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는 과거가 영광된 미래를 만든다”
“존중받는 과거가 영광된 미래를 만든다”
  • 김이슬 기자
  • 승인 2019.06.03 02:57
  • 호수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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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기념 특집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호국(護國)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이고, 보훈(報勳)은 나라를 위해 세운 공로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국가 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6월에는 △현충일 △6·25 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 등이 일어났으며, 이 사건을 통해 목숨을 잃거나 희생된 많은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을 호국 보훈의 달로 지정했다. 호국 보훈의 달 중 오는 6월 6일(목)은 현충일이다. 이날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다.

 

  6월6일, 현충일의 유래

  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 제1145호를 통해 6·25참전 용사를 비롯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날로 6월 6일 현충일을 제정했다. 6월 6일이 현충일로 지정된 이유는 ‘망종(芒種)’과 관련이 있다. 망종은 24절기 중 9번째 절기로, 벼처럼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기도 하다.

  과거에는 망종 때 국가를 지킨 영웅들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의식을 치렀다. 고려 현종때에는 조정에서 장병들의 뼈를 그들의 집으로 가져가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고, 조선시대에는 6월 6일에 유해를 매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풍습을 바탕으로 1956년, 6·25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현충일을 제정할 당시 정부에서는 이날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게 됐다.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이어 1975년 1월 27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돼 현충일로 공식 개칭됐다. 이어 1982년 5월 15일에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지금의 공휴일로 제정됐다.

  국가 유공자를 뜻하는 단어들

  국가 유공자를 뜻하는 단어는 △순국선열 △애국지사 △호국영령 등 다양하다. 국가를 위한 공헌자나 희생자를 기린다는 의미는 동일하지만, 각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에 위치한 충성분수대.
국립서울현충원 정문에 위치한 충성분수대.

  먼저 ‘순국선열’은 자발적으로 이민족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투쟁에 참여하다가 순국한 유공자를 의미한다. 더불어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맺은 을사늑약 이후 △자결 △전사 △옥사 △병사한 사람들을 통칭한다. 국가보훈처는 독립 운동 참여자 3백만 명 중 15만 명을 순국선열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으로 순국해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은 사람이다. 즉 대한민국 건국에 공을 세운 사람을 순국선열로 구분한다. 

  이어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람이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다 목숨을 빼앗긴 독립유공자는 순국선열로, 독립을 위한 항거 과정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었던 독립유공자는 애국지사로 구분하는 것이다.

  반면 ‘호국영령’은 사전적으로 목숨을 바쳐 국가를 지킨 명예로운 영혼을 뜻한다. 즉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던 중 전사한 희생자들을 의미한다.

  국립묘지, 국립서울현충원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기념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추모 대상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1955년에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묘지다. 국립묘지는 단순히 국가에서 운영하는 묘지가 아닌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 사랑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외에도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19민주묘지 △국립3·15민주묘지 △국립5·18민주묘지 △국립호국원 △국립신암선열공원 등이 있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크게 △국가원수 △국가유공자 △장군·장병·경찰관 △독립유공자 묘역이 있다.

  먼저 국가원수 묘역에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네 명의 묘역이 조성돼있다.

  국가유공자 묘역은 건국 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과학 분야에서 국가 발전과 민족 번영을 위해 몸 바친 국가유공자 60여 위가 안장돼 있으며 3개 묘역으로 조성돼있다.
 

국립서울현충원 길 안내 표지판.
국립서울현충원 길 안내 표지판.

  국가유공자 제1묘역에는 1983년 10월 9일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의 테러에 의해 순국한 국가 유공자 17위가 안장돼있다. 국가유공자 제2묘역에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고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을 지낸 이범석 장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차장 겸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으며 건국 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 등 14위가 안장돼있다. 특히 제2묘역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했던 본교 출신 민족 지도자 조만식 선생도 안장돼있다. 또한 국가유공자 제3묘역에는 1968년 청와대를 폭파할 목적으로 잠입한 무장간첩단을 격퇴하다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과 폭탄을 들고 비행기의 납북을 기도하던 납치범을 덮쳐 탑승자들을 구하고 순직한 대한항공 전명세 기장을 비롯한 15위가 안장돼있다.

  외국인 묘역에는 화교인 지앙훼이린과 웨이시팡 두 명이 안장돼있다. 지앙훼이린은 1950년 군대에 자원입대해 적진 정찰 및 포로 심문 등의 임무 수행 중 1951년 전사했다. 웨이시팡 역시 1950년에 수색대에 입대해 적진 정찰 및 중공군 포로 심문 활동의 공로가 있으며, 휴전 후 한의사로서 극빈 환자 무료 진료, 장학 사업 등 사회 공헌에 기여하다가 1989년 사망했다. 이외에도 외국인 유공자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과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을 촬영해 국내·외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돼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모신 임시정부 요인 묘역과 애국지사 묘역 그리고 후손이 없어 묘역을 대신해 위패로 모신 무후선열제단이 조성돼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중앙에 위치한 현충문.
국립서울현충원 중앙에 위치한 현충문.

  호국(護國),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위에 서 있다.
  보훈(報勳), 이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보훈 은 국가와 국민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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