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20일은 ‘세계 측정의 날(World Metrology Day)’이다. 세계 측정의 날은 1875년 5월 20일 세계 17개국이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 ‘미터협약(Meter Convention)’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의 국가측정표준기관에서는 단위와 측정의 중요성을 알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매해 세계 측정의 날마다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세계 측정의 날은 더욱 특별하다. 국제단위계의 7개 기본 단위 중 4개 단위의 개정된 정의가 지난 20일(월)부터 공식 시행됐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질량 단위: 킬로그램(kg) △전류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 몰(mol)의 정의를 변경한 바 있다. 단위를 재정의한 이유는 이전보다 안정적인 기준을 이용해 보다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미터법을 기준으로 확립된 도량형 체계인 국제단위계의 기본 단위는 △시간: 초(S) △길이: 미터(m) △광도: 칸델라(cd)가 있다.

 

  130년 만에 재정의된 킬로그램(kg)의 단위

  먼저 킬로그램(kg) 단위가 재정의된 이유는 단위의 기준이 되는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이 변했기 때문이다. 1889년부터 백금 90%와 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정의해왔다. 1킬로그램은 △미터(m) △센티미터(cm) △그램(g)이 정의된 이후 정의됐다. 과거 과학자들은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를 1000만분의 1로 나눈 값을 1미터로 정의했다. 이어 1미터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l센티미터를 각 변으로 하는 정육면체에 채운 물의 질량을 1그램으로 정의했다. 이후 제작된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1그램의 1,000배인 1킬로그램을 나타낸 것이다. 현재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파리에 위치한 국제도량형국 금고에 보관돼 있으며, 이 원기의 복사본 40개 중 1개는 국내 표준과학연구원에 보관돼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관중인 킬로그램 원기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관중인 킬로그램 원기이다.

  그러나 국제 킬로그램 원기가 제작된 이후 시간이 흘러 산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원기를 세척하는 과정에서 오차의 발생도 확인됐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오차는 약 50㎍(50마이크로그램, 0.00005g)으로, 머리카락 한 올 또는 모래 한 톨 정도의 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킬로그램의 단위 변경에 따라 기본 단위  조합에 의해 정의되는 유도 단위에 해당하는 △힘 △압력 △에너지 등의 단위 역시 변경된다. 이에 국제도량형총회는 킬로그램 원기에 의한 단위 정의가 아닌, 안정성과 보편성이 확보된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로 각 단위를 재정의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1킬로그램에는 플랑크 상수라는 고정된 기본 상수가 부여됐다.

 

  ‘키블 저울’의 등장

  플랑크 상수를 측정하기 위해 미국, 캐나다 등 6개국에서는 ‘키블 저울’을 고안했다. 키블 저울은 저울 한쪽에 물체를 달고, 다른 한쪽에는 코일을 감아 전류를 흘리면서 물리적 에너지와 전기적 에너지를 비교해 질량을 재는 저울이다. 키블 저울이 없는 나라들은 자체적인 질량 표준 없이 타국이 측정한 질량 표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키블 저울은 현재 1억분의 4 수준의 정밀도까지 도달한 상태이다. 이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앞으로 3년 내에 선진국 수준의 정밀도를 보이는 키블 저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한국 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키블 저울이다
한국 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키블 저울이다.

  킬로그램을 비롯한 4개 단위의 정의가 바뀐 것은 국제단위계의 목표에 부합한다. 국제단위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변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 미터협약처럼 국제 조약을 통해 기본 단위를 통합한 이유는 단위를 혼동해서 생기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단위를 착각한 미 항공우주국의 숨기고 싶은 실수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항공기 업체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Corporation)’은 화성 기후를 관찰하는 우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 결과 1998년 12월 11일, ‘마스 클라이미트 오비터(Mars Climate Orbiter)’라는 화성기후 탐사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쏘아 올린다. 마스 클라이미트 오비터는 계획대로 6개월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화성에 근접하는 순간 원래 궤도를 이탈해 화성의 대기권과 충돌하며 산산이 불타 없어진다.

  이 사고에 대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밝혀진 원인은 단위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미국항공우주국에서는 국제표준 단위를 쓰고 있었으므로 킬로그램을 기준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었는데, 이를 운영하던 록히드마틴사의 직원은 궤도 진입 시 미국에서 흔히 쓰이는 무게 단위인 파운드(lb)를 계산에 사용하여 이를 위성에 송신한 것이다. 1파운드는 0.45킬로그램에 해당하고, 1킬로그램은 2.20파운드에 해당한다. 즉, 록히드마틴사의 직원이 1파운드의 무게를 생각해서 1이라고 송신하면, 위성은 수신한 신호 1을 2.2파운드인 1킬로그램으로 인식하고 1킬로그램의 무게를 옮길 수 있는 힘으로 움직였다.

  통일되지도, 정확히 명시되지도 않은 단위 때문에 당시 소모된 돈은 한국 화폐로 1,300억 원이었다.

 

  단위를 혼동하고도 문제없었던 건축물

  일본 동경대학교에는 1920년경에 지어진 건축물이 있다. 이 건물의 설계도면은 어떤 곳은 피트(ft)로 돼 있고, 또 어떤 곳은 그 당시 일본이 쓰던 길이 단위 척(尺)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건축될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1피트와 1척은 단지 0.1센티미터 밖에 차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1미터씩 쌓아 올리면 0.3센티미터 밖에 오차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처럼 고층 건물을 짓지 않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위’의 출발, 그들만의 단위 디렉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렉(Paul Dirac)은 모든 공업수학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디렉 델타함수’의 창시자이며,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폴 디렉이 창시한 ‘디렉’은 본래 다른 의미로 쓰였다. 폴 디렉은 어려서부터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그의 부모님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집에서 프랑스어만을 쓰게 했다. 프랑스어를 잘 몰랐던 디렉은 결국 말수가 줄어들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말없는 성격을 이어간다. 폴 디렉이 지나치게 말이 없자 동료 과학자들은 폴 디렉의 이름을 따 단위로 통용하는데, 이때 정의된 1디렉은 1시간에 1마디를 한다는 의미였다. 즉, 2디렉이면 1시간에 2마디, 3디렉이면 1시간에 3마디로 통용된 것이다.

  이렇듯 단위는 아주 사소하지만 사람들끼리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널리 퍼지고 대중화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공용 단위가 되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만의 단위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저 친구의 열정은 3.5 숭실이야.’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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