용어로서 사용을 지양하였다는 정의당의 입장은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중단 가능 기간을 법으로 제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건강권수호협회 이함성 활동가는 “10대 뿐 아니라 성인 여성 가운데도 22주에서 23주 사이에야 임신 사실을 알고 성폭력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있다”며 “법적으로 성폭력에 의한 임신을 인정받으려면 수사를 거쳐 재판까지 몇 개월씩 걸린다”고 지적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윤정원 여성위원장은 “후기 임신 중단은 국가가 아닌 여성이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정부는 후기 임신 중단 때 여성에 가해지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출산 후 입양 등 다른 방법은 없는지 등 당사자가 정보를 충분히 얻고 결정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법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외에도 산부인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산모 안전을 위해 기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임신 기간이 길수록 임산부의 후유증과 사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는 임신 중절 수술이 제한되는 기준인 임신 14주 이후에도 의사 2명이 ‘임신 유지가 여성의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길 우려가 있다’는 진단서를 정부에 제출하면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 스웨덴은 보건당국 위원회 심사로 출산 후 태아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24주 이후 임신 중단을 허용한다.
 

  아직은 갈 길 먼 임신 중단 합법화

  인공 임신 중단 합법화는 이제 막 준비를 시작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후속 법안 마련을 위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개정돼야 할 부분이 많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임신 중단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의약품 분야에서는 임신 중절 약물인 ‘미페프리스톤’이 주목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동안 여성들이 불법적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임신 중절 약물에 대해 “도입 허가를 요청하는 기업이 있다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임신 10주 이내에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할 경우 별다른 조치 없이 임신 상태를 중단할 수 있으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인공 임신 중절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약물에 대한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역시 검토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르면, 임신 중절 수술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돼 이를 수술한 의사는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규칙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았으며, 보건복지부 측에서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면밀히 분석해 결정 취지를 완전히 파악하고 제도가 바뀌는 데 따른 사회 각 부문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인 후속조치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개인적 신념에 따라 임신 중절 수술을 의사가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96개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134개국이 임신 중단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임신 중단을 전면 금지한 나라는 △엘살바도르 △몰타 △바티칸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니카라과 총 6개국이고, 제한 없이 임신 중단을 허용하는 나라는 △캐나다 △중국 △베트남 △북한 총 4개국이다.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경우 허용 범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스위스는 10주 내로,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등은 12주까지 임신 중단을 허용한다.

  지난해 5월 아일랜드에서 실시된 낙태금지헌법 폐지 국민투표에서 찬성 66.4% 반대 33.6%로 산모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존권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아일랜드 수정 헌법 제8조는 폐지가 결정됐다. 아일랜드는 임신 중단을 금지하고 있는 종교인 가톨릭 국가로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강간 △근친상간 △태아 이상 징후의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국민투표로 임신 중단을 합법화한 것이다.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의 경우 1948년부터 임신 중단을 부분 허용했으며 ‘모체보호법’에서 사회적·경제적인 사유로 인한 임신 중단을 허용한다. 중국과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로 사회적·경제적 요인에 의한 임신 중단을 인정하고 있으며, 대만은 임신 24주까지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2주에서 13주 사이에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임신 중단을 제한하는 법안이 대거 채택되고 있기도 하다. 올해 들어 △조지아 △텍사스 △미시시피 등 11개 주에서 의사가 태아의 심장 박동을 확인한 이후 임신 중단을 금지하도록 한 태아심장박동법을 채택했거나 논의 중이다. 반면 같은 해 8월 아르헨티나 상원에서는 임신 초기에 임신 중단을 허용하는 법안이 반대 38명, 찬성 31명으로 법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박아름 활동가는 “졸속 입법으로 입법 공백을 메우기보다는 논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의 입법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손문금 출산정책과장은 “형법 낙태죄를 어떻게 할지, 별도의 인공 임신 중절법을 만들지, 모자보건법의 예외적 임신 중절 허용 규정은 어떻게 할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에 맞는 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임신 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 수준별 시기 구분 △불완전한 자기결정에 대한 보완 △낙태죄 처벌 규정의 정비 △건강보험 적용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어 아직은 갈 길 먼 상황이다.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인공 임신 중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필요성도 주목받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9일(목) ‘처벌에서 권리 보장으로-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의와 정책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토론회에서 “국회와 정부는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하고 관련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진행된 토론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이 연 첫 번째 정책 토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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