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이하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기준안은 오는 2022년부터 시행된다. 

  WHO는 지난달 25일(토)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중독을 의미하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을 통과시키고, 28일(화) 총회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WHO는 각 회원국에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치료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WHO가 정의한 게임이용장애는 게임의 통제력 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 통제 능력을 잃고 다른 일상 활동보다 게임을 중요시하며,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게임을 지속하는 증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이를 중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이해국 교수는 “도박장애 등에서 중독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게임에도 적용한 것”이라며 “이 진단지침에 근거해 향후 세부적이고 명확한 국내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HO의 결정 이후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일고 있다. 국내 콘텐츠 수출의 60%를 담당하던 게임업계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의 해외 매출은 4조 원대로, 영화의 100배, 음악의 10배가 넘는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 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는 WHO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가 시행된 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약 3년간 국내 게임 산업이 최대 11조 3천 5백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9일(수)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89개 단체는 ‘게임 질병 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만들어 WHO의 이번 결정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공대위는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WHO의 게임장애 질병 코드 지정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강경석 게임본부장은 “매년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과몰입 실태조사를 하는데 과몰입률은 3% 미만으로 나온다”며 “게임 과몰입 학생들 뇌에 구조적인 변화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대의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영철 교수는 “게임중독 환자 24명의 뇌를 연구해보니, 문제를 해결할 때 나오는 뇌파가 아닌 단순 반복하는 행동을 할 때 보이는 뇌파가 나타났다”며 “사고하는 뇌파가 나오는 프로게이머들과 달리 게임중독 청소년들은 자기가 잘하는 전략만 반복하며 사고하지 않고 몰입한다”고 말했다.

  한편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더라도 이는 권고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결정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 회원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련 부서들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우선 문화체육관관부(이하 문체부)는 WHO의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문체부 남태평 사무관은 “2022년 회원국에 적용되기 전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업데이트하는 과정이 있다”며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는 내용의 연구를 근거로 잘못된 점을 지속해서 지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WHO의 권고에 따라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6월 중으로 게임이용장애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 실무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게임을 문화·놀이로 봐야 한다”는 문체부의 반박에 “WHO의 국제적 통계 기준을 국내에 도입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과 치료하는 게 핵심”이라며 “게임중독과 게임 산업 육성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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