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드는 쿠시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드는 쿠시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일본의 설치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는 이 작은 섬의 곳곳에 호박을 남겼다. 노란 호박도 있고 빨간 호박도 있다. 섬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생뚱맞은 모양의 거대한 호박. 그런데 이 호박을 보러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돈이 되는 호박’인 셈이다. 나는 예술과 돈이 결부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예술은 때때로 한 도시를 살리는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그녀가 섬의 미래가치를 예측하면서 각기 다른 크기의 호박을 설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구리 제련소가 있었던 투박한 섬 나오시마(直島)가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의 섬’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술가들은 죽은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을 지녔다. 예술가의 마법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가 되어도 예술만은 인간의 영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흠모(欽慕)하고 인문학을 계속 공부한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해도 예술학과 인문학은 흔히 말해 ‘배가 고픈’ 학문으로 여겨졌다. 이 두 가지 학문분야가 언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배가 고플지를 일본의 나오시마에서 생각하고 있다니. 1989년부터 시작된 섬 재생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섬을 회생시켰다는 것이 큰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네 개의 큰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四國)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 많다. 그러나 일본 우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과 메이지유신의 주역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고향이 시코쿠에 있다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놀라곤 한다. 시코쿠 가가와현의 현청 소재지인 다까마츠(高松)에서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한 나오시마로 가는 배에 올랐다. 잔잔한 세토 내해(內海)의 아름다움은 갑판 위 벤치에 앉은 커플의 다정스런 모습을 더 빛내 주었다.

  나오시마에는 건축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베네세 하우스(Benesse House)와 지중(地中)미술관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산의 중턱에 위치해 있는 이 두 건축물에 전기 자전거를 빌려 수월하게 올라갔지만 내부에 있는 명작들을 감상하느라 내려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안도 다다오는 한국의 이우환 화백과 컬래버레이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도 명성이 높은데, 그의 건축물에는 절제된 선의 미학이 숨어있는 것 같다. 일본은 무엇이든 감추고 한국은 무엇이든 열어서 이야기할 것 같은 기분은 내 편견이 만들어 낸 걸까.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허기가 져서 가정집에서 파는 수제 카레를 먹었다. 단무지도 따로 값을 받는 일본 식당의 방식이 야박하기도 했지만 무엇이든 절약하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에 쉽게 동의하고 싶다. 이 곳은 모든 것을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는 작은 섬이니 더 그렇다. 와이파이도 없고 편한 의자도 없는 작은 가정집 식당에서 허기를 달래는 나의 모습이 한 여름의 더위에 깊게 파묻혔다.

  도시 재생의 개념을 넘어 예술가의 작품이 어떻게 한 지역을 변모시킬 수 있는 지를 실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오시마 여행을 권한다. 좀 여유가 된다면 숙박도 가능한 베네세하우스에서 하루 정도 머물다 오면 더욱 좋겠다. 왜 여행은 다녀오면 그 때는 하지 못한 걸 후회하게 만들까.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