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포스터는 사탕처럼 예쁜 분홍색으로 칠한 호텔의 정면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생일케이크처럼 달콤한 영화’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게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이 벌이는 활극 속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의 장면이 툭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기분 나쁠 정도로 붉은 입술과 탁한 눈동자의 마담 D가 호텔에 들른 후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호텔 지배인(구스타브)은 살인자로 지목되고 마담의 아들(드미트리)과 킬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탈주와 추격 속에서 마담이 남긴 유언의 실체가 드러난다.

 드미트리는 구스타브를 증오해 왔다. 어머니가 그에게 재산을 물려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구스 타브와 드미트리의 대결은 상속에 있어 ‘유언자유의 원칙’과 ‘상속인의 기대권’이 대립하는 양상과 유사하다. 재산처분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생전이든 사망 직전이든 상관없이 인정돼야 하므로 사적자치의 원칙의 한 내용으로서 유언자유의 원칙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이를 최대한 보장한 결과 극단적인 경우에는 유족의 생활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여기서 사적 소유의 측면을 강조할 것인가 혹은 가족에게 재산을 남긴다고 하는 상속적 사상을 강조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유류분 제도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유언의 자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가한다. 유류분(遺留分)이란 상속인에게 보장되는 피상속인의 재산으로서 피상속인이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일정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반드시 남겨져야 할 부분을 가리키는 바, 유언을 통해 상속으로부터 배제된 유족에 대해 유산에 대한 일정한 최소액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민법은 직계비속에게 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한다(민법 제1112조).

 한편으로는 유류분제도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상속인이 누구인가는 법률에 정하는 순서에 따르는 것이기에(자녀,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등에게 상속순위가 인정된다. 민법 제1000조), 그가 피상속인과 생전에 얼마나 친밀했는가, 재산을 승계할 만한 도덕적 성품, 능력을 가지는가는 고려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회의 고령화로 인해 유류분제도의 부양적 기능이 약화되었고, 산업사회에서는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에 기여하는 정도도 낮아졌다. 그럼에도 혈연이나 혼인을 이유로 한 상속인의 지위와 기대권을 유언자의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보호하는 것이 합당한가? 드미트리 같은 악인에게도 어머니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확보해 주어야 하는가? 현행법상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하다. 그러나 상속인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으로 상속결격(相續缺格)제도가 존재한다. 보통 피상속인과 상속인 사이에는 상속협동체라고 할 수 있는 윤리적·경제적 결합관계가 있음이 전제되는데, 이를 깨뜨리는 비행(非行)이 있을 경우 상속권을 부인하기 위해 상속결격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 민법에서는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을 살해한 자와 상속에 관한 유언을 방해한 자, 유언서를 파기·은닉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1004조).

 영화의 배경인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상속법제에 대해 알 길이 없지만, 마담 D가 전재산을 구스타브에게 남겨주었더라도 아들은 재산의 일부를 유류분으로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드미트리의 악행의 수위로 미루어보건대 상속결격에 넉넉히 해당하여 상속인의 지위를 박탈당했을 것이다. 결국 영화의 결말에서처럼 혈연관계와 무관한 구스타브와 제로가 마담의 유산을 향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생일케이크처럼 달콤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 지만(케이크가 많이 나오기는 한다) 선악의 뚜렷한 대 비와 권선징악의 결말은 동화 같기도 하다. 악한 인간과 선한 인간, 감정이 결여된 듯 경직된 인간들 속에서, 돈 많고, 늙고, 불안정하고, 허영심 많고, 천박하며, 금발이며 외로운 구스타브만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죽음은 마담 D의 죽음과 달리 진정한 애도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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