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 역 앞에 있는 모모타로의 동상. 모모타로는 ‘복숭아 도시’ 오카야마의 최고 명물이다.
오카야마 역 앞에 있는 모모타로의 동상. 모모타로는 ‘복숭아 도시’ 오카야마의 최고 명물이다.

  아주 옛적 아이가 없는 노부부가 냇가에서 떠내려 오는 큰 복숭아를 가져와 쪼개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다. 노부부는 아이가 없던터라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모모타로(桃太郞)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키 웠다. 장성한 모모타로는 귀신이 출몰하는 섬으로 ‘귀신퇴치’ 모험을 떠나게 되고, 가는 길에 만난 개, 원숭 이, 꿩에게 수수경단을 나눠주고 그들을 부하로 거느리게 된다. 귀신과 싸워 승리를 거둔 모모타로는 귀신 의 보물을 가지고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라면 모두 아는 모모타로 이야기의 줄거리다.

  일본에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전설이 참 많다. 중요한 것은 길지 않은 모모타로 이야기에도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없는 노부부에게 우연히 주어진 아이’, ‘귀신과 퇴치’, ‘의인화된 동 물의 등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해피엔딩. 스토리텔링이란 메시지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또 설득력있게 전 달하는 것이 아니던가. 일본은 어떤 도시를 가도 그 도시에 맞는 이야기를 발굴해 상품화해놓았다. 일본에서 복숭아로 가장 유명한 도시 오카야마(岡山)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리부터 복숭아를 맛보러 온 것이어서 그런지 도시 전체에서 복숭아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일본어로 ‘모모(桃)’는 ‘복숭아’를 의미하고, ‘타로 (太郞)’는 ‘맏아들’을 의미한다. 모모타로라는 말은 이미 하나의 캐릭터이고 브랜드가 돼있어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가는 곳마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 철자로 된 ‘Momotaro’ 마크를 볼 수 있다. 오카야마역 앞에 있는 모모타로 동상은 유명한 ‘포토스팟’이다.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높은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 이 도시를 일본 사람들은 ‘과일왕국’ 또는 ‘햇살의 땅’이라 부른다고 한다. 오카야마의 포도 또한 맛나기로 유명한 명물이지만 모모타로 이야기가 워낙 인지도가 높아서인지 모두들 복숭아를 먼저 찾는다. 7월이 오카야마 최고의 복숭아 시즌이라고 하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시즌을 정확히 맞추어 갔다. 제철에 먹는 음식은 그 자체가 최고의 보양식이다.

  쨍쨍 내려쬐는 햇빛에 과일만 풍성할 것 같은 오카야마에는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고라쿠엔(後樂園)이 있다. 1687년에 건설이 시작돼 14년간의 긴 공사를 거쳐 1700년에 완성된 일본 조경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연못과 언덕, 집과 나무가 꼭 있어야 할 장소에 있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일본 조경문화의 특징이라고 생각해본다. 안내판은 정원의 건물들이 1945년 태평양전쟁 중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17세기를 느끼고 있으니 이것도 일본의 세밀한 ‘복원기술’이 아닐까. 지척의 거리에 위치한 까만색의 오카야마 성만이 동병상련(同病相憐)하며 서있다. 성의 벽면이 특이하게도 까만색이라서 ‘까마귀 성’이라고 불리는 이 성도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일본의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이 좋아졌다. 대도시에서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릴 멋진 스토리텔링이 있어서 좋고, 높은 빌딩의 그림자에 가려져 시들해진 꽃들이 소도시에서는 파릇파릇 만개해서 좋고, 극히 일부지만 몇몇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볼썽사나운 혐한(嫌韓)시위가 없어서 좋다. 레이와(令和)시대를 맞은 일본이 한국과 진정한 의미의 이웃이 될 날을 고대해본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