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특집

  매년  5월 17일은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의 첫글자를 딴 ‘IDAHO 데이’ 또는 ‘IDAHOBIT 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됐으며, 이날 다양한 국가에서 성 소수자 관련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지난 17일(금)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성 소수자 단체와 인권단체 20여 개가 모여 ‘2019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 평등과 안전을 이야기하자”며 공동 선언문을 냈다. 공동 선언문에는 “누구나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안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현실에서 성 소수자의 안전한 삶은 지속해서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담겼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최영애 위원장은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성명을 통해 “성 소수자도 사회의 다른 구성원처럼 그 자체로 존중받고 평등과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혐오와 차별을 넘어 저마다의 빛깔로 마주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2016년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 소수자 10명 중 9명이 ‘혐오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등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인권위는 앞으로도 성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우선 흔히 혼용되곤 하는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다른 개념이다.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자신의 성별에 대한 인식으로, 출생 시 법적으로 지정돼 부여받는 성별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성별을 인식하는 내적인 감각을 의미한다. 그 예로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 법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불일치하며,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 정체성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이다.

  반면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타인에게 느끼는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정서적 △낭만적 △육체적 끌림과 관련된 개념이다.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무성애가 성적 지향에 해당한다. 성적 지향은 개인을 둘러싼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요인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한 결과이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인지하고 수용하게 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LGBTIQA’가 의미하는 성 소수자를 부르는 명칭들.
‘LGBTIQA’가 의미하는 성 소수자를 부르는 명칭들.

  성적 소수자를 의미하는 ‘LGBT’는 △‘레즈비언(Lesbian)’: 여성 동성애자 △‘게이(Gay)’: 남성 동성애자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 △‘트랜스젠더(Transgender)’: 법적으로 부여받은 성별 정체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앞 글자를 딴 단어이다.

  이에 더해 ‘간성(Intersex)’은 생물학적 용어로, 생식기나 성호르몬 염색체 구조와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출생 시 남성과 여성의 성질을 모두 띠지만 성장하면서 한쪽으로 외형이 발달하는 양상을 보인다.

  ‘퀘스쳐너(Questioner)’는 성별 정체성 이나 성적 지향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거나 확립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또한 ‘에이섹슈얼(Asexual)’은 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또는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아예 없는 무성애자를 뜻한다.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섹슈얼리티의 변화 과정

  그동안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인식 및 제도는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섹슈얼리티는 성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포괄한다. 즉, △성적 욕망이나 심리 △이데올로기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인 요소 등이 포함된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사회가 섹슈얼리티에 어떤 가치와 기준을 부여하는가,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생산하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섹슈얼리티가 의학적 문제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부터다. 당시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며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미국정신의학협회는 1980년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아동기 성 주체성 장애’와 ‘트랜스 섹슈얼리즘’을 등재했다. 이는 장애라는 표현으로 트랜스젠더를 병리화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진단명을 기존의 성 주체성 장애에서 ‘성별 위화감’으로 변경하고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은 정신질환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2018년에 진행된 질병 분류에서 성 주체성 장애를 성별 불일치로 변경하고 정신 및 행동 장애가 아닌 성 건강의 범주에 넣었다.

  한국의 현주소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나타난 가장 큰 국제적인 움직임은 ‘동성혼 법제화’이다.

  지난 17일(금), 대만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대만 입법원에 따르면 대만의 동성 연인은 관청에 결혼 등기를 할 수 있으며,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자녀 양육권 △세금 △보험 등과 관련한 권리도 갖게 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못해 동성혼 법제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 및 증오 범죄 근절 △성 소수자의 교육·노동건강 보장 등에 대한 요구가 일고 있다.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문화축제 홍보 포스터이다.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문화축제 홍보 포스터이다.

  한국의 성 소수자 인권 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 한국 성 소수자 인권 지수 역시 전년대비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목), SOGI법정책 연구회는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8’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성 소수자 인권 지수는 11.7%로 전년대비 0.15%p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2014년 이후로 한국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관련 제도는 개별 항목상의 변화가 없으며 제도 개선에서도 진척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5년 11월, UN 자유권위원회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 소수자 혐오와 차별적 태도를 우려한다”며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이나 혐오 표현 등 어떤 종류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응답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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