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내에서 군복을 입은 학생들을 종종 본다.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는 학생들이다. 한창 시절을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봉사와 희생한 우리 숭실 청년들에게 고마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다.

  그러면서 몇 해 전 동료 교수의 부끄러운 행동이 불현듯 스쳐간다. 예비군 훈련으로 수업에 빠지는 학생에게 ‘수업에 빠지는 것은 유고결석 처리를 해주겠지만 그날 수업의 내용이 시험에 나온다면 그것은 내가 책임질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학생은 얼마나 서운함을 느꼈을까. 국방의 의무로 한창 젊음을 꽃피울 시기에 군입대를 했는데 이제는 예비군 훈련으로 또다시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데도 학교 교수라는 사람은 그저 출석과 수업, 시험에 대한 얘기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교수는 군입대를 그저 나이가 차면 당연히 가는 초등학교 입학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았나 의심스럽다. 이 젊은이들의 수고로움으로 이루어진 안보와 평화 속에서 우리 교수들이 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와 연구에 매진해 이 자리에 온 것 아닌가. 지금 그들의 고된 군생활을 대우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고된 삶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의 청년들은 다르다.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청춘’이라는 것을 희생하였다. 청춘을 예찬하고 그 값어치를 높이는 명언들은 많다. 그만큼 ‘청춘’ 그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소중하고 고귀한 자산이다. 그 청춘을 희생한 숭실의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예우를 갖췄는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날 숭실의 젊은이 황도현 중사(기계·98)는 제2연평해전에서 치열한 교전 중에 전사하고 말았다. 전투 후 그분의 시신은 방아쇠를 끝까지 잡고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어찌나 참혹하였는지 그날의 현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지금도 생생히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숭실대학교에서 이분에 대한 예우를 찾기 힘들다. ‘황도현 강의실’이 형남공학관 지하에 있긴 하지만 이것은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 추모한 것이라기보다는 총동문회에서 모금한 몇천만 원의 돈을 학교에 내고 만든 것이다.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이 정도인데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전역한 우리 학생들의 예우는 앞서 말한 대로 유고결석계 한 장이 전부이다.

  고귀한 청춘을 희생한 우리 숭실인들을 예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신있게 행동을 실천하는 것부터 할 수 있다. 그 예로, 내 수업의 학기 첫 수업시간은 박수로 시작된다. 군전역 후 복학한 학우들에 대한 감사와 환영의 의미를 담는다. 또한, 예비군 훈련을 받는 학생이 있으면 단 1명이라도 원하는 시간에 개별 보강을 해준다. 그들이 했던 수고에 비하면 내가 수업 한두 번 더하는 것은 수고도 아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유공자를 대한다는 자세를 가져보면 캠퍼스에 스치는 한명 한명이 다 고맙고 소중할 따름이다.

  이제 호국 보훈의 달 6월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숭실의 격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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