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는 어떤 곳에도 없는 이상적인 장소인 유토피아(u-topia)를 처음으로 말하였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중세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진 이 용어는 400년 넘게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어오다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흔들리게 되었다. 세계 2차 대전을 경험한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그들이 토대로 살아가고 있는 장소(topia)가 더 이상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조지 오웰 등의 작가들은 디스토피아(dys-topia)를 주장하기도 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인간은 엄청난 기술 발달로 겉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성취했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 이면의 인류가 직면한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레트로토피아(retro-topia)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혁명을 통해서 인류가 성취한 자유는 허상이었으며, 스스로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 하는 인간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넷과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더 큰 자유를 제공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것들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은 더 심각한 통제 불능의 혐오와 폭력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이제 인간이 원했던 미래의 공간을 찾아 갈 수 없기에 인간은 불안하다. 인간에겐 과거를 회상 (retro)한 공간(topia)만이 남아있다.

 김난도는 레트로토피아를 요즘 새로운 유행에 접목하면서 뉴트로(new-tro)토피아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유행한 과거 시대를 회상하는 드라마들, 빈티지 제품들의 인기, 심지어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까지... 새로운 기술 시대에 어울려보이지 않는 것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유행은 단순히 복고풍의 시대로 돌아감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늘의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빡빡한 현실을 살아내는 오늘의 10대 20대들의 자화상이 이 현상 속에 그려져 있다.

 진실로 오늘 우리가 직면한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동안 자본주의적인 질서가 만들어 주었던 놀라운 경제 성장의 청사진은 그 빛을 잃었다. 이 저성장 시대에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어른 세대보다 덜 부유한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발달된 기술은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기 보다는 그 익명성을 악용한 인간의 폭력성이 가감없이 전달된다. 어떤 이들은 이 폭력성에 기대어서 자신들의 사회·정치적인 이익을 얻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에 누구에게나 미래는 있다. 미래는 아직없는 세계이기에 우리에겐 여전히 기다려봄직한 유토피아다? 그러나... 오늘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자유와 안정이 보장된 유토피아로서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은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불안한 레트로토피아이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유행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뉴트로토피아이다. 미래는 어떤 특정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토피아를 꿈꾸면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우리의 미래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