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 a little makes a mickle.’ 우리말 속담 ‘티끌모아 태산’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이다. 아무리 큰 것도 결국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물 한 방울이 모여서 호수를 이루고 강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학창시절 ‘벼락치기 공부’를 했던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걸 더 느낀다. 임기응변(臨機應變)에 능한 사람들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준비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비단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보면 당장 돈이 안 되어 보이는 기초 과학에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한 나라가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고 노벨상도 휩쓸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나는 꾸준한 사람이 아니다. 싫증도 잘 내고 도중에 그만두어서 완성을 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피아노를 포함한 여러 가지 악기도 그렇고 골프도 한 때는 열심히 연습했지만 지금은 골프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을 정도다. 중간까지 읽다가 방치된 책들은 수 백 권이 될 듯싶다. 미완성으로 남은 것에 투자한 시간을 다 합쳐서 어느 한 곳에 집중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풍요롭고 멋진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생긴다. 나에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그저 속담을 위한 속담일 뿐이었다. 물론 완성시킨 것도 많지만 내 성격상 완성시키지 못한 것을 더 생 각하게 된다.

  숭대시보에 <이都저都> 여행칼럼을 연재한 지 올해가 8년째다. 지난주까지 내가 직접 여행한 150개의 도시 이야기를 썼다. 나름 ‘Mickle’을 이룬 셈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신문인 숭대시보에 150개나 되는 글을 기고한 것이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편집부에 아직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가 ‘순위권 안에 드는’ ‘장수(長壽)필자’ 일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5년 초겨울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소천(召天)하셔서 몇 차례 원고를 송고(送稿)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학기 중에는 매주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새벽까지가 항상 글을 쓰는 시간이 되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쓰고, 친구들과 거나하게 ‘한 잔하고 들어오는 날’에도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좌판을 두드린다. 경제적인 면을 배제하고 내가 무엇인가에 올인하는 시간을 나는 ‘존재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존재의 시간에 내가 앉는 의자는 ‘존재의 의자’이고, 내가 두드리는 컴퓨터는 ‘존재의 컴퓨터’가 된다. 숭대시보는 나에게 ‘존재의 시간’을 부여해준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숭대시보는 나에게 선사해준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 학기에 11개 내외를 쓰는 여행칼럼이 70여 개가 되었던 시점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시고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신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숭대시보를 매주 받아보시는데, <이都저都>를 읽으면서 공감한다는 내용을 칭찬과 함께 써주셨다. 그 이메일을 받은 날 너무 감동하고 기뻐서 나의 연재 계획을 바꾸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100개의 도시 이야기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숭대시보 1232호에 150번째 도시인 일본의 나오시마를 소개했다. 큰 격려와 용기를 주신, 지금은 정년을 마치셨을 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다시 전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몇 개의 글을 숭대시보에 기고할 지는 나도 모르겠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은 도시를 여행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글은 여행과는 달라서 언젠가 나에게 할애된 지면을 훌륭한 필자님들께 양보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드라인에 맞추어 나의 졸고(拙稿)를 기다리는 학생기자들의 표정을 생각하니 토요일 오전이 지난 지금 마음이 급해져온다. 숭대시보 학생기자들에게도 애정의 마음을 전한다. ‘Bigger mickle’을 만들고 싶지만 늘 데드라인에 쫒기는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150개 도시 이야기에 도달한 것을 자축(自祝)하며 나의 졸필(拙筆)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는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담은 고마움을 글로 전한다. 2019년 1학기의 마지막 글을 쓰는 고즈넉한 6월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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