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가 지난 7일(화) 발행한 보고서에서 사학 개혁 혁신 방안으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제시했다. 대교연은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전체 사립대학 재정의 50% 정도를 부담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으로 사립대학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화하고 연구 및 교육 수준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며 고등교육 체제의 전면적인 개편을 제안했다. 최근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라 대학가 전반적으로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가운데, 정원 감축과 폐교 등 기존 방식이 아닌 사립대학 전체의 재정 지원을 통한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이란?

  OECD 기준으로 교육기관은 크게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구분된다. 국・공립학교는 정부가 관리 및 경영하거나, 경영진 대다수를 공공기관이 채용한 기관을 의미한다. 반면 사립학교는 정부나 공공단체가 아닌 법인 또는 개인이 설립·경영하는 학교를 의미하며, 경영진 대다수가 공공기관에 채용되지 않은 기관을 말한다. 사립학교는 다시 ‘정부의존형 사립학교’와 ‘독립형 사립학교’로 세분된다. 이 중 정부의존형 사립학교는 정부가 학교 재정의 50% 이상을 지원하거나, 학교에 속한 교수 급여를 지원하는 경우이다. 독립형 사립학교는 정부가 학교 재정의 50% 미만을 지원하거나 소속 교수들이 정부에서 급여를 받지 않는 기관을 말한다.

  대교연에서 제시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은 정부의 재정적 책임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정부책임형’으로 명명되지만, 시스템상 정부의존형 사립대학과 동일하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도 정부의존형 사립대학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사립대학 재정의 50% 이상을 책임진다. 

  OECD 분류법에 따르면, 지난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전체 고등교육과정에서 정부의존형 사립학교 학생은 없다.  국・공립학교 학생은 19%이고 나머지 81%는 모두 독립형 사립학교 학생이다. 반면 타 OECD 국가의 경우 대다수가 국・공립학교 학생으로 이뤄져있다. 다른 국가의 국‧공립학교 재학생의 비율은 △독일: 94% △호주: 92% △이탈리아: 90% △미국: 68% △일본: 21%이다. 즉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의 대학생들은 국・공립대학에 재학하고 있다. 국‧공립학교 학생의 비율이 0%에 해당하는 영국의 경우 정부의존형 사립대학에 100% 재학하고 있으며, 독일과 호주 역시 잔여 6%와 2%가 정부의존형 사립대학 재학생이다. 독립형 사립학교 재학생의 경우 일본은 79%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32% △이탈리아: 10% △호주: 6%이다. 

  이러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은 처음으로 논의된 개념은 아니다. 대교연은 지난 2011년에 발간한 도서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사립대학 재정의 50% 이상을 지원하는 사립대학 체제로 전환할 것을 이미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지난 2017년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공영형 사립대학 전환 및 육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제시한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가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립대에 재정과 운영을 지원하는 형태로, 전체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을 기준으로 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공통적이다. 

  사립대학 재정 문제 심각한 상황

  대다수 OECD 국가들은 고등교육 대부분을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사립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책임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GDP대비 정부부담 공교육비 비율은 1.0%로, OECD 평균인 1.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민간부담 공교육비는 1.2%로, OECD 평균인 0.5%보다 2배 이상 높다. 이에 따라 사립대학 운영은 학생 등록금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교연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전국 사립대학 및 전문대학의 수입 총액 중 등록금 수입은 41.7%인 반면, 국고 보조금은 23.4%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50만 3천여 명 규모였던 대학 입학 정원이 2023년 경에는 39만 8천여 명 규모로, 2037년 경에는 32만 6천여 명 규모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해 2023년까지 입학 정원을 40만 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결국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생들의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사립대학 운영 방식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많은 대학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명지대의 학교법인 명지학원이 빚을 갚지 못해 파산 신청을 당한 것이 대학 재정난의 대표적인 사례다. 명지학원이 10년째 빚을 갚지 않자 채권자는 지난해 12월 서울 회생 법원에 명지학원의 파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명지대는 이번 사건이 학교법인과 채권자 개인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명지대 존립과는 관련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교육부는 오는 2021년 전체 4년제 대학 191곳, 전문대 137곳 중 38곳이 신입생을 뽑지 못하고 문을 닫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대학 모집 정원인 48만 3천 명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21년에는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모집 정원이 5만 6천명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향한 기대와 우려

  보고서의 기본 입장은 “학령인구 감소를 대학의 질적 발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교연은 보고서에서 “대학 수나 입학정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 재정 지원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해도 사립대학 정부 지원 비율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연구 및 교육 수준이 매우 낮은 현행 사립대학 체제는 계속 유지되면서 정부 지원 비율만 높아지는 기형적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만들기 위해선 국민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부정과 비리가 있는 대학에 국민 세금을 들이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사립학교법’ 개정 등 사립대학의 부정과 비리 행태를 바로잡고, 대학 운영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까지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지난 10일(금)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종합감사 미실시 대학’ 자료에 따르면, 개교 이래 단 한 번도 감사를 받지 않은 사립대학은 350개교 중 111교(대학 61교, 전문대 50교)로 전체 사립대학의 32%에 해당한다. 이 중에는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홍익대 등 서울 소재 사립대나 △건양대 △루터대 △을지대 △한라대 등 지역 사립대도 포함됐다. 이에 전국 36개 대학 총학생회가 모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지난 17일(금)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 부정비리를 바로잡는 것이 대통령과 교육부가 말한 사학 혁신의 시작”이라며 “부정비리 처벌 강화와 감사 제도 개선으로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실제 대학가는 비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3년간 교육부 감사 결과, 50개 대학법인의 법령 위반 건수는 153건이었으며 감사 지적 사항은 1,106건이었다. 지난 8일(수) 교육부 감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고려대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각종 회계비리가 적발됐다. 고려대 3개 부속 병원 교직원 13명이 유흥주점 및 단란주점에서 22차례 632만여 원을 결제했으며, 전임 비서실장의 퇴임 선물을 위해 영수증을 허위 처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가 연구 과제를 수행 중인 교수가 허위로 회의록을 작성해 부당한 연구비 집행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려대가 교비회계의 부적절한 집행으로 ‘회수’ 처분을 받은 금액은 8억 5천만 원에 달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교연은 △대학평의원회·등록금심의위원회 등의 실질화 △교육부 감사와 처벌 강화 △정보공개 확대로 대학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원 마련 방식과 분배 방법 역시 문제점이다. 보고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 도입을 재원 확보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현재 계류된 상태다. 이 법안들은 대체로 내국세의 8%에서 10% 정도를 고등교육 재원으로 확보해 대학에 교부한다는 내용으로, 이에 따르면 약 21조 6천억 원에서 25조 8천억 원의 대학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내국세란 별다른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고 부과되는 조세를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지금까지 대학재정 지원은 정부가 지정한 사업별 평가 결과에 따른 차등 지원 방식이었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에 따라 별도의 패널티 없이 일반재정 지원 사업을 지원받고, 특수목적 지원 사업에도 신청할 수 있는 자율개선대학이 323개(일반대학 187개, 전문대학 136개) 학교 중 64%인 207개(일반대학 120교, 전문대학 87교)에 불과하다. 역량강화대학으로 평가 받은 66교는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대학 경영의 잘못으로 자율개선대학에서 탈락한 학생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대학별 차등 지원이 아니라 학생 수 등에 따른 균등지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재정을 지원해주는 주체도, 독립적인 고등교육 재정기구를 설립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이 부실대학에 국민 세금을 투입할 정당성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는 국민 세금 사용의 적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려다. 그러나  “심의 등의 장치를 통해 부실·한계 대학은 걸러낼 수 있으며 그보다 고등교육 체제의 전면적인 개편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