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 로드리고 코스테르 감독
'베리드' 로드리고 코스테르 감독

  영화 <베리드>는 영화의 형식이 가지는 장점을 완벽하게 비튼 작품이다. <베리드>는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영화의 강점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공간을 어두운 관속으로 한정 짓는다. 누워서 손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좁고 어두운 공간 속 영화는 유일한 등장인물인 주인공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 같은 극단적인 설정은 영화의 기본적인 형식을 파괴했기에 더욱 숨막히고 효과적인 공포를 관객들이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나아가 한 명의 인물이 어떻게 95분의 러닝타임을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만든다. 911테러 이후 여전히 테러에 대한 공포를 느끼던 미국인들의 심리가 잘 반영된 영화 <베리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라크에 거주하다가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을 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좁은 관, 의존할 것이라곤 휴대폰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이지만 영화 속 휴대폰은 폴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이자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요 장치로 사용된다. 무덤에 갇힌 폴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911, FBI, 폴의 회사인 CRT, 국방부에 전화를 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사무적인 태도와 일의 담당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반려되는 전화,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싸늘한 담당자의 태도가 전부이다. 설상가상으로 관 속에 모래가 차기 시작하며 폴이 처한 상황은 더욱 극단적으로 변한다. 폴이 요청한 수많은 도움이 무색하게, 결국 관 속의 공포를 감내하는 것은 폴 본인이다. 국가도, 회사도 그의 목숨과 안전보다는 개개인의 이익을 좇는 데 충실한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낸다. 정책과 돈, 국제 관계 속 퇴색돼 가는 인간 생명 위협은 테러에 대처하는 사회, 정치적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국가와 사회가 지향해야 할 테러에 대한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영화 <베리드>는 플래시백의 사용조차 없이 우직하게 한 공간만을 비추며 물리적 테러만큼이나 참혹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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