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99년에 숭실대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한 이후로 현재 2019년 교수로 있는 지금까지 줄곧 학교의 높은 분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대학’,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학’이었다. 어떠한 자리든지 강단에 섰던 사람들은 이 말부터 시작했다. 나도 대학에 들어온 이후부터 20년 가까이 들어서 그런지 이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수업시간에도 후배이자 제자들인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던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실망감으로 바뀐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지난 4월 9일과 10일, 독립운동가 김태연 지사의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이 연달아 열렸다. 평양 숭실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짧은 생을 중국에서 마치신 그분의 유해는 정부의 노력으로 98년만에 고국으로 모시고 오게 되었다.

  참석 첫 번째 행사인 유해 봉환식은 첫 번째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동원된 학생들은 행사 전부터 퍼포먼스를 하고 행사 후에는 그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봉환식 단상을 배경으로 참석한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현수막을 펼쳐서 사진을 찍었다. 참석한 어느 학생은 ‘여기서 까지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나와 몇몇의 학생은 너무 민망해서 사진 찍는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장례식과 다름없는 유해 봉환식의 단상을 배경으로 ‘숭실대학교’라는 이름을 걸고 꼭 사진을 찍어야 했을까? 이 장면을 본 유가족과 다른 참관객들은 과연 숭실대학교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는 유해 봉환식에 참가하면서 독립지사를 길러낸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이 생긴 것보다 학교 홍보에 그저 동원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아쉬움과 실망감이 커졌다. 

  이 실망감은 둘째 날 유해 안장식에서도 이어졌다. 그동안 학교에서 ‘신사 참배 거부’, ‘독립운동가 배출’을 외치던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은 총리나 국회의원이 참석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라고 하는 어느 학생의 말에 교수로서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 부끄러울 뿐이었다. 엄중한 유해 안장식에서도 그 플래카드 사진 찍기는 계속 이어졌다. 학생들과 나는 ‘이곳에 사진 찍으러 온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사진으로 시작한 행사 참여는 사진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학교 홍보나 자료를 남기기 위해서 사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장소와 분위기가 맞지 않으면 자중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숭실대학교라는 겉모습을 스스로 치장하고 꾸며서 보여 주기 보다는 그저 우리의 자부심과 품격을 묵묵히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의 ‘겉’은 스스로 내세워 보여주는 것이지만 ‘격’은 상대방이 부여해준다. 우리가 품격을 먼저 지키면 우아한 겉모습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품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만의 철학과 자부심을 가지고 늘 한결 같이 행동한다면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그 품격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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