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가난」 박완서 저
「도둑맞은 가난」 박완서 저

  SNS상 연예인들의 호화로운 삶과 예쁜 일반인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 “내 코가 이렇게 낮았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새롭게 보이며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에 나오는 화자도 가난한 삶의 진상을 처음엔 몰랐을 것이다. 동네에도, 일터에도 다 비슷한 사람들끼  모여서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상처도 몰 다가 발견하고 나면 아프기 시작하듯이, 인지하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나도 개성있는 내 코에 만족했었지만, SNS를 통해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듯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화자도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상훈이에게 자부했던 자신의 삶을 무시당하고, 가난을 직시해버린 기분. 아등바등 지켜온 자신의 가난을, 한순간에 쓸모없이 내동댕이 당한 기분. 주인공의 가난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 하겠지만, 일상에서 그런 순간은 가끔씩 찾아온다. 가난이란 재산으로 따지는 것만은 아니다. 마음 가난한 사람이 현대에 얼마나 널렸는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상훈이는 화자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가 살아갈 원동력을 없앤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의 의미’란 그녀가 가족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온 신념이었다. 이제 그녀는 일터의 사람들을, 옆집 사람들을, 방에서 혼자 추위에 떨며 자는 자신을 혐오할 것이다. 그녀의 가장 부유한 재산은 가난의 의미인데 그것마저 빼앗겼으니 이제 진짜 가난해진 것이다. 상훈이에 대한 배신감과, 그로부터 받은 비웃음은 여성으로서도 살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몸을 연탄 한 장에 팔아버렸다고 농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삶을 다채롭게 하기 위해 에피소드를 더한다며 분노하던 그녀가 불쌍해서 울컥한다. 누군가에겐 에피소드지만, 누군가에겐 벗어날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가난의 상품화와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강자의 시선을 알 수 있던 작품이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들을 강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야지.” 마음먹지만, 나도 상훈이가 폐병쟁이를 잊듯, 그녀를 잊듯, 이 작품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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