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대한민국 인구 중 약 5%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약 10%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손가락을 만져서 글을 읽는 점자를 이용한다. 그들이 세상을 읽기 위해서 점자는 매우 절실하다. 그렇다면 점자가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돼 있을까.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윤택 소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점자가 굉장히 유용한 경우도 있지만 종종 되게 의미없는 점자들이 있어요. 예를들어 어떤 계단에는 몇 층으로 가는 계단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계단’, ‘내려가는 계단’이라고 적혀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거 왜 써놓은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에 본지 기자들이 실제 사회의 점자 사용 실태에 대해 알아보았다.

숭실대입구역 3번출구 앞 장애인 보도블럭 앞에 놓여있는 천막.
숭실대입구역 3번출구 앞 장애인 보도블럭 앞에 놓여있는 천막.
숭실대입구역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는 시각장애인 안내표시판.
숭실대입구역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는 시각장애인 안내표시판.

 

  우리 사회의 점자 사용 실태,
  불필요하고 모호한 점자 

  먼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편의점에서 점자 사용 실태를 알아보았다. 편의점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표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 중 대부분에 점자가 부착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의점까지 가더라도 어떤 물건을 구매하려 한다면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물건에 점자가 표시돼 있는 것은 음료수, 맥주 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곳에 적힌 점자 표시도 명확하게 어떤 음료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점자로 ‘탄산’이라고 적혀있다.
점자로 ‘탄산’이라고 적혀있다.
점자로 ‘음료’라고 적혀있다.
점자로 ‘음료’라고 적혀있다.
편의점에서 구매한 캔 음료.
편의점에서 구매한 캔 음료.

  실제 캔 음료에 적힌 점자를 확인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커피 2종: 콜롬비아나 카페라떼, 조지아 카페라떼 △탄산음료 3종: 밀키스, 코카콜라, 칠성사이다 △이온음료 2종: 파워에이드, 포카리스웨트를 구매했다. 각 캔의 위에 적힌 점자 표기를 확인해보았다. 모두 외관상으로는 각기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 비장애인이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원하는 음료를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캔 음료 윗부분에 표기된 점자를 확인해본 결과 탄산음료 2종을 제외한 모든 음료에 같은 형태의 점자가 표기돼있었다. 이는 ‘음료’라고 적힌 점자로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통해 음료의 종류나 브랜드를 알 수 없었다. 다른 점자가 적혀있던 탄산음료 2종도 마찬가지로 ‘탄산’이라고 점자로 적혀있었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은 항상 무작위로 음료를 고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자판기에서는 이마저도 어렵다. 자판기에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점자 표기가 돼 있지 않아 시각 장애인들의 자판기를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대해 음료업체들은 표시 공간의 협소와 시스템 부족 등 각각의 이유를 내놨다. 롯데 칠성음료 관계자는 “과거 캔 상단에 점자로 제품명을 기재하면 좋겠다는 문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공간이 협소해 제약이 있다”며 “점자의 크기를 줄이게 되면 시각장애인들이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오츠카와 동서식품 관계자는 “제조업체에서 이미 일괄적으로 상단에 점자 표기가 돼 있는 캔을 받아서 내용물을 넣어 유통하고 있다”며 “상품 마다 점자를 다르게 표기할 시스템 자체가 구축이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이러한 음료업체들의 점자 표기 행태에 대해 “점자로 ‘음료’라고 표기하는 것 자체가 좋은 뜻에서 하는 것은 맞지만, 말 그대로 ‘이것은 마실 수 있는 음료’ 라는 정보만 줄 뿐 개인의 특성이나 기호는 고려하지 않은 표기법인 것이 사실”이라며 “상품의 특성이나 종류에 대한 점자를 표기해주면 시각장애인들이 음료를 이용하기에 훨씬 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음료 종류를 알아볼 수 없도록 가려진 채 판 매되고 있는 음료 자판기.
음료 종류를 알아볼 수 없도록 가려진 채 판 매되고 있는 음료 자판기.

 

  이러한 불편함에 주목한 서울여대 인권프로젝트팀 ‘훈맹정음’은 지난 2017년 교내 자판기에 명확한 점자 스티커를 부착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자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판기에 붙어있는 점자와 음료 캔 위 점자를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캠페인은 이화여대, 연세대 등 다른 대학교의 인권동아리들도 동참하며 ‘대학 동시다발 점자 확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자판기에 점자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음료들이 보이는 창을 종이로 막았다. 종이에는 ‘음료’라고만 적힌 회색 캔이 줄지어 서 있다. 점자를 읽는 것만으론 어떤 음료인지 알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을 학생들이 직접 공감해보도록 한 것이다.

스크린 도어 입구 번호와 장암행을 알려주는 점자.
스크린 도어 입구 번호와 장암행을 알려주는 점자.
지하철 계단의 난간 옆에 붙어있는 점자.
지하철 계단의 난간 옆에 붙어있는 점자.
엘리베이터 버튼에 있는 점자.
엘리베이터 버튼에 있는 점자.
개찰구 통과를 위해 카드를 찍는 리더기에 적힌 점자.
개찰구 통과를 위해 카드를 찍는 리더기에 적힌 점자.

  지하철은 비교적 점자 표기가 잘 돼있는 곳이었다. 역사 안에서 점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먼저 스크린 도어 옆에는 몇 번 문인지 점자로 적혀있었고 열차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 곳의 손잡이에도 점자가 잘 표기돼 있었다. 또한 역사의 바닥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점자 블록도 설치돼 있었다. 지하철의 △엘리베이터의 버튼 △개찰구의 리더기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모두 점자 표기가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몇몇 점자 표기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보증금 환급기에는 지폐 투입구와 동전이 나오는 곳에는 점자 표기가 있었지만, 이것이 보증금 환급기임을 알 수 있는 점자 표기는 없었다. 반면 1회용 교통카드 발급기는 지폐와 동전 투입구부터 이용 방법까지 점자로 자세히 적혀있었으나 터치스크린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맹점이 있었다. 

  또 지하철이 아닌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훨씬 더 어려움이 있다. 버스의 경우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표기가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의 노선도나 하차벨에는 점자 표기가 마련돼있지 않다. 택시도 이용하기 어렵다. 장애인들을 위한 콜택시가 있으나 차량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본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이경석(행정·16)씨는 “버스를 타기 어려워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 콜택시가 있긴 하지만 몇 대 밖에 없어서 거의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테이프가 붙은 시각장애인용 음향 신호기.
테이프가 붙은 시각장애인용 음향 신호기.
학생회관 4층을 안내해주는 점자 표지판, 음 성 안내는 고장나 있다.
학생회관 4층을 안내해주는 점자 표지판, 음 성 안내는 고장나 있다.
점자 스티커가 떨어져나가 얼룩져있다.
점자 스티커가 떨어져나가 얼룩져있다.
점자 스티커를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넘 어 손을 뻗어야한다.
점자 스티커를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넘 어 손을 뻗어야한다.

  거리로 나와 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점자표기가 돼 있었으나 훼손됐거나 음성인식을 지원하나 고장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숭실대입구역 삼거리에 위치한 신호등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 신호기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용’이라는 문구가 ‘애인용’이라는 말로 보이도록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또한 본교 학생회관 입구에는 학생회관 안내도 표지판에 점자를 병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성 안내 기능은 고장나 있었다. 아래 음성 안내라고 적힌 버튼을 눌러봐도 음성 안내가 나오지 않았다. 또한 학생회관 4층 내리막 길목에 있는 손잡이는 오른쪽에는 점자 표기를 적은 스티커가 붙어있었지만 왼쪽에는 스티커가 떨어져 나간 흔적만 남아있었다.

  학교 주변을 벗어난 모습은 어떨까.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치센터 △보건소 △우체국 △파출소 △지구대 등은 음성 안내 장치나 점자 표지판·안내판 등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점자표기 기초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민센터 25곳 중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점자 표지판과 점자 안내판 총 661곳 가운데 제대로 설치된 곳은 단 17곳뿐이었고, 253곳은 잘못 설치돼있었다. 아예 설치되지 않은 곳도 391곳이나 되었다. 

  심지어 이러한 법률적 설치 근거가 없는 생활 필수품의 경우 점자 안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어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가전제품 △편의시설 △생활용품 등에 기본적인 정보도 점자나 음성 등으로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조사대상 가전제품 364개 가운데 점자가 정확하게 표기된 제품은 단 3개에 불과했다.

  비슷한 이유료 상당수 의약품에 점자가 표기되지 않아있었다. 의약품 점자 표기 조사 대상이 된 91개 품목의 의약품 중 59개 의약품은 점자 표기가 돼 있지 않았다. 나머지 32개 중 제대로 점자 표기가 돼 있는 의약품은 10개에 그쳤다. 게다가 연구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연구원 3명은 10개 의약품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점자 표기가 돼 있다하더라도 점자의 △규격 △재질 △유지 관리 상태 등 정해진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행법상 의약품의 점자 표기가  권장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다 보니 많은 의약품 제조사들이 단가절약을 위해 점자 표기를 외면하고 있다. 이는 불편은 물론이고 안전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의약품 사용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시 오용으로 인한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정책팀장은 통화에서 “의약품에 점자 표기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오남용을 했다는 사례가 많다”며 “의약품을 섞어놓게 되면 어떤 약인지 알 수 없고 제대로 복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점자 표기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의 편견과 시선 개선이 우선돼야…

  국립국어원의 2014년 연구 용역 보고서 ‘시각장애인 언어 사용 환경 개선 중장기 계획 수립’에 따르면, 1급~4급 시각장애인 천 명에게 점자 사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점자를 사용한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41.6%였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10명 중 4명이 점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의 점자에 관한 인식과 점자 사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점자가 일반 활자와 동등한 언어로서 보장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쉽게 말해 점자의 중요성, 교육 필요성은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 점자 활용도는 그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점자 표기만이 시각장애인 생활 개선의 해결책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실제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 해보았을 때 앞서 제기됐던 미흡한 점자 표기의 문제점을 크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개선을 우선해야 할 과제로 뽑았다. 이 씨는 앞선 지하철 점자 표기 미흡에 대해 “지하철을 이용할 때 역사무실에 전화를 하면 역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환승이나 출구로 나가는 것까지 안내를 해주신다”고 말했다. 또한 캔 음료 점자 표기의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가면 친절하게 직원분들이 원하는 것을 찾도록 도움을 주신다”고 말했다. 

  게다가 본교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 학생들에 대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었다.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 박연신 팀원은 “학기 말 또는 학기 초에 장애 학생들을 모아 간담회를 진행한다”며 “본교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의 피드백도 지속적으로 하고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경우 기존 수강신청기간 이전에 원하는 수업의 수요조사를 진행한다. 이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접근하기 편한 장소로 강의실을 배정하기 위함이다. 또한 수업을 들을 때 필요한 교재도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미리 요청을 받고 글자를 점자로 변환해주는 업체에 맡겨 시각장애 학생들이 받아볼 수 있게끔 하고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전문 속기사나 근로학생들의 도움으로 학생의 수업 필기를 돕도록 지원해주고 있었다. 이 씨 역시 이같은 제도를 이용하고 있어 학교생활에 있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진정한 우리의 이웃으로 

  이러한 점자 표기 미흡 문제에 대해 강 소장은 “국가마다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접근법이 달라 어느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의 경우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환경이 비교적 잘 갖춰져있다는 점이 긍정적이었다. 강 소장은 “시각장애인이 이동할 때 사용하는 ‘흰지팡이’는 모든 도로에서 우선순위를 갖는다”며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흰지팡이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이 지나다닐때 경적도 안 울린다”고 말했다. 이어 강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기 좋지 않은 환경이고 길에 턱이 많아 흰지팡이 이용도 많이 어렵다”며 “사회의 환경도 같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이 씨는 “털 때문에 많은 음식점들이 꺼려해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의약품에 점자 표기가 안돼있었던 것과 달리 유럽연합 국가의 대부분 의약품에는 점자 표기가 돼있다. 표기 형태도 규정돼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모순되는 점은 이같이 의약품 용기에 점자를 새기기 위한 별도의 프레스기계를 생산하는 업체가 국내에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에 점자 기계를 수출하는 국내 업체 ‘에이스 기계 기술연구소’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의약품 점자 기계 생산 기업이다. 해외에 점자 기계를 수출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에는 국내 의약품에는 제조단가를 이유로 점자가 보급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에이스 기계 기술연구소 함진석 차장은 “국내에선 의약품 점자 표기가 강제가 아니라 대부분 표기하지 않으며 하는 곳도 점자 인식률이 떨어진다”며 “인식률이 떨어지는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제조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다”고 지적했다. 함 차장은 “유럽은 표기 형태와 인식률에 대한 규정이 정해져 있다”며 “기계 공정을 한번 더 거치기에 인식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강 소장은 시각 장애인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선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소장은 “시각장애인들의 불편 해소는 완벽한 제도와 편의시설로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이웃들이 장애인을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공동의 문제로 생각해주는 인식이 우선 필요하다”며 “구체적이거나 세부적인 제도 도입보다  근본적으로 장애인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동의 문제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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