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을 합쳐 국내에서 방영되는 예능은 무려 18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 많은 프로그램 중 대다수는 여행과 음식을 주제로 비슷한 형식을 가지는 프로그램들이다.

  여행 콘텐츠에 있어서 tvN의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tvN의 ‘짠내투어’ △KBS의 ‘배틀트립’ △JTBC ‘트래블러’ 같이 여행을 가는 것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음식 콘텐츠도 마찬가지이다. △SBS ‘격조식당’ △JTBC ‘냉장고를 부탁해’ △tvN ‘수미네반찬’ △tvN ‘현지에서 먹힐까? 시즌3’, △올리브 ‘밥블레스유’,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등 수많은 ‘쿡방’, ‘먹방’이 예능의 핵심적인 주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처럼 비슷한 형식을 답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tvN에서 지난 3월 방영한 ‘스페인 하숙’은 ‘윤식당’의 형식과 주제가 비슷해 자기복제라는 비판이 방송 초기부터 있었지만,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0.1%의 시청률로 금요일 예능프로그램 중 2위를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나 혼자 산다’가 지상파 방송사 MBC의 프로그램인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각 방송사 별로 대표 프로그램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음식이나 여행을 주제로 한 예능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우려먹기’라는 비판 속에서도 계속해서 여행 예능은 그 수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 해외에서 요리하기, 진짜 신규 예능은 어디로?

  지난 3월에서 4월 사이 tvN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3개를 내놓았다. 새롭게 나온 프로그램은 △‘스페인 하숙’ △‘미쓰코리아’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이다.

  먼저 ‘스페인 하숙’은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소중한 추억과 선물이 될 식사를 대접하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미쓰코리아’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을 그리워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한식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도 마찬가지로 미국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새롭게 등장한 세 프로그램 모두 해외로 나가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형식을 가진다. 단지 출연진과 나라만 다를 뿐이다. 

  이러한 유사한 프로그램 구성은 지난 2017년에 방영돼 큰 성공을 거둔 tvN ‘윤식당’ 시리즈에서 출발한다. ‘윤식당’은 해외에서 작은 한식당을 차리고 가게를 운영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윤식당’ 이후 제작된 tvN의 ‘국경 없는 포차’나 ‘커피프렌즈’는 ‘윤식당’과의 차별화를 성공하지 못했다. ‘국경 없는 포차’도 해외에 나가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고, ‘커피프렌즈’는 출연진들이 제주도에서 직접 카페를 차려 운영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제작자들의 답습 이어져…
  화제성 예전만 못해

  일각에선 예능이 ‘나영석 화(化)’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큰 인기를 끌었던 나영석 PD 예능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모든 예능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요리하는 구성만 답습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는 지적이다.

  나 PD의 예능 구성은 다른 PD뿐만 아니라 나 PD 자신도 답습하고 있다. 나 PD는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알쓸신잡’ 등 매년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해왔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구성이 유사해 자기복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일례로 ‘스페인 하숙’도 ‘삼시세끼 어촌편’를 통해 이미 인기를 끈 바 있는 출연진 조합에 한 명의 출연진이 추가 합류한 것 말고는 별 다른 차별점이 없었다. 이후 차기작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 대신 ‘강식당 2’와 ‘신서유기 7’을 준비 중이다. 

  나 PD의 예능프로그램 구성을 답습하는 다른 PD들은 나 PD의 과거 프로그램 제작팀에 소속돼 있던 PD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커피프렌즈’는 ‘삼시세끼 정선편’을 통해 입봉한 박희연 PD의 작품이다. 박 PD는 tvN ‘아버지와 나’로 차별화를 꾀하는 듯했지만 시청률과 화제성을 잡지 못하자 ‘집밥 백선생 2, 3’,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등 다시 요리를 앞세운 프로로 돌아왔다. 

  외부에서 이적한 PD들도 나 PD가 닦아놓은 길을 택했다. MBC ‘무한도전’에 5년간 몸담았던 손창우 PD는 ‘짠내투어’와 ‘미쓰코리아’를 내놓았고, SBS ‘땡큐’ ‘박진영의 파티피플’ 등을 연출한 박경덕 PD의 첫 작품도 ‘국경없는 포차’였다. 각각 리얼 버라이어티와 토크쇼라는 경험을 살리기 보다는 여행과 요리의 조합이라는 필승 공식을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손 PD는 “비슷한 프로그램이 쌓이다 보니 피로감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누구를 따라하기보다는 삼시 세끼를 먹고 보편적인 삶 속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좀 더 통할 만한 아이템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러한 요리와 여행을 조합한 예능들이 성업 중이지만, 자기복제적 예능에 식상함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초적 부분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끄는 건 사실이지만, 시청자는 결국 새로움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따라서 차별점을 뒀다고 해도 큰 만족감을 주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베끼기가 아니라 진화다?

  예능 프로그램을 답습하는 행태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지속돼왔다. 2009년 오디션 프로그램의 첫 타자인 Mnet의 ‘슈퍼스타K’가 인기를 끌자 케이블 지상파 할 것 없이 비슷한 포맷의 각종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MBC의 ‘위대한 탄생(2010)’ △KBS2의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2011)’ △SBS의 ‘K팝스타(2011)’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KBS는 ‘베끼기 예능’으로 특히 질타를 많이 받았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KBS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KBS 양승동 사장에게 KBS가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인기 프로그램을 베끼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불후의 명곡’은 각각 ‘아빠 어디가’와 ‘나는 가수다’와  비슷한 형식을 가졌다. 또한 ‘줄을 서시오’(JTBC ‘밤도깨비’), ‘혼자 왔어요’(채널A ‘하트시그널’), ‘하룻밤만 재워줘’(JTBC ‘한끼줍쇼’), ‘더 유닛’(Mnet ‘프로듀스 101’), ‘마마도’(tvN ‘꽃보다 할배’) 등이 모두 타사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이 의원은 “KBS가 나서서 짝퉁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단순히 이러한 행태를 베끼기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반박한다. 대중의 수요에 따라 △먹방 예능 △육아 예능 △여행 예능 등 방송가의 흐름에 따라야 하고, 그러다 보면 기존 콘셉트에 새로운 것을 가미한 예능이 나온다는 것이다. KBS 예능국에서는 “‘아빠 어디가’는 2015년 막을 내렸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직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며 “결국 이는 베끼기가 아니라 ‘진화’라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능 정체기에서 벗어나야

  비슷한 방식의 예능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모습이 장기화될 경우 다양성의 측면에서 전반적인 예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2016년 한국방송학보의 ‘채널 증가에 따른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 다양성 변화 연구’에 따르면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 tvN 등 8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 다양성 지수는 2012년 7,810에서 2014년 7,281로 떨어졌다.

  하지만 PD들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손 PD는 “먹방과 여행이 지겹다는 의견도 많지만 점점 더 워라밸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트렌드”라며 “방송에서 너무 앞선 트렌드를 제시하면 외면받기 쉽기 때문이다”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재원 대중문화평론가는 “tvN이 한국의 넷플릭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 포맷의 반복이 아닌 용감한 투자나 실험적인 콘텐츠도 때론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계속 요리하는 장면만 보여주다 보면 시선은 끌지언정 푸드 포르노와 다를 게 없다”고 밝혔다. 푸드 포르노란 음식 또는 음식 먹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이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가리켜 만든 신조어이다. 공희정 TV평론가는 “결국 프로그램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출연진인데, 똑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포맷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지다 보니 출연진에 대한 이미지 소비만 심해지고 시청자들도 쉽게 질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종편 프로그램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종편이 크게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꾸준한 투자를 통해 브랜드 파워를 상승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보다는 타 방송사의 성공한 프로그램의 구성을 쉽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 김교석 평론가는 “요즘은 유사성이 점점 심해져 작가와 패널이 거의 동일시 되는 경향마저 보인다”면서 “한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자 너도나도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종편에서 이런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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